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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Apr 12. 2021

엄마의 오랜 응어리를 풀어주는 방법

  로운이가 자신의 주먹보다 조금 큰 빵 하나를 받아 들고 감격에 겨워했다. 곧장 입에 넣을 줄 알았는데, 아무 말 없이 손바닥 위에 올린 채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곧 다가올 행복의 순간을 맞아 그렇게 혼자만의 짧은 축하 의식(?)을 가졌다.

  드디어 입을 벌려 와구와구 먹기 시작했다. 마치 며칠 굶은 사람 같았다. 방금 전, 식판에 수북하게 있던 음식들을 깨끗이 먹어 치운 터라 이미 배가 공처럼 볼록해진 상태인데도 말이다. 그 순간 만큼은 세상에 먹을 것과 녀석 둘만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렇듯 오직 먹는 것에만 집중하는 모습은 볼 때다 웃음을 자아낸다.  

  “로운아, 그게 그렇게 맛있어?”

  “응, 너무너무 맛있어.”    

  엄마가 되니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깊이 알게 된 말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이다. 아이가 복스럽게 음식을 먹으며 기쁨에 겨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엄마로서 느낄 수 있는 큰 행복이었다.
   나는 녀석이 먹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얼굴에 빵 부스러기를 거칠게 묻혀가며 혼신을 다해 먹는 그 모습을 감상했다. 내 눈에서 달콤한 하트들이 솟구쳤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문득, 친정 엄마가 종종 하는 말이 떠 올랐다.

  “너희들 어렸을 때, 먹고 싶어 하는 거 다 못 먹인 게 참 속상했지.”

  엄마가 차려 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다 큰딸을 보시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빡빡한 살림에 먹성 좋은 딸 셋을 키우는 것이 어디 보통 일이었겠는가!

  진한 회한이 어려있는 엄마의 반응에도 나는 철부지 어른답게 굴었다. 엄마의 마음을 살필 생각은 없고 그저 음식 맛에 빠졌을 뿐이다.(엄마표 밥상에 차려진 음식들은 정말이지 엄지 손가락이 백 개라도 모자를 만큼 최고의 점수를 주고 싶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조금씩 엄마의 심정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자식을 바라보는 두 마음에 대해 생각해봤다. 지금 내 눈앞의 로운이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 어린 시절의 나를 바라보던 친정 엄마의 마음. 나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자식을 보면 마냥 행복하고 흐뭇해했다. 하지만 나의 엄마는 행복과 더불어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늘 함께했으리라.      

  이제는 내게도 안타까움이 움트기 시작했다.

  ‘자식이 맛있는 걸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이렇게 큰 행복이건만……. 나의 엄마도 이 좋은 기회를 원하는 만큼 충분히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앞으로’를 그려나갈 수는 있다. 엄마에게 남아 있는 지난 시절의 응어리가 차차 흐려지도록 해주려 한다. 엄마 앞에서라면 무엇을 먹건 최고의 음식을 만난 사람처럼 최선을 다해 맛있게 먹어치우는 막내딸이 되겠노라 다짐했다. 다행히 그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갖춘 이를 알고 있었다. 우리 집 먹보 요정인 여섯 살, 여덟 살 꼬마 형제다. 둘의 먹기 요령(?)을 잘 보고 배운다면 나의 엄마에게 커다란 기쁨을 드릴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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