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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Jul 18. 2021

내게 많은 복이 오는 이유

  밤사이 가족이 내뱉은 숨으로 가득 찬 집안 공기를 내보내고 이른 아침의 상쾌함을 들이고자 창문을 열었다. 하지만 단 몇 초 만에 내 코를 찌르고 온몸을 휘감는 뜨거운 공기에 숨이 막혔다. 폭염의 지독한 기세가 며칠째 꺾일 생각을 안 했다. 그나마 아침은 견딜만했지만, 태양이 가장 높이 뜬 한낮의 더위는 가히 맹렬했다.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는 나지만 버틸 도리가 없었다. 모든 창문을 꼭꼭 닫고 에어컨을 켰을 때 피부에 닿은 시원한 바람은 달콤하기까지 했다. 행복감을 만끽하는 것도 잠시, 이내 안타까움이 일었다.

  '이런 날씨에 뙤약볕 아래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정말이지 얼마나 힘들까?'

  나만 행복을 누리는 것이 왠지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여덟 살 라온이와 단 둘이 갈 곳이 있었다. 10분 남짓 걸어가면 되는 짧은 거리였지만 찌는 태양 아래서 걷다 보면 실제보다 멀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한낮 더위만큼은 피하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무더위와의 한판을 위한 무기(?)도 꼼꼼히 챙겼다. 부채와 양산이었다. 그런데, 필요가 없었다.

  “우와! 라온아, 엄마가 부채 챙겨 왔는데 바람이 이렇게 부네. 시원하기까지 하다. 너무 좋다.”

  “응. 시원하다.”

  아무리 바람이 불었더라도 뙤약볕 아래라면 시원함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우리가 걸었던 길은 그늘이 져 있었다.

  “우와! 이 시간에는 이 길에 그늘이 지는구나!”

  “엄마, 양산도 안 써도 되겠다.”

  “그러네. 역시 우리는 복이 많다니까.”

  “맞아.”

  복이 많다는 말은 나의 입버릇이다. 그런 엄마의 영향으로 내 아이들도 같은 입버릇을 지녔다. 나는 평소에 라온이와 로운이에게 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입에서 나간 말이 삶에 주문을 걸기에 늘 말조심을 하고, 좋은 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직까지는 두 꼬마가 나의 가르침을 잘 따라주니 고맙고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지금껏 나는 내 아이들이 스스로를 복이 많은 사람으로 여기도록 이끌었다. 긍정성을 키워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긍정성을 넘어 보다 가치 있는 것을 심어주고 싶었다.  
  “라온아, 우리한테 왜 이렇게 복이 많은지 알아?”

  “음…… 몰라.”

  “좋은 일 많이 하라고 이러는 거야. 이 복을 우리만 누리라고 오는 게 아니지. 나쁜 일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안 와. 그러니까 우리는 좋은 일 많이 하자. 우리 복들로 많은 사람도 함께 행복할 수 있게 하자.”

  “응.”     

  내 삶을 돌아보게 한 대화였다. 과연 나는 내가 누리는 복으로 어떤 좋은 일을 하고 있을까? 이타심을 펼치고 있기는 한 건가? 무더운 날 집에서 편안하게 에어컨 바람을 맞을 때, 행복에만 젖어 있지 않고 안타까움을 느끼는 나다. 하지만 거지까지 일뿐이다. 아무래도 지금 나의 위치는 이기심과 이타심의 중간 즈음 같다. 앞으로 내가 추구하는 삶의 길로 계속 나아간다면 그 위치가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데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나의 바람을 이룬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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