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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May 30. 2021

'영원'의 뜻을 묻는 여섯 살에게

  가족 나들이를 간 곳에 다양한 전시물이 있었다. 여섯 살 로운이가 그중 한 작품 앞에 멈춰 서더니 제목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빠, ‘영원’이 뭐야?”

  얼마 전부터 한글을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되자 글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덕분에 질문도 많아졌다. 남편이 곧바로 답해주었다.

  “영원? 오래도록 평생. 영원히 사는 거.”

  완전히 틀린 설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대로 두면 로운이의 머릿속 사전에 ‘영원’은 ‘죽지 않고 언제까지나 사는 것’으로 입력될 테니까. 심지어 형태를 갖춘 무언가로 여기고 그 모습을 그려 사전 옆에 붙여 놓을 수 있다. 괴물 이야기를 좋아하고 어마어마한 상상력을 지닌 여섯 살배기가 만든 '영원'이라는 존재의 모습은 매우 범상치 않을 것이다. 
   남편은 자신의 설명에 있던 빈틈을 모른 채 마냥 자상했다. 로운이가 그 작품에 어울리는(?) 포즈를 한껏 취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자 곧바로 들어주었다. 
   어린아이에게 어떤 단어의 정의나 의미를 설명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제약이 많다. 아이가 이미 알고 있는 단어를 활용해야 하고, 명쾌해야 한다. 또한, 설명을 시작했으면 반드시 마무리 지어야 한다.

   엄마가 된 후 아이들에게 단어의 뜻을 설명해주며 자주 깨닫곤 한다. 그동안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그리고 대충 얘기해도 상대가 눈치껏 알아채고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많았음을. 이런 얄팍한 수가 아이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귀여운 호기심 요정들은 이해가 되지 않거나 새로운 의문이 생기면 바로바로 물어보는 집요함을 지녔기 때문이다. 때문에 어른의 설명은 장황해지기 일쑤다. 다행히 아이들은 관대해서 아무리 긴 설명이라도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려 한다. 이처럼 훌륭한 경청 태도는 나이가 어릴수록 더하다.


  나는 로운이에게 ‘영원’의 뜻을 다시 알려주기에 적당한 때를 기다렸다. 남편과 아빠와 아들은 '영원'의 뜻 설명에 담긴 문제를문제를 모른 채 그 작품을 즐겼다. 로운이가 포즈를 한껏 취하면 남편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마침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길 때 녀석이 내 손을 잡고 걸었다.

  “로운아, 아까 그 작품 제목이 ‘영원’이었지? 영원은 끝이 없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걸 말해.”

  이것은 녀석의 ‘머리’에 닿을 만한 설명이다. 여기에서 끝낼 내가 아니다. 나는 아이에게 무언가를 설명해줄 때면 반드시 예시를 들어준다. 이왕이면 녀석의 ‘가슴’에 닿아 울림을 주는 것으로.

  “그럼 엄마는 로운이를 잠깐 동안만 사랑할까? 영원히 사랑할까?”

  “영원히!”

  엄마로서 아이에게 ‘영원’에 대해 해 줄 수 있는 설명으로 이보다 더 멋지고 효과적인 것이 있을까? 이제 로운이의 머릿속 사전에 있는 ‘영원’ 옆에는 다른 그림이 붙여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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