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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Apr 09. 2021

아파트 옥상 텃밭 분양을 받다

  아파트 옥상 텃밭을 분양받았다. 매우 아담했다. 사과 상자 두 개를 합친 정도만큼이었다. 내게는 부담스럽지도, 아쉽지도 않을 만큼 딱 적당한 크기였다. 
  모종을 심기로 한 날, 우리 집 두 꼬마가 한껏 들떴다. 옥상 텃밭에 당첨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마치 복권에 당첨된 사람처럼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던 녀석들이다. 내가 검은 비닐봉지에서 토마토, 아삭이고추, 쌈채소 모종을 꺼내 놓자 꼬마 농부들은 다시 한번 옥상이 떠나갈 듯 소리치며 폴짝거렸다. 마침 라온이는 학교에서도 모종 심기 체험을 하고 온 날이었고, 로운이는 엊그제 식목일을 맞아 유치원에서 씨앗 심기도 하고 온 터였다. 

  꽃집 사장에게 배운 대로 적당한 간격을 두고 구멍을 만들었다. 드디어 모종 하나를 집어 들었다. 난생처음 모종을 다루는 순간이었다. 처음으로 내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연한 잎과 줄기들이 혹여 다치거나 꺾이지 않도록 아기 다루듯 조심 또 조심하며 모종을 심었다. 

  드디어 모종 하나를 안착시켰다. 마무리로 흙은 덮어주면서 말했다.  
   “건강하게 잘 자라렴.”

  옆에서 숨죽여 지켜보던 꼬마 농부들은 메아리가 되어 나의 말을 따라 했다. 우리는 다음 모종을 심었을 때도 똑같은 축복의 말을 전했다.
   한순간, 봄바람이 제법 강하게 불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뜻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으아! 모종들아. 힘내!”
   셋이서 어깨를 맞대고 방패가 되어주려 했지만, 바람이 수시로 방향을 바꿔서 소용 없었다. 우리는 목에 힘을 주며 응원의 말을 반복했다. 여린 모종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문득,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았다. 자라는 동안 이보다 더한 바람도 만나고 세찬 빗줄기도 만날 녀석들이었다. 왠지 거뜬히 이겨낼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얘들아, 이제 물 주면 되겠다.”
   여덟 살, 여섯 살 형제가 또다시 있는 힘껏 함성을 질렀다. 진작부터 물을 떠놓고 기다리고 있던 녀석들에게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둘은 진지하게 물을 주었다. 장난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생명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가득 담긴 모습이었다. 언제까지나 간직하길 바라는 사랑이었다.

  첫 모종 심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손톱 하나하나마다 검은 흙이 박혔지만 지저분하다는 생각은커녕 싱그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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