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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Aug 07. 2021

환경 문제 조기 교육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여섯 살의 역발상

  


  하나뿐인 지구를 위해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말. 내가 어렸을 때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지구는 어떻게 변했을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해져 버렸다. 내가 코흘리개였을 때의 상태만이라도 유지했다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싶을 정도다. 
  지금은 꼬마인 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의 지구는 과연 어떨지……. 도무지 희망적인 장면이 떠오르질 않는다. 생각만으로도 땅이 꺼질 듯한 한숨만 나온다. 무거운 무언가가 가슴을 짓누를 뿐이다. 아이들에게 그런 지구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 
  때문에 지구를 위한 실천을 시작했다. 너무 늦은 감이 있는 건 알지만, 늦었다고 포기하는 것보다는 이제라도 하는 것을 다행으로 삼으려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실천이라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아주 미미한 것들이긴 하다. 이를 닦거나 손에 비누칠할 때 물 잠그기, 빈방 전등 끄기, 폭염 특보여도 하루 네 번 이상 에어컨 끄고 선풍기 바람으로 버티기 같은. 생각 같아선 물티슈, 종이컵 같은 일회용품을 아예 안 쓰고 싶지만 그건 쉽지가 않다. 그나마 두세 번 쓸 거 한 번 정도만 쓰려 하고, 친환경 제품을 사는 것으로 타협 중이다. 

  고작 한 개인의 이 정도 노력으로 해결되겠냐고 하는 이도 있으리라. 하지만 티끌이 모이면 태산이 되는 법. 게다가 지구를 위해 움직이는 이들이 세계 곳곳에 있으니 그들과 함께 태산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우리 집 두 꼬마인 라온이와 로운이도 끌어들이고 있다. 일단 녀석들이 지구 문제에 일찍 눈을 뜨도록 매일 다양한 얘기를 해주곤 한다.
 “정말 덥지? 엄마 어렸을 때는 여름에 에어컨 없이도 견딜 수 있었는데……. 지금은 지구가 엄청 뜨거워졌다는 얘기지. 그래서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고, 북극곰들이 너무 힘들어해.”

  “왜 힘들어해?”

  “북극은 얼음으로 되어 있어. 북극곰은 얼음 위에서 걸어 다니고, 잠을 자거나, 쉬거든. 한 번 생각해봐. 잘 자고 있는데 갑자기 얼음이 녹아서 바다가 되면 어떻겠어? '으악' 하면서 바로 헤엄쳐야 하겠지? 어느 정도 헤엄을 치면 좀 쉬어야 하는데, 쉴 얼음이 없는 거야. 그러니 계속 헤엄을 쳐야 해. 힘들까? 안 힘들까?”

  “힘들어.”


  “얘들아 저기 좀 봐. 이 바닷가 모래에 쓰레기들 너무 많지? 곧 파도가 쓸고 갈 텐데……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버린 쓰레기 때문에 동물들이 고통받고 있어. 어떤 바다거북이 죽었는데 뱃속에 플라스틱 음료수 병, 연필, 담배 꽁초 같은 쓰레기들이 가득했대. 동물들은 그게 쓰레기인지 모르고 먹는단 말이지. 얼마나 아팠을까? 우리가 저 쓰레기 좀 치울까?”

  “좋아.”


  “오늘도 미세 먼지가 심각하네. 사람이 환경을 생각하지 않아서 이렇게 된 거야. 그러면 결국 인간에게 안 좋은 일로 다시 돌아와. 공기가 나쁘니까 몸에 해로운 공기를 계속 마실 수밖에 없지. 그러면 면역력이 떨어지고 병에 쉽게 걸릴 수 있어. 그런데, 아무 잘못 없는 동물들도 피해를 보고 있어. 동물들도 면역력이 떨어지고, 전염병에 쉽게 걸리게 되거든. 소, 돼지, 닭이 전염병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아주 끔찍한 일이 생겨.”

  “뭔데?”

  “한 마리라도 전염병에 걸리면 같은 농장에서 지내던 동물 모두를 땅에 묻어버려. 깊은 구덩이를 파서 집어넣고 그 위를 흙으로 덮어. 그럼 숨을 못 쉬고 죽게 되지. ‘살처분’이라는 건데 수많은 동물이 그렇게 죽고 있어.”

  “그거 진짜로 있는 일이야?”

  “응. 진짜로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야. 너무 안타깝? 살처분할 때 동물들을 기계로 밀어서 구덩이에 넣거든. 그때 동물들이 완전히 큰 소리로 울부짖는대.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머리 위로 흙이 떨어지니 얼마나 무서웠을까?”

  “근데, 왜 그렇게 해야 해?”

  “아직 전염병이 안 생긴 농장에 사는 동물들에게 병을 옮기면 안 된다고 그러는 거야. 하루빨리 다른 방법이 생기면 좋겠어. 지구도 어서 건강해지면 좋겠어.”     


  하루의 대부분을 까르륵거리며 보내고, 밝은 이야기만 접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 지구 환경 문제는 낯설 뿐 아니라 충격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하는 문제다. 나를 비롯한 많은 어른이 범했던 잘못을 녀석들만큼은 답습하지 않길 바라서다. 오랜 시간 지구의 절규를 외면하는 일 말이다. 내가 펼치는 환경문제 조기 교육으로 말미암아 내 아이들에게 지구를 위한 습관이 자연스레 배길 바란다.
  나는 지구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데만 그치지 않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늘 덧붙인다.  

  “얘들아, 이 페트병은 반드시 비닐을 떼서 플라스틱, 비닐을 각각 버려야 해. 그런데 이걸 일일이 떼는 게 보통 일이 아니지? 그래서 어떤 회사가 좋은 아이디어를 냈지. 물건에 대한 정보를 비닐로 따로 붙이지 않고 아예 통에 새기는 거야. 이렇게 많은 사람이 지구를 위해 고민하고 노력 중이야. 우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꼭 하자. 뭐가 있을까?”

  “음식 안 남기기!”

  “물은 마실 만큼만 따라 마시기!”

  “그래, 그래. 아주 좋아. 그렇게 잘 알고 있으니까 꼭 실천도 하자.”

  “응.”

  야무진 대답에 걸맞게 행동까지 하면 좋겠지만, 녀석들은 지구 문제에 기름을 붓는 행동을 하곤 했다. 물장난하느라 수도꼭지를 열어 놓고, 스케치북에 작은 동그라미 하나만 그려놓고는 틀렸다며 깨끗한 면으로 넘기려 하고, 멀쩡한 휴지를 마구 버리고……. 그나마 내가 “그러면 지구가 아파. 지구 특공대여! 어서 지구를 구하자!”라고 하면 씩 웃으며 특공대답게 행동했다.      

  우리 집 지구 특공대가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음식 남기지 않기’였다. 기특하게도 녀석들은 가급적 식판을 깨끗이 비워냈다. 만약 음식을 남기고 싶으면 다음에는 꼭 다 먹겠다는 다짐을 한 후에야 식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느 저녁 식사 때, 그날따라 먹는 속도가 더딘 여섯 살 로운이가 말했다.

  “엄마, 근데 우리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면 지구한테 좋은 거 아니야?”

  “음…… 왜 좋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먹을 게 많아서 지구가 더 튼튼해지잖아.”  
  뭐든 잘 먹어야 튼튼해진다는 말은 아이들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 기준이 지구에게도 적용된다고 보다니! 동심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이 엉뚱함이 나는 참 좋다. 깜찍한 그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주는 것도 즐겁다.  

  “우와! 너무 좋은 질문이다. 로운아,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 무슨 뜻이지?”

  “내가 싫어하는 거 다른 사람한테 하지 않기.”

  나는 아이들을 훈육할 때 논어에 나오는 ‘기소불욕 물시어인’을 자주 활용하곤 했다. 참고로 원래 뜻은 ‘내가 싫어하는 일은 다른 사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이다.

  “우리 로운이는 음식물 쓰레기 먹는 거 좋아? 싫어?”

  “싫어.”

  “그렇지? ‘기소불욕 물시어인’이니까 지구에게도 음식물 쓰레기 먹게 하면 안 되겠지?”

  “근데…… 지구는 우리처럼 사람도 아니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싫어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엉뚱한 상상쟁이답게 지구를 뭐든 많이 먹으면 튼튼해지는 생명체로 여겼으면서……. 이제는 합리적 사고를 하는 예리한 아이로 돌변하다니! 녀석의 귀여운 변화무쌍함에 피식 웃음이 났다. 

  “지구는 살아 있어. 봐봐. 우리는 몸속에서 피가 흐르고, 뼈가 자라고, 머리카락도 자라고, 상처가 생겼다가 낫기도 하잖아. 살아 있으니까 이렇게 계속 변화들이 생기는 거야. 지구도 마찬가지야. 계절이 바뀌고, 나무가 자라고, 꽃이 자라고, 열매가 나오고, 가을에 나뭇잎 색이 알록달록해지고, 비가 내리잖아. 또 어떤 변화가 있지?”

  “눈도 내려.”

  “그렇지? 이렇게 지구는 살아 있고 아픈 것도 느껴. 지구가 지금 많이 아프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꼭 살려야만 해. 앞으로 지구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더 노력하자.”

  “응!”

  로운이는 씩씩한 용사처럼 답하고는 곧바로 숟가락을 들어 밥을 한가득 떴다. 그리고 녀석 앞에 놓인 모든 음식을 깨끗이 먹어치웠다. 밥알 하나, 김 가루 하나, 깨소금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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