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신화 Apr 27. 2022

미래의 내 아이가 나 같으면 좋겠어

  


 물론 우리 집 두 꼬마 모두와 함께인 게 가장 좋다. 하지만 둘 중 한 녀석하고만 있는 시간도 제법 만족스럽다. 일단, 내가 그토록 바라는 여유를 느낄 수 있어서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몰랐었다. 아이를 한 명만 키우는 것이 그나마 숨 쉴 여유가 조금이라도 있다는 것을.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는 그야말로 숨 돌릴 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도대체 셋 이상을 키우는 부모는 어떻게 지내는 건지…… 그들에게 깊은 존경을 보낸다.

  아이와 둘만의 시간이 마음에 드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나의 관심과 사랑을 한 아이에게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라온이와 로운이가 나와 단 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내내 입이 귀에 걸린 건 바로 이 때문일 게다. 딱히 특별한 걸 하지 않더라도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어린이들은 기분이 좋으면 시키지 않아도 바르고 착하게 행동한다. 라온이와 로운이도 나와 둘이 있는 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괜찮은 아들이 된다. 행동은 물론이요, 말도 어찌나 상냥하고 다정하게 하는지……. 너무나 사랑스럽고 귀여운 그 모습을 보면 나도 더 괜찮은 엄마로서의 모습을 보이고자 노력하게 된다.
 
   라온이의 학교 방학 마지막 날이었다. 로운이의 유치원 개학일이기도 했다. 여덟 살 형이 여섯 살 동생을 유치원 버스 타는 곳까지 바래다주었다. 덕분에 나는 설거지 등의 아침 집안일을 여유롭게 마쳤고, 곧 돌아올 라온이를 위한 과일도 정성껏 준비했다.
   곧이어 현관문 여는 소리와 함께 라온이가 외쳤다.
   “엄마!”
   “어서 와, 우리 라온이!”
   우리는 서로에게 여름날 햇살처럼 강렬하게 빛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것처럼 가슴 벅찬 표정으로 서로를 반겼다. 불과 5분 전에 “조심히 다녀와.”, “다녀오겠습니다.”하며 인사 나눴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였다.
   준비해둔 과일을 내놓자, 라온이가 두 팔을 위로 번쩍 올린 채 폴짝거렸다. 그리도 좋을까? 평소 먹었던 종류의 과일인데도 말이다. 나는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사과를 야무지게 먹는 라온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이다음에 우리 라온이가 아빠가 됐을 때, 라온이의 아이가 어떤 아이면 좋겠어?”
   “음…… 나 같은 아이.”
   “라온이 같은 아이가 어떤 건데?”
   “나처럼 말하고, 나처럼 행동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고…… 그러는 거지.”
   이 답에는 내가 평소에 라온이의 장점이라 여겼던 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녀석은 자기 자신을 아주 사랑하고, 스스로에 만족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아이다. 덕분에 좀처럼 위축되지 않고 명랑하다.
   “라온이의 아이도 라온이 같으면 정말 사랑스럽겠다.”
   “동생한테 소리지는 건 빼고.”
   “흐흐. 동생한테 소리 지르는 모습은 라온이 같지 않으면 좋겠어?”
   “응.”
   조그맣게 대답하고는 멋쩍은 듯 웃어 보이는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말했다.
   “라온이가 가끔 로운이한테 소리를 지르긴 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말하는데, 라온이는 엄청 좋은 형아야. 그거 알지?”
   “응.”

  “라온이가 원하는 대로 라온이의 아이가 그렇게 되게 하는 방법이 있어.”

  “뭔데?”

  “그 아이가 라온이가 생각하는 그 아이라고 생각하면 돼. 무슨 말이냐면, 엄마는 라온이랑 로운이를 보면 이런 생각을 자주 하거든.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지?’, ‘어쩜 이렇게 예쁘지?’, ‘어쩜 이렇게 지혜롭지?’. 엄마는 라온이랑 로운이가 엄청 사랑스럽고, 예쁘고, 지혜로운 아이라고 생각해. 그 덕분에 정말로 라온이랑 로운이가 그런 아이가 된 거야. 그러니까, 라온이가 라온이의 아이를 볼 때 그 아이가 라온이가 바라는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돼.”


   이런 얘기를 해줄 수 있게 된 건 나의 책 <우리 집에는 꼬마 철학자가 산다>의 한 독자 덕분이었다. 많은 독자들이 후기를 통해 마치 친이모, 친삼촌처럼 라온이와 로운이를 칭찬해주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인데도 너무나 예쁘게 봐주고 그 마음을 여과 없이 표현해주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한 독자의 후기 중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저자인 엄마가 예쁘게, 사랑스럽게, 지혜롭게 보니까 아이도 예쁘고, 사랑스럽고, 지혜롭게 행동하는 것 같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동안 라온이와 로운이를 키우면서 속으로 생각하곤 했었다. 내가 이 천사 같은 아이들의 엄마인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고, 세상 그 무엇을 준다 해도 녀석들과 바꾸지 않을 거라고(이 얘기는 아이들에게도 수시로 해주었다). 라온이와 로운이가 이리도 괜찮은 아이로 자랄 수 있었던 것의 핵심이 무엇일지 명쾌하지 풀리지 않았었는데, 그 독자의 후기 덕에 깨달았다. 내가 바라본 대로 아이들이 행동했던 것이다. 내 아이의 행동은 내가 녀석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달렸던 것이다.
   ‘아이를 바라보는 고운 시선’을 모든 육아인이 반드시 지키면 좋겠다. 만약, 이것을 단단하고 야무지게 챙긴다면 아이와 활짝 웃는 날이 더욱 많아지리라 확신한다. 나아가 부모는 염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자식이 진정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는 것 말이다.
  
   로운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왔다.
   “로운아, 아까 형아한테 물어봤던 건데, 로운이는 이다음에 아빠가 됐을 때, 로운이의 아이가 어떤 아이면 좋겠어?”
   “음…… 좋은 아이.”
   “좋은 아이면 좋겠구나?”
   “형아는 뭐라고 했어?”
   라온이가 재빨리 나섰다.
   “나는 나 같은 아이면 좋겠다고 했어.”
   “나도! 나도 나 같은 아이.”
   역시나 형아 따라쟁이다운 면모를 드러냈다. 그런데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로운이 또한 자신을 아주 사랑하고, 스스로에 만족하는 밝은 아이기에 그런 답이 가능했다.
   “흐흐. 우리 로운이 같은 아이면 엄청 귀엽고, 사랑스럽고, 지혜롭겠네. 로운이가 원하는 대로 되게 하는 방법이 있어. 알려줄까?”
   “응!”
   나는 라온이에게 해줬던 얘기를 들려줬다. 라온이가 그랬듯이 로운이도 그야말로 몰입해서 들었다. 녀석들이 그날의 소중한 지침을 가슴에 새기길 바란다. 그렇다면 분명히 행복한 아빠가 될 것이다. 부디 그렇게 되길 바란다.

   그날의 대화를 통해 다시금 느꼈다. 내 아이들이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하긴…… 당연한 결과였다. 정말로 더없이 사랑스럽고 좋은 아이들이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