어린이 전문 치과에 갔다. 라온이와 로운이는 단골답게 도작하자마자 늘 가던 공간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알록달록 장난감, 그림책, 커다란 텔레비전이 있는 곳이다. 뭇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인기 만화가 나왔다. 꼬마 형제는 입을 헤 벌린 채 눈을 떼지 못했다.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집에 텔레비전이 없는 티를 그렇게 팍팍 냈다. “엄마는 여기 밖에 앉아 있을게.”라는 나의 말도 듣지 못했다. 나는 기다리는 동안 다른 꼬마들과 그 보호자를 보는 게 좋았다. 서로 대화를 나누며 교감하는 이들, 그냥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는 이들……. 평범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지만 그들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온기가 느껴졌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는 일이 벌어졌다. 진료실 앞에서 한 아이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싫어! 안 가!” “너 이빨 이렇게 그냥 놔둘 거야?” “싫어! 엄마가 거짓말했잖아.” “이빨 치료해야 될 거 아니야!” “싫어! 엄마가 거짓말했잖아!” “시간 없어. 어서 들어가!” “엄마가 거짓말했잖아!” 둘은 서로를 매섭게 보며 누구 목청이 더 튼튼한지 내기한 듯 점점 소리를 높였다. 아이의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됐고, 엄마의 얼굴은 답답함으로 일그러졌다. 간호사가 나서서 아이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설득해봤지만 소용없었다. 예전의 나는 그런 광경을 보면 단순한 관찰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말없이 구경하면서 결론이 어떻게 날지 궁금해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두 아이의 양육자가 되고 보니 마음이 많이 쓰였다. 부모의 행동은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마음이 아이에게 닿지 않고, 아이는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부모가 원망스러울 따름이고……. 부모와 자식이 서로 때문에 지치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아, 저들을 도와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함부로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니 참을 수밖에. 어린아이와 부모의 팽팽한 대치가 마무리되는 양상은 대게 비슷했다. 부모가 근육의 힘을 쓰는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렸고, 아이는 발버둥 치고 울부짖으면서 진료실로 들어갔다.
집으로 가는 길. 라온이와 로운이에게 그 안타까운 모습을 전해주었더니 라온이가 물었다. “그 엄마가 무슨 거짓말을 했는데?” “그건 엄마도 잘 몰라. 아무래도 이빨 치료한다는 얘기 대신 다른 걸 한 게 아닐까 싶어. 우리 집 책에도 그런 엄마 있었잖아. 사실은 아이 주사 맞으러 가는 건데, 돈가스 먹으러 간다고 했었잖아. 만약에 너희들이 그 아이 엄마라면 어떻게 할 거야?” 은근히 기대됐다. 같은 어린이 입장이니 아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괜찮은 방법을 알지 않겠는가! 아홉 살 라온이가 망설임 없이 답을 주었다. 소꿉놀이에서 다정한 엄마 역할을 맡았을 때 내는 말투와 목소리였다. “이빨 치료 잘 받으면 멋진 자동차 장난감을 줄 거야. 그러니까 치료받자.”
많이 아쉬웠다.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내가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방법이었으니까. 나는 어른이 아이에게 ‘이거 하면 뭐 줄게’라며 설득하는 걸 곱게 보지 않는다. 당장은 효과가 있겠지만 길게 보면 바람직한 방법이라 볼 수 없다. 그 방법이 거듭되면 결국 아이는 대가가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때문에 나는 내 아이들을 다른 방법으로 설득한다. 내 말을 들었을 때 녀석들이 얻을 기회나 긍정적인 상황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엄마가 이렇게 한 번만 말했을 때 양치하러 가는 게 너희에게 좋아. 사람이 같은 말을 여러 번 하면 에너지가 평소보다 더 많이 쓰이거든. 더군다나 칭찬의 말이 아니라 뭔가를 시키는 말이면 에너지가 더 나가. 엄마가 여러 번 말하는 데 쓸 에너지를 아껴서 너희랑 노는 데 쓰고 싶어. 그러면 신나게 놀 수 있을 거야. 장기도 여러 번 두고, 책도 더 많이 읽어줄 수 있지.” 그렇다면 왜 라온이는 치과의 그 아이를 설득하는 방법으로 자동차 장난감 이야기를 내놓은 것일까? 치과에서 진료를 마친 아이에게 매번 꼬마 자동차를 선물로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라온이에게 물었다. “만약, 그 아이가 ‘싫어. 난 자동차 싫어. 엄마가 거짓말했잖아!’라고 하면 어떡해?” 라온이가 답을 못하고 못했다. 이럴 때면 일곱 살 로운이가 냉큼 나서곤 했는데, 녀석도 잠잠했다. “얘들아, 아마도 그 아이가 원한 건 자동차가 아니었을 거야. 아이는 엄마가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한 것에 화가 났던 거야. 그래서 그걸 엄마에게 계속 얘기했지. 그런데 엄마가 그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서 더 속상했고, 화난 게 점점 더 심해진 거야. 결국엔 소리를 막 지르게 된 거고. 만약 그 엄마가 ‘엄마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치과에 데려와서 속상했구나. 그래, 그럴 수 있겠다. 미안해.’라고 했다면 아이가 흥분하던 게 좀 수그러들었을 거야. 그렇게 아이가 일단 진정했을 때, 다시 차분하게 치료받자고 설득해보는 게 좋았을 텐데.” 아홉 살, 일곱 살이 왜 이런 걸 알아야 할까? 이 이야기가 녀석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에 대해 이어서 말해주었다. “우리 라온이랑 로운이도 이다음에 아빠가 될 거잖아. 그때 지금 말해준 방법이 도움이 될 거야. 엄마도 너희가 속상해하면 마음을 알아주고 바로 진정시켜주려고 노력했거든. 그 덕분에 지금껏 너희가 악을 쓰면서 심하게 떼를 부리는 일이 없었던 거지. 사실, 우리 라온이랑 로운이가 그 아이처럼 소리 지르면서 속상해할 뻔한 순간이 여러 번 있었거든. 그때 엄마가 곧바로 ‘우리 라온이가 그래서 마음이 안 좋구나!’, ‘우리 로운이가 그게 속상했었구나!’하면서 달래줬지. 그러면 너희가 ‘응, 그랬쪄.’하면서 진정했지.”
이것은 내가 아홉 살, 일곱 살 두 아들을 키우면서 터득한 육아 노하우다. 일명 ‘조기 진화’. 아이가 속상함, 억울함 등을 느낄 때 그 감정을 바로 알아줘서 어루만져 주는 것이 아이나 부모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의 부정적 감정이 끓어오르고 결국 강한 분노 또는 생떼 등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감정 폭발 단계로 가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아이들과 서로 상처 주는 언쟁보다는 침착한 대화로 갈등을 풀어나갈 수 있던 것은 ‘조기 진화’의 덕이 크다.
그날 나는 라온이와 로운이에게 ‘예비 부모’로서 알아두면 좋을 내용을 말해주었다. 녀석들이 아빠가 되는 건 아주 한참 후의 일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너무 이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의 역할’을 하기 전에 필요한 교육은 언제 받는 게 좋을까? 내 생각에는 어렸을 때부터여야 한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
부모의 역할은 한 가정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그렇게나 중요하건만 관련 지식과 태도 등을 갖추고 시작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물론 완벽한 준비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의 현실을 보면 ‘완벽’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뭐라도 해야 한다. 대부분의 육아인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실전에 투입되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허덕이기 때문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갓 세상에 나온 작은 생명체를 내가 온전히 보살피고 책임져야 했을 때 무슨 정신으로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그 부담감은 말로 설명할 길이 없다. 시시각각 벌어지는 뜻밖의 아찔한 순간에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그러고 있을 수만 없으니 일단 뭔가를 하긴 했는데 그것이 문제가 될까 봐 두려워했다. 몸과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그렇게 숱한 날을 보낸 끝에 육아 9년 차에 접어들었다. 상황이 좀 나아졌을까? 여전히 ‘어떻게 해야 하지?’, ‘이렇게 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하는 고민에 휩싸이곤 한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꾸준히 ‘예비 부모’ 교육을 해주려 한다. 지금까지는 내가 부모로서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콕 집어서 설명도 해줄 것이다. 치과에서 진료를 안 받겠다고 버티던 아이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알려준 것이 첫 시작이었다. 아마도 앞으로 교육을 해주는 과정에서 라온이, 로운이와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뜻밖의 참신한 육아 방법을 비롯한 다양한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렇게 하더라도 부모가 되기에 완벽한 준비는 아니다. 하지만 내 아이들이 초보 부모로서 겪게 될 고충이 내가 겪었던 그것보다는 덜 하지 않겠는가! 바람이 있다. 아무리 가정에서 많은 교육을 해주어도 충분할 수는 없을 테니 더 많은 곳에서도 나서 주면 좋겠다. 대표적으로 학교가 떠오른다. 한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기까지 필요한 내용을 학교에서도 가르쳐 주면 좋겠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국어, 수학은 기초부터 시작해서 단계를 점차 높여가며 체계적으로 지식을 심어주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는데, ‘부모’ 관련 지식은 왜 외면되고 있는 건지……. 어쩌면 국어, 수학보다 더 중요한 지식일 텐데 말이다. 부디 학교에서 ‘예비 부모 준비(가칭)’라는 과목이 국어, 수학에 버금가는 중요한 과목으로 다루어지길 바란다. 많은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공을 들인다면 아이의 심리, 부모의 역할, 다양한 상황별 대처 요령 등 전반적인 내용을 보다 체계적으로 다룰 수 있으리라. 이렇듯 한 아이가 성장해서 부모 역할을 하기까지의 준비를 온 사회에서 도와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 덕에 많은 가정이 바로 서고, 나아가 우리 사회가 바르게 서지 않을까? 그날을 꿈꿔본다. 매우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