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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Jun 25. 2021

거짓말을 당하는 자와 하는 자의 마음

  “엄마, 그런데…… OO이는 자꾸 거짓말을 해.”

  저녁을 먹던 여덟 살 라온이가 말했다. OO이는 라온이가 학교 생활을 전해줄 때, 상당한 개구쟁이라면서 자주 언급했던 아이다. 내가 어떤 거짓말인지 물었지만, 기억이 잘 안 난다는 답만 돌아 왔다.  

  “그럼……, 그 친구가 거짓말을 하면 라온이는 어떻게 해?”

  “‘아니지?’라고 해.”

  “그러면 OO이는 어떻게 해?”

  “정말이라고 해. 아니면서…….”

  답답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라온이는 유리창같이 투명한 아이다. 가끔은 사실과 다르게 말하긴 했지만 장난을 치는 것이었다. 녀석의 내가 속아주면 곧바로 씩 웃으면 이실직고했다. 남편은 종종 아이들에게 거짓말 냄새를 풍기는 농담을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라온이는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으로 진실을 알고자 집요하게 물었다. 그런데도 아빠가 사실을 말하지 않고 익살맞게 웃기만 하면 급기야 짜증을 섞어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라온이같은 반응이 정상이다. 거짓말을 대수로이 여기고 진실을 찾으려 노력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감당해야 할 유쾌하지 않은 동요는 어찌해야 할까?

  “우리, 라온이가 친구의 거짓말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구나?”

  “응.”

  “그럴 수 있지. 과연 거짓말은 듣는 사람 마음만 불편할까? 하는 사람은 어떨 거 같아?”

  “불편해.”

  “왜?”

  “왜냐하면…… 계속 거짓말하면 사람들이 그 사람 말을 안 믿어주니까.”

  “그렇지. 거짓말이 쌓이면 결국 그렇게 되지. 그리고, 거짓말을 하면 불편한 또 다른 이유가 있거든. 그게 뭘까?”

  라온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했지만 끝내 답을 못하고 눈만 껌뻑거렸다. 잠자코 엄마와 형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섯 살 로운이가 나섰다.

  “왜냐면…… 양치기 소년도 계속 늑대가 나타났다고 해서 결국 사람들이 안 믿어줬잖아.”

  “그래. 그랬지. 그리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속으로는 엄청 불안해. 자기가 거짓말한 걸 들킬까 봐. 만약 들킬 거 같으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게 되지. 그러면 또 불안해지고. 계속 이렇게 불안함 속에서 지내는 거야.”

  로운이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눈을 크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래서, ‘레이디 버그’ 만화에 나오는 그 친구는 계속 거짓말을 하잖아.”

  “맞아. 툭하면 거짓말을 하지? 그런데, 얼핏 보면 그 친구는 누군가를 속이고 나면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 ‘저 사람이 내 말에 완전히 속았네! 역시 나는 대단해.’하면서 신나 하는 거 같지. 하지만 사실은 안 그래. 그 친구는 엄청 괴로워. 왜냐면 자기가 늘 거짓말만 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모두 거짓말을 한다고 여기거든.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저 사람 지금 나 속이는 거 아니야?’하고 생각하지. 아무도 못 믿는 거야. 얼마나 기분이 안 좋고 괴로울까? 그래서 엄마는 거짓말을 안 해. 마음 편한 게 좋거든. 우리 라온이랑 로운이도 거짓말 안 하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좋지?”

   “응.”

  거짓말을 내뱉는 건 행복의 중요 요소인 ‘안정’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짓이다. 거짓말이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이고, 타인을 바라볼 때마다 ‘의심’이라는 불을 지핀다.

  삶에 있어서 행복을 소중한 가치로 두고 있는 내가 거짓말을 경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진실만 존재하는 투명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하지만, 나의 노력으로만 가능한 일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거짓말을 하지 않더라도, 크고 작은 거짓말들이 나를 향해 언제고 날아올 수 있으니까. 안타깝지만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각 상황에 맞게 지혜롭게 대응해서 마음을 평안으로 이끄는 것이다.

  지금 라온이에게도 그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녀석과 머리를 맞대고 찾아보기로 했다.

  “라온아, 다음에 또 OO이가 거짓말을 하면 그 내용을 기억해두었다가 엄마한테 얘기해줘. 그래서 엄마랑 같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방법을 찾아보자. 어때?”

  “좋아.”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내 마음속에 품은 의문을 라온이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녀석은 친구의 말을 거짓말로 규정했지만 정말 그럴까? 동심의 장난 섞인 농담은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의 라온이에게 필요한 지혜는 농담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 지혜를 갖는다면 녀석에게 불편으로 다가왔던 일이 오히려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조만간 라온이는 그 친구의 거짓말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내게 전해줄 것이다. 부디 농담이길 바란다. 라온이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여덟 살 밖에 안되는 아이가 뻔뻔하게 거짓말을 일삼는 것을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생각만으로도 그 씁쓸함이 너무 크다.


수국의 꽃말은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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