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가 요란하게 노래를 불러대며 빨래가 끝났음을 알렸다. 깨끗해진 옷들을 바구니에 담아 옷방으로 가져왔더니, 라온이가 기다렸다는 듯 달려와서는 흥분하며 말했다. “엄마! 아주 놀라운 얘기를 해줄게. 과학 시간에 들은 건데…….” 매일같이 학교에서의 일을 보따리에 차곡차곡 담아 와 하나씩 풀어주니 마냥 기특했다. 이야기들이 흥미로운 나머지 내 입에선 “세상에!”, “정말?”, “우와!” 같은 추임새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특히, 과학 시간 이야기는 내 귀를 더욱 쫑긋 세웠다. “길이가 14밀리미터(mm) 정도로 아주 작은 물 곰이 있거든. 공룡 시대에 살았는데 지금도 살 정도로 생명력이 엄청 강해. 어느 정도냐면 북극보다 더 추운 곳에서도 살 수 있고, 엄청 뜨거운 사막에서도 살 수 있고, 엄청 뜨거운 물에서도 살 수 있어. 그걸 죽이는 유일한 방법이 뭔지 알아?” “글쎄?” “밟는 거야.” 이야기를 마치고 나를 보는 녀석에게서 강렬한 기대감이 보였다. 내가 평소보다 센 반응을 보일 거라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놀라기는커녕 차분하기까지 했다. “아…… 그렇구나.” 나를 보는 열 살배기의 맑은 눈동자가 빠르게 껌뻑거렸다. 엄마가 여느 때처럼 흥미를 보이며 뭔가 더 말해주길 기다리는 눈치였다. 안타깝게도 그 기대에 부응할 수 없었다. 이야기가 별로여서가 아니다. 솔직히, 그런 동물이 있다는 게 신기하긴 했다. 내 엄지손톱 정도밖에 안 되는데 그토록 생명력이 강하다니! 더군다나 공룡 시대부터 살았다니! 하지만 그날의 이야기는 흥미 측면에만 무게를 두면 안 될 일이었다. 그렇게 해버리면 어떤 중요한 것이 생각의 테두리 밖으로 벗어날 수도 있었다. 과연 무엇을 말하는 걸까? 우리가 언제나 그 무엇보다 높은 위치에, 우선순위로 두어야 하는 것. 바로, ‘생명의 소중함’이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생명의 소중함’을 더욱 챙기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간과하도록 이끄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는 생명이 처참히 짓밟힌 잔혹한 사건을 하루가 멀다 하고 보도한다(제발 착한 뉴스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 어떤 범죄 소식이 전해지면 모방 범죄가 뒤따르듯, 누군가의 선행을 다루는 뉴스가 많이 나오면 ‘모방 선행’이 이어지 않을까?). 드라마, 영화, 게임 등에서는 생명의 불을 끄는 행위를 흥밋거리로 다루거나 미화하기까지 한다. 심지어 어린이가 보는 만화나 청소년이 자주 보는 뮤직비디오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뉴스, 드라마, 영화, 게임, 만화, 뮤직비디오 등은 오늘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다. 그들이 내놓는 비윤리적이고 자극적인 제작물에 수시로 노출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생명의 소중함’은 아래로, 뒷전으로 밀려날 위험이 크다. 그러니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만 한다. 무언가를 접했을 때 그 속에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태도’가 있지는 않았는지 점검하는 센서가 늘 켜져 있어야 한다. 나는 라온이의 센서를 켜주고자 부드럽게 물었다. “혹시 그게 해로운 동물이야?” “아니.” “그럼 꼭 죽일 필요는 없는 거네?” “그……렇지.” “어쩌면 그 동물의 생명력을 확인하기 위해 실험자가 그걸 추운 데도 보내고, 더운 데도 보내고, 뜨거운 물도 붓고 그러지 않았을까? 그러다 죽을 수도 있었을 거고. 그 동물 입장에서는 아주 안 좋았겠다.” “아…….” 라온이의 센서가 켜진 것이 보였다. 때마침 로운이가 아주 중요한 얘깃거리를 품은 얼굴로 왔다. 형이 신기한 동물 이야기를 펼치리란 걸 눈치채고 질세라 냉큼 달려온 게다. “엄마 갯지렁이 알지?” “응.” “갯지렁이는 몸을 반으로 뚝 잘라도 살아.” 엄마의 놀란 표정을 기대하고 있는 여덟 살에게 나는 차분한 반응을 안겨주었다. “아, 그렇구나. 음…… 그거 확인하려고 누군가가 살아 있는 갯지렁이를 반으로 잘랐을 수도 있겠다. 그 갯지렁이 입장에서는 아주 안 좋았겠다.” “아…….”
그렇게 로운이의 센서까지 켜준 뒤, 꼬마 형제를 향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뭐든 신기하거나 재미있는 걸 봤을 때, 혹시나 그 과정에서 생명을 함부로 다룬 건 아닌지 생각해보는 게 필요해. 동물 실험에서만 그런 게 아니야. 요즘은 만화나 영화에서도 그런 안 좋은 장면들이 좀 많이 나오는 편이거든. 그걸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보면 안 돼. 우린 꼭 기억하자. 생명은 소중하기에 조심히,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걸. 알겠니?” “응.” 거실로 걸어가는 형제의 뒷모습에서 아쉬움이 풍겼다. 나 또한 왠지 만족스럽지만은 않았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깨달음을 주었음에도 뭔가 놓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일단 축축한 빨래를 서둘러 널어야 했기에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했다. 앙증맞은 공룡 그림이 있는 어린이 내복 바지를 잡아 든 순간 깨달았다. 내가 교육적 욕심이 앞선 나머지 동심의 순수한 의도를 받아주지 못했음을. 어쩌면 아이들이 오늘의 경험으로 자칫 잘못된 판단까지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앞으로 엄마에게는 신기한 생명체 얘기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말이다. 나는 곧바로 거실로 가서 최대한 다정하게 말했다. “얘들아, 엄마가 그 동물 실험에 대해 좀 안 좋게 얘기했잖아? 그렇다고 다음부터 엄마한테 그런 얘기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진 말아 줘. 사실 그 동물 얘기가 흥미롭긴 했으니까.”
라온이가 눈을 반짝였다.
“맞아! 흥미로워.”
“그래. 정말 흥미롭긴 했어. 우리는 그 실험이 도덕적으로 괜찮았는지도 생각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주 경쾌하게. “응.”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