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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Apr 08. 2021

'주기'와 '받기' 중 무엇이 더 편할까?

  나는 지금껏 많은 것들을 받으며 살았다. 한때는 내가 늘 받기만 하는 존재라고 여길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에게 고마운 선물을 받고 감사 인사를 했을 때다.

  “매번 이렇게 받기만 하네요. 너무 감사해요.”

  “뭘요. 저번에 저희도 OOO 챙겨 주셨잖아요.”

  “네? 아아…… 그거요…….”

  적잖이 놀랐다. 내가 준 것도 있었다니! 알고 보니, 나는 누군가에게 받은 것은 기억을 잘하는데, 내가 준 것은 기억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내가 준 것도 있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받은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었다. 내 기준으로는 그랬다. 
   나는 해주는 것이 부족한 사람이다 보니,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긴다. (하지만, 여전히 받는 것을 많이 하고 있으니 어찌하오리이까.)

  세상 사람들도 나처럼 생각하는 줄 알았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기는 것 말이다. 하지만 나의 오랜 착각임을 얼마 전에 깨달았다. 받는 걸 더 편하게 여기는 이가 있는 게 아닌가! 그 사람은 받는 것을 당연시한다. 또한 받은 것보다는 자기가 준 것을 선명하게, 더 크게 기억한다. 놀랍게도 그가 다른 이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경우는 흔치 않았고, 그마저도 아주 작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주고 나서도 마음이 편해 보이지 않았다.     

  '주기'와 '받기'에서 사람들이 왜 이렇게 다른지 생각해보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가족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아빠, 엄마, 큰 언니, 작은 언니는 모두 주는 것을 편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우리 가족들이 사람들에게 베푸는 수준을 생각하면 나의 베풂은 명함도 못내민다.

  막내인 나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들에게 받기만 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그 고마움을 언제 다 갚을지 모르겠다. 가능한 일인지조차 모르겠다. 아무래도 '무조건적인 받기'의 오랜 경험이 '주기'와 '받기'에 대한 나의 태도를 만들어준 것 같다. 
   내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기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행복에 더 가까운 태도를 지녔으니까. '주기'보다 '받기'를 더 편하게 여기는 그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조건적인 받기'를 많이 경험하지 않았을까?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생각이 깊다. 부디 내 아이들은 '주기'를 편하게 여기는 사람이기를. 이를 위해 내가 녀석들에게 무엇을 해줘야 할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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