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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Apr 25. 2022

배움을 위해 무너뜨려야 할 것


  OO초등학교 1학년 김라온 어린이의 학교생활 이야기가 참 좋다. 녀석은 학교를 마치고 나를 만나자마자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나를 만나기 직전까지 한껏 부푼 마음으로 ‘오늘 엄마를 만나면 이걸 말해줘야지!’라며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말썽꾸러기 친구들의 활약상(?), 너무 웃겨서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던 사건, 말만 들어도 군침 도는 급식 메뉴, 선생님이 들려주신 재미있는 이야기 등등……. 소재가 다채로워서 들을 때마다 참으로 신선하고, 흥미롭다. 게다가 어찌나 자세히 전해주던지 나도 마치 같은 반 일원으로서 학교에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묻지 않아도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얘기해주는 여덟 살의 마음이 예쁘고 고맙다. 새내기 학부모로서 아이의 학교생활이 늘 궁금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수다스러운 아들을 두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라온이의 학교생활 만족도는 매일 별이 다섯 개다. 녀석의 얘기를 듣다 보면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일단 급식 메뉴가 환상적이다. 가뜩이나 남이 해주는 음식이라면 그 무엇이든 별미로 느끼는 내 입장에서는 라온이가 너무 부러울 따름이다. 언젠가 나도 OO초등학교 급식을 꼭 먹어보고 싶다.

   하지만, 급식보다 더 부러운 것이 있으니…… 바로, 교육 방식이다. 일단, 학생의 자율성과 저마다의 특징을 존중하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한 태도를 바탕으로 모든 교육이 이루어진다. 무엇이든 학생의 머릿속에 단순히 주입하려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흥미를 유발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배울 수 있도록 이끄는 것도 엿보인다. 선생님이 수업 하나하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하고 준비했을지 생각하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또한, 학교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바람직한 지도도 잘 이루어지는 것 같아 마음에 든다. 교육을 통해 단지 지식만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곱고 바른 마음을 지닌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힘써주는 것이 보인다. 즉,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바들도 중요한 비중으로 다룬다.
   내가 그 나이 때 다녔던 학교의 수업과는 정말이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부럽다. 라온이가 여느 때처럼 학교 생활 얘기를 해준 어느 날, 나는 그 마음을 표현했다.  
   “아웅, 나도 OO초등학교 다니고 싶다. 부러워.”
   “그럼 엄마도 다니면 되잖아.”
   “흐흐. 엄마는 그럴 수 없어.”
   “왜? 부끄러워서?”
   “아니, 나이가 많아서. OO초등학교는 라온이 같은 어린이들만 다닐 수 있거든.”
   라온이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부끄러워서?’라니……. 라온이는 왜 내가 부끄러워하리라 생각한 걸까? 몹시 궁금했지만 묻지는 않았다. 대신 더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말이야, 엄마는 아주 어린아이들이랑 같이 배우는 건 전혀 부끄럽지 않아.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거든.”
   “맞아!”
   형과 엄마의 대화를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여섯 살 로운이가 냉큼 맞장구를 쳤다. 나는 녀석에게 씽긋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말을 이었다.
   “정말로 부끄러운 건 모르는 게 있는데도 부끄럽다며 배우지 않는 거지. 그건 지혜롭지도 않은 거고. 배우는 걸 좋아한다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돼도 아주 어린 꼬마들이랑 배울 수 있는 거야. 엄마도 배우는 걸 좋아해서 괜찮아. 엄마가 OO초등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한 건 학교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이 참 좋아서 그랬던 거야. 그런 방식으로 배우면 엄마가 많은 걸 배울 수 있겠구나 싶은 거지.”


   사람이 사는 동안 ‘배움’은 끝이 없다. 학문적 지식을 쌓는 것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삶에 있어서 중요한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배움을 포함한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이 행복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훗날 죽음의 순간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때문에 어떻게든 배움의 기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부끄러움’이라는 장벽을 스스로 만들어 버린다면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다. 부디 내 아이들은 배움 앞에서는 부끄러움을 저 멀리 날려버리길 바란다. 오히려 다소 뻔뻔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겠다.
   “얘들아, 사람은 사는 동안 끊임없이 배워야 한단다. 그러니까 배우는 것과 관련해서는 부끄러워하지 말도록 하자. 그리고, 하나 더! 보다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게 뭐게?”
   두 귀염둥이는 대답 대신 나를 응시하며 반짝이는 눈을 껌뻑였다.
   “바로, 질문이야. 질문을 하는 건 내가 모르는 것을 배우는 데 아주 좋은 방법이지. 그러니까 질문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해. 모르는 걸 물어보는 건 당연한 거야. 엄마가 너희에게 가끔씩 ‘오늘은 선생님에게 어떤 질문을 했니?’라고 묻잖아. 그만큼 질문하는 게 좋은 거니까 그런 거야. 앞으로는 멋진 질문들을 선생님에게 자주 해보자.”
   “엄마, 나 저번에 유치원에서 아주 멋진 질문을 했어!”
   “우와! 우리 로운이가 어떤 질문을 했을까?”
   “내가 ‘선생님, 오늘 간식은 뭐예요?’라고 물어봤어.”
   “세상에! 정말 멋진 질문이다. 멋져. 멋져.”
   라온이도 동생에게 질세라 학교에서 했던 질문을 말해주었다. 나는 로운이에게 해줬던 강도와 같은 칭찬과 반응을 해주었다. 녀석들이 했다는 질문은 배움을 깊게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칭찬받을 만했다.
   “우리 라온이랑 로운이가 질문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너희는 그 덕분에 분명히 앞으로 더 많은 걸 배우게 될 거야. 너희들이 했다는 그 질문도 아주 좋거든. 그리고, 다음에는 ‘저건 왜 그런 거지?’, ‘저건 도대체 뭘까?’하는 것에 대해서도 질문을 해보도록 하자. 이건 배움을 키우는 데 엄청나게 도움이 될 거야. 어때?”
   “좋아.”
   “좋아.”
   은근히 기대된다. 과연 둘은 다음에는 어떤 질문을 했노라 자랑을 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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