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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의 행복

by 노신화

초등학생이 되니 라온이도 ‘숙제’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즐거운 마음으로 가뿐히 마무리해내면서 성취감을 키웠다. 1학년의 학교 숙제는 ‘어린 시절 추억 적기’나 ‘주말 계획 쓰기’ 같은 것들이었다.
입학 후 3개월 무렵이 되자 차원이 다른 숙제가 등장했다. ‘문제집 풀기’였다.

“엄마, 내가 이거 다 풀면 엄마가 확인해줘야 해. 그게 부모님 숙제야.”

한껏 들뜬 목소리였다. 평소 같으면 밖에 나가서 숨이 차도록 뛰어놀 시간이었지만, 그날은 숙제를 먼저 하겠다며 책상에 앉았다.

내 아이가 집에서 문제집을 푸는 일은 처음이었다. 엄마로서 그 역사적인(?) 과정을 바로 옆에서 관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꾹 참았다. 혼자서 할 수 있겠냐는 나의 물음에 라온이가 호기롭게 “당연하지!”라면서 서둘러 연필을 꺼냈기 때문이다. 아이가 무언가를 스스로 해내려는 의지를 보이면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어른이 옆에서 방향을 잡아주고 이끌어주면, 수월하게 해낼 수 있는 게 뻔하더라도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짧은 당부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이해 안 가는 것이 있으면 꼭 엄마한테 물어보렴.”

얼마 뒤, 드디어 부모님 숙제시간이 되었다. 나는 빨간 색연필을 쥐고 채점에 나섰다. 답 칸에 적힌 삐뚤빼뚤한 글씨들이 앙증맞았다. 라온이가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해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견했다. 문제를 찬찬히 살펴보니 마냥 쉬운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특히, 어떤 문제는 여덟 살에게는 제법 어려울 수도 있었다. 매우 꼼꼼히 읽고, 깊이 생각해야만 지문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라온이는 엉뚱한 답을 써 놓았다.
라온이에게 그 문제를 다시 차분히 읽어보게 했다. 그리고는 방금 읽은 대로라면 어떻게 답을 써야 하는지 물었다. 대답을 들어보니, 역시나 문제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게 보였다.
“아, 라온이는 그렇게 이해했구나.”

“맞잖아!”

따지는 말투였다. 자신의 도전이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기 싫었던 게다. 실망감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게다. 하지만 라온이는 못난이 도전자가 아니었다. 내가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자 이내 멋쩍게 웃더니 지우개로 지우고 새로운 답을 적었다.

“우와! 제대로 이해하니까 바로 정답을 썼네. 우리 라온이는 오늘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네.”

“뭐?”

‘정말로 아는 것은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거’라는 거.”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한 말인데, 얼핏 들으면 말장난 같기도 하다. 나는 맨 처음에는 그 심오한 뜻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잠시 생각해본 후에야 고개를 끄덕였었다. 이처럼 난해한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겠다. 이해해보려고 곰곰이 생각해보거나, 인상을 찌푸리거나, 아무 생각이 없거나.
하지만 동심은 다르다.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관심을 보인다. 낯설거나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이야기일수록 더욱 눈동자를 빛낸다. 흥미로운 도전 거리로 여기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더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아서 아이와 대화할 때면 일부러 어려운 말을 먼저 던지곤 한다. 그렇게 아이의 호기심을 끌어올린 뒤, 이어서 쉽게 풀어가며 이야기 해준다.

내가 꺼낸 소크라테스의 말에 김라온 어린이는 내 예상대로 반응했다.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그래, 좀 어려운 얘기지? 아까 라온이가 혼자서 문제를 풀 때는 모두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문제 자체를 제대로 이해 못 한 게 있었잖아. 라온이는 그 사실조차 몰랐었는데, 엄마 얘기를 듣고 나서야 무엇을 몰랐는지 알게 되었지? 덕분에 이 문제를 제대로 풀게 된 거고. 이제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

“응.”

“우와, 대단하다! 어려운 말이었는데 이해하다니! 오늘 라온이는 더욱 발전할 기회를 얻었던 거야. 안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혹시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보는 거. 아주 좋은 경험이었지. 앞으로 학교에서 다양한 걸 배우게 될 거야. 그럼 아까처럼 다 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기보다는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게 좋아. 그러다 보면 라온이는 점점 더 발전하게 되지. 제대로 아는 것이 많아지게 되니까. 당분간은 엄마랑 연습을 좀 해야 할 거야. 그러다가 익숙해지면 라온이 스스로 척척 할 수 있게 돼. 참! 그렇게 되려면 평소에도 뭐든 궁금해하는 습관을 키우는 게 필요하지. 엄마가 라온이에게 이해 안 가는 거 있으면 꼭 물어보라고 자주 말했잖아. 왜 그랬었는지 이제 알겠니?”

“응.”

여기까지 대화하고 보니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앎’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닮은 내용인데, 이어서 나누면 좋을 것 같았다. 그간 아이들에게 종종 <논어> 속 구절을 소개하곤 했기에 라온이도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며 보다 잘 받아들일 만했다.

“<논어>에 나오는 공자 있지? 공자는 엄청나게 많은 걸 알고, 지혜로운 사람이거든. 그래서 많은 사람이 공자의 제자가 되었지. 어느 날, 공자가 한 제자에게 이렇게 말했어.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라고.”

라온이는 이번에도 새로운 도전 거리를 즐겁게 맞이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여덟 살 도전자가 공자의 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질문을 건넸다.

“혹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어려울 거 같아? 쉬울 거 같아?”

“그건 당연히 쉽지!”

“그래. 쉬울 거 같지? 우리 라온이는 모르는 거는 모른다고 말하지?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잘 못 해. 왜 그럴까?”

“몰라.”

투명한 아이의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이 당연한 일을 왜 못 하는 지를.

“모른다고 말하는 걸 창피하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모르면서도 안다고 말하기도 해.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그렇게 하면 모르는 것에 대해 제대로 알 기회를 못 얻는 거니까. 그리고, 아는 걸 안다고 말하는 것도 문제가 있을 수 있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알고 보면 그게 틀린 것일 수도 있지. 아까 라온이가 혼자서 숙제할 때,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안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사실은 제대로 아는 게 아니었잖아. 그러니까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하단다. 혹시 이해가 되니?”

“응.”

“그래. 다행이다. 우리는 꼭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라온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으니, 당연히 실천도 하리라 다짐했으리라. 평생토록 그 다짐을 간직하길 바란다. 그러면 선명함 속에서 사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모르는 것을 찾아내서 하나씩 거두는 것은 안개를 거두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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