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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Apr 27. 2021

돈과 선물에 관한 중요한 이치

  

 

할머니에게 용돈을 받은 여섯 살 로운이가 눈을 반짝였다. 유치원에서 만들었던 종이 복주머니에 잘 넣어달라고 하더니 어깨에 힘을 주고 덧붙였다.

  “엄마, 우리 이 돈으로 요구르트 사 먹자.”

  “우와, 로운이가 사주게? 좋아. 맛있게 먹을게.”

  “엄마, 요구르트 사장님한테 내 돈이라고 꼭 얘기해!”

  “그래. 알겠어. 꼭 얘기할게.”

  전에는 돈에 별 반응이 없던 녀석이다. 그간 내가 아이 앞에서 보인 태도와 같았다. 나는 돈이 생겼다고 좋아하지도, 없다고 한숨을 쉬지도 않는 편이다. 물론 돈의 중요성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의 희로애락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걸 원치 않는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현명하게 유지하기. 내가 돈과의 관계에서 추구하는 바다. 나처럼 돈에 무덤덤했던 로운이가 달라진 건 땅을 사고, 건물을 짓는 보드게임을 하고부터다. 


  다음 날 아침, 유치원에 가려고 신발을 신던 로운이가 흥분하며 외쳤다. 
   “엄마, 내 복주머니에 있는 돈 OO이한테 선물로 줄래!”
   로운이는 평소 친구에게 이것저것 나눠주는 걸 즐기는 녀석이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자신의 의지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있음을 다시금 만끽하려는 것 같았다. 돈이 이렇게 사람을 바꿨다. 나는 아이가 친구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하면 당연히 박수로 호응해주는 엄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돈이라니! 색종이나, 그림 편지가 아니라.

  “로운아, 돈은 선물로 주는 게 아니야.”

  “왜 돈은 선물로 주는 게 아니야?”
   눈을 껌뻑이며 나를 바라보는 녀석에게 해줄 적당한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어른에게는 당연하기만 한 것이 아이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때, 동심을 납득시키는 과정은 적잖은 공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날은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유치원 버스 시간에 맞춰 나갈려면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튼, 아니야.”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꿀꺽 삼켜 내려보냈다. 타당한 이유 없이 내 주장만 따르게 하는 엄마가 되지 않으려는 것이 나의 육아 방침이다. 그간 몇 번의 위기는 있었지만 잘 넘기며 탑을 쌓아왔었는데, 이번에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게다가 더욱 세심하게 답해줄 필요가 있었다. 돈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여섯 살에게는 말이다. 

  녀석에게 겉옷을 입혀준 뒤 지퍼를 거북이걸음만큼 천천히 올리면서, “음…… 돈을 선물로 주는 것이 왜 아니냐면…….”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간을 번 끝에 해줄 말이 떠올랐다.

  “만약 돈을 선물로 주면 그걸 받는 사람은 돈의 소중함을 모르게 돼. 그래서 흥청망청 쓰는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돈의 소중함을 알고 돈에 대해서 제대로 된 생각을 가져야 하거든. 그런데, 그런 생각 없이 돈을 선물로 쉽게 받으면 돈에 대해서 바람직한 생각을 가질 기회를 못 얻을 수 있어. 돈에 대한 바람직한 생각을 갖지 못하면 아까 말한 것처럼 막 써버리는 문제도 있는데, 또 다른 문제도 있어. 돈에 대해 심하게 욕심을 부리는 거지. 돈만 좋아하고 욕심만 부리다가 불행해진 사람 이야기를 책에서 봤었지? 그 사람은 돈에 대해 제대로 된 생각을 갖지 못해서 그런 거야.”

  “엄마, 그런데 할머니는 어제 나한테 돈 줬잖아.”

  아이의 이러한 예리함이 참 좋다. 나를 움찔하게 하고, 기분 좋은 당황스러움을 준다.

  “음…… 아주 좋은 지적이야. 할머니께서 돈을 주신 것은 그 돈을 지금 잘 모아두었다가 나중에 좋은 일에 쓰거나, 꼭 필요할 때 쓰라고 주신 거야. 로운이가 돈에 대해서 바람직한 기준을 갖게 되었을 때 쓰라고 주신 거지. 그런 것이 없는 상태라면 돈을 쓰지 않는 것이 좋아. 그래서 로운이 돈을 OO이에게 선물로 주지 않는 게 좋겠다는 거야. 왜냐면 로운이도 OO이도 지금은 돈에 대한 기준을 바르게 잡아가는 단계에 있으니까.”

  “엄마, 돈에 대해서 제대로 생각하지 않으면 거지가 돼?”

  “좋은 질문이다. 음……. 거지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상황 따라 달라. 하지만, 돈에 대해 바람직한 기준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가능성은 크지. 그러니까 우리 로운이는 돈에 대해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 돈에 대해 지혜를 갖추었을 때 돈을 쓰자. 로운이랑 OO이는 그 지혜를 배우는 중이니까 돈을 쓰거나, 선물로 주는 건 지금은 아닌 거야. 알겠니?”

  “응.”
   여섯 살의 눈높이에 맞게 ‘왜 돈은 선물로 주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설명하는 건 정말이지 난이도가 상당했다. 가까스로 답하긴 했지만 ‘내가 제대로 한 걸까?’라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그날 밤, 지혜를 모아보고자 지인들에게 의견을 구했다. 그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선뜻 답을 주지는 못했다. 이내 저마다의 생각을 얘기해주었는데, 특히, ‘선물’에 방점을 찍은 답이 인상적이었다. 로운이와 나누면 좋을 만한 것이어서 다음 날 아침 집을 나서면서 녀석에게 말했다.

   “로운아, 어제 OO이한테 돈을 선물로 주고 싶어 했었잖아. 선물에 대해서 엄마가 뭐 하나 물어볼게. 선물을 주는 사람이 좋아하는 걸 주는 거랑, 선물을 받는 사람이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 걸 주는 것 중에 뭐가 더 멋진 거 같아?”

  “몰라.”

  “로운이가 엄마한테 선물을 줄 때, 로운이가 좋아하는 사탕을 주는 거랑 엄마가 좋아하는 책을 주는 것 중에 뭐가 멋져?”

  “책!”

  “그렇구나.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까 선물을 받는 사람에게 필요하거나, 그 사람이 좋아하는 걸 주는 게 더 좋아. 혹시 OO이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

  “OO이는 공룡을 좋아해.”

  “그렇구나. 그럼 OO이한테는 돈보다는 공룡 선물이 더 좋겠네. 어때?”

  “좋아.”     

  돈에 관한 지혜를 갖춰야 하고, 선물을 줄 때는 받는 사람의 마음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과연 로운이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였을까? 여섯 살이 접하기에는 다소 이른 감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아이에게 행해지는 조기 교육들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어린아이와 돈과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환영하는 바이다.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이치에 대한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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