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일 케이크 촛불을 끌 때 어떤 소원을 빌었는지 아이들이 궁금해했다. 한번 맞춰보라면서 씽긋 웃어보였더니 여덟 살 라온이가 자신 있게 답했다.
“위대한 작가가 되는 거!”
“흐흐, 아닌데.”
“아!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거.”
녀석의 기억력이 고맙고 감탄스러웠다. 약 2년쯤 전에 작가로서의 포부를 적어놓은 글을 녀석에게 읽어준 적이 있었다. 내가 그런 작가가 될 수 있을지 물었을 때 라온이는 당연한 질문이라는 듯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었고, 나는 신난 나머지 손뼉을 치며 촐랑거리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건 작가로서의 바람일 뿐 소원은 아니었다.
“흐흐, 아까 엄마가 빈 소원은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였어.” “어? 그건 저번에 내가 이루어지게 했잖아.”
여섯 살 로운이의 말이다. 녀석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래. 우리 로운이가 마법 지팡이로 엄마 소원을 들어줬었지. 그런데, 그 이후에 행복하지 않고 아픈 사람들이 또다시 생겼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나라에는 전쟁 중이라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고, 몸이 아픈 사람도 있고, 마음이 아프고 슬픈 사람도 있어.”
“정말 지금 지구에서 전쟁을 하고, 그런 일이 있어?”
“응. 정말 안타깝지? 만약 세상 사람들 마음에 사랑이 가득해지면 따뜻해질 거야. 사람들 마음이 따뜻해지면 지구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거야. 그래서 엄마가 사람들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글을 쓰는 거지.”
대화는 자연스럽게 두 꼬마의 소원 이야기로 넘어갔다. 녀석들이 유치원 생일 잔치 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다고 했었는지에 대해 상기시켜줬다. 라온이는 다섯 살 때는 '깊은 산속 옹달샘'이, 여섯 살 때는 '공주'가 되고 싶다고 했었다.(이 대답 때문에 라온이의 유치원 친구가 매우 의아해하며 내게 물었었다. 공주는 여자만 되는 건데 라온이는 남자라면서). 일곱 살 때는 '축구 선수'라고 했다. 로운이는 다섯 살 때는 '왕'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제 여덟 살, 여섯 살이 된 녀석들은 커서 무엇이 되고플까? 내가 물으니 로운이가 단호하게 '화가'라고 했다. 라온이는 '과학자'라고 했다가 곧바로 '축구 선수'로 바꿨다. 하지만 이내 “아니, 아니. 아…….” 하면서 고민에 빠졌다.
“얘들아, 꼭 한 가지 일만 할 필요는 없어. 한 사람이 과학자도 할 수 있고, 화가도 할 수 있고, 축구 선수도 할 수 있어.”
라온이가 놀란 토끼 같은 얼굴로 물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우리 집에 모나리자 이모 그림이 있지? 그 그림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랬었어. 화가, 과학자, 건축가, 철학자…… 이걸 다 했어. 이런 사람은 지금도 많아. 축구 선수를 하면서 화가도 할 수 있고, 택배 기사를 하면서 작가도 될 수 있어. 엄마도 그러잖아. 엄마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하잖아.”
“선생님이기도 하잖아!”
라온이는 내가 한국어 선생님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이 컸다. 한글도 엄마에게 배웠노라며 사람들에게 자랑스레 말하곤 했다.
“그래. 한국어 선생님이기도 하지. 그런데 그거 알아? 사실 엄마는 작가가 될 줄은 몰랐어. 어렸을 때 작가가 될 거라는 생각을 아예 해본 적이 없었지.”
“그럼 뭐가 되고 싶다고 했어?”
“엄마가 되고 싶었던 건 계속 바뀌었어. 그래서 여러 개가 있었지. 선생님, 외교관……”
“외교관이 뭐야?”
“나라를 대표해서 일하는 사람. 외국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을 알리거나, 외국에서 대한민국을 위해 일을 하지.”
“그건 이미 되었잖아. 엄마는 외국인에게 한국어 가르치는 선생님이잖아.”
예리한 나의 아들 덕에 기분 좋은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었다니!
“우와. 그러네. 이루었네. 그리고 또 엄마는 현모양처도 되고 싶었어.”
“그게 뭐야?”
“현명한 엄마, 그리고 훌륭한 아내가 되는 거지.”
라온이가 매우 확신에 찬 표정과 어조로 다시금 판단을 내려주었다.
“그것도 이미 되었잖아!”
“우와! 그렇게 생각해?”
라온이 뿐 아니라 로운이까지 내 눈을 응시하며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꼬마 천사는 이처럼 나에게 늘 관대하고, 후한 평가를 준다. 내가 현모양처라니! 육아인으로서 매일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고, 때로는 문제를 해결할 묘수가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한 적도 많은데 말이다. 나는 아직 현모양처라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곳까지의 거리를 좁히고자 매일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갈 길이 멀다.
현명한 엄마라면 아이와 직업에 관한 대화를 어떻게 풀어갈까? 사는 동안 어떤 직업을 가질지에 대한 생각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 되어야 하는 바가 있다. 아이들에게 그에 대해 나누고 싶었다. “얘들아, 앞으로 사는 동안 되고 싶은 것은 계속 바뀔 거야.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야. 중요한 건 너희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보면 정말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 알게 된다는 거지. 그리고 신기한 게 있다. 시간이 갈수록 너희에게 어울리는 일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 될 거야. 봐봐. 엄마도 작가가 될 줄 몰랐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글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매일 글을 썼지. 그러다 보니 엄마가 글 쓰는 걸 좋아한다는 알게 된 거야. 결국, 이렇게 작가가 되었지. 너희가 커서 무엇이 되고,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지금은 알 수 없는 거니까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돼. 중요한 건 뭐다? 무엇을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지를 계속 생각하는 거야.” 그날은 일단 녀석들이 '어떤 직업을 가질까?'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로워지는 데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만 나눴다. 이것은 맛보기 대화였다. 조만간 다음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현명한 엄마라면 당연히 다룰 주제……. 바로 '세상을 위한 역할'에 대한 대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