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줄넘기에 빠진 라온이와 로운이를 위해 나는 줄 한 쪽을 나무 기둥에 묶고, 다른 쪽을 크게 돌리면서 노래를 불러주었다.
꼬마야 꼬마야 뒤를 돌아라
돌아서 돌아서 땅을 짚어라
짚어서 짚어서 만세를 불러라
불러서 불러서 잘 가거라
꼬마 형제는 박자에 맞춰 줄을 넘으면서 노랫말 속 지시대로 동작도 했다. 발이 줄에 걸리면 처음부터 다시. 땀을 비 오듯 흘리고, 헐떡이면서도 뛰고 또 뛰었다. 경이로운 집념의 여덟 살, 여섯 살은 마침내 노래가 끝날 때까지 걸리지 않고 해냈다. 시간이 갈수록 성공 횟수가 늘었다.
놀이터 아이들이 몰려와 구경하다 함께 뛰고 싶어 했다. 나는 라온이와 로운이의 허락을 구한 뒤, 기회를 주었다. 대여섯 명의 꼬마들이 줄 옆에 올망졸망 섰다. 모두 준비됐냐는 나의 물음에 씩식하게 “네!”라고 답했지만 얼굴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드디어 시작! 아이들이 발이 돌아가며 줄에 걸렸다. 열 번 넘는 시도 끝에 모두가 동시에 한 번을 넘었다. 그게 유일한 성공이었고 이후는 계속 걸렸다.
도전자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떴다. 결국 둘만 남은 꼬마 형제는 신나게 줄을 넘었다. 하지만 새로운 도전자들이 왔다가 돌아가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흐름이 계속 끊겼다. 그런데도 짜증을 내거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 라온이와 로운이가 기특했다.
또다시 둘만 남아 신나게 뛰고 있을 때, 공주 그림 구두를 신은 여자아이가 다가와 도전 의사를 표했다. 지금까지 도전자 중에서 가장 어린 다섯 살이었다. 다가올 흐름을 예상한 라온이는 몇 발짝 물러선 곳에서 개인 기록을 세우겠다며 1인용 줄넘기로 혼자 뛰었다. 나는 여섯 살 로운이와 다섯 살 소녀를 위해 천천히 줄을 돌려주었다. 예쁜 구두를 신은 공주님의 끈기와 운동 신경이 예사롭지 않았다. 거듭된 시도 끝에 줄을 한 번 넘었고 그 후 계속 걸렸다가 최종 적으론 연속 두 번을 넘은 기록을 세웠다.
그날 저녁 식사 때 로운이가 말했다.
“엄마, 나 또 그 동생이랑 ‘꼬마야 꼬마야’ 하고 싶다.”
“로운이는 그 다섯 살 동생이랑 줄넘기하는 게 그렇게 좋았어?”
“응.”
무엇이 그리 좋았는지 물으려던 순간 옆에 있던 라온이가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혼자 하는 게 좋아. 동생들은 너무 못해서 답답해.”
도전자들 때문에 흐름이 끊겨도 차분히 기다려 주는 것이 기특했는데, 알고 보니 몹시 답답했지만 참았던 게다. 내가 라온이에게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 지 잠시 고민중일 때 남편이 말했다.
“라온아, 만약 라온이가 뭐를 잘 못 하는데, 친구들이 답답하다고 라온이랑 안 놀겠다고 하면 기분이 어떻겠어?”
“안 좋지.”
“오늘 줄넘기했던 친구들도 지금은 익숙하지 못해서 잘 못 하는 거야. 그렇다고 해서 같이 안 놀겠다고 하면 안 되는 거고.”
“그래도 나는 답답하다고!”
과연 남편은 라온이가 이런 반응을 보이리란 걸 예상했을까? 나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 남편은 의도치 않았겠지만 아이의 언짢음에 기름을 붓는 아쉬운 훈육을 했던 것이다. 그는 부정적인 상황을 예로 들면서 아이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했는데, 그건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하도록 이끄는 게 났다. 나는 부드럽지만 자신감 넘치는 말투로 훈육을 시작했다.
“그거 알아? 사실은 동생들이 라온이에게 아주 중요한 능력을 키울 기회를 준다는 거.”
“그게 뭔데?”
“바로, 바로…… 인내심이지.”
예상 밖의 전개는 아이의 흥미를 끌어올리는 데 효과적이다. 라온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강한 호기심을 보였고, 여섯 살 로운이는 냉큼 물음을 던졌다.
“인내심이 뭔데?”
“기다려 주고 참는 거. 동생들은 행동도 느리고, 뭔가를 잘 못 하는 경우도 많지? 우리가 그때 답답함을 참고, 기다려 주면 인내심이 엄청나게 자라는 거야. 인내심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너무나 중요한 마음이란다. 동생들이 우리에게 그걸 키울 기회를 주는 거지. 만약 내 주변에 나를 답답하게 하는 사람이 없고, 뭐든 잘하는 사람만 있다면 우리는 인내심을 키울 기회를 못 얻는 거야. 그러니까 동생들이 아주 고마운 존재인 거지.”
두 꼬마는 미동도 하지 않고 내 이야기에 몰입했다. 하지만 다소 어려웠던지 온전히 이해하려 애쓰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에게는 라온이와 로운이가 그래서 참 고마운 존재야. 너희들이 얘기할 때 엄마가 끝까지 들어줘? 아니면 중간에 말을 끊어?”
“끝까지 들어줘.”
“그렇지? 아무리 천천히 말해도 끝까지 들어주지. 그러면서 엄마의 인내심을 키우는 거야. 인내심이 있어야 해. 그래야 답답하고 힘들고 짜증 나는 상황도 지혜롭게 견딜 힘이 생기지. 우리 라온이랑 로운이도 인내심이 있는 편이야. 만약 없다면 어디 갈 때 길이 막히면 차 안에서 조금도 못 참고 답답하다고 막 짜증 냈을 거야. 하지만, 너희들은 기다리고 참을 수 있잖아. (사실, 안 그럴 때도 많지만). 그러니까 인내심이 있는 거 알겠지?”
그제야 녀석들을 평온한 얼굴로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 속에서 살아 가려면 타인들과의 교류가 불가피하다. 가정, 일터, 모임 등 어디에서건 그야말로 다양한 이들과 함께 한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내 마음에 쏙 들 수도 있겠지만, 도무지 성에 차지 않을 때도 있기 마련이다. 이때, 경계해야 할 하나가 있으니…… 바로 '답답함'이다. 답답함이란 녀석은 일단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으면 점점 몸집을 키우려 한다. 어느 순간부터는 모습을 '비난'이나 '원망'으로 바꾼 뒤 결국엔 고약한 말이나 행동으로 튀어 나온다. 답답함의 폭발은 자신과 상대방,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 하나 없는 일이다. 그러니, 답답함이 막 움트기 시작했을 때부터 대처가 필요하다. 내가 아이들에게 알려준 '상대를 내 인내심을 키워주는 고마운 존재로 바라보기'가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과연 여덟 살, 여섯 살 꼬마가 내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받아들였을까? 그로부터 며칠 뒤, 라온이가 로운이에게 삐뚤빼뚤한 글씨로 써서 준 편지를 읽고 나는 희망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