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신화 Oct 18. 2021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텔레파시

  내 아이가 내가 바라는 대로 학교 생활을 하니 다행이었다. 나는 내 아이가 학교에서 '잘 하길' 바라지 않는다. '잘 지내길' 바란다. 다행히 여덟 살 김라온 어린이는 학교가 즐겁다고 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수업 시간도,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 쉬는 시간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점심시간도 모두 너무 좋단다. 낯선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것만도 기특한데, 매일을 행복으로 가득 채우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라온이의 만족스러운 학교생활에는 담임의 영향도 컸다. 녀석의 입에서 담임의 얘기가 나올 때면 얼굴과 말투에 애정이 넘쳤다.

  “우리 라온이는 선생님을 참 좋아하는구나.”
  “응!”

  “참 좋네. 엄마는 1학년 때 선생님이 나빴었는데……. 다행히 2학년부터는 다 좋은 분이셨어.”

  “1학년 선생님이 어땠는데?”

  “저번에 말했었지? 어떤 고약한 아이만 막 예뻐했고, 다른 아이들은 억울하게 혼내고 슬프게 했었다고.”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 담임의 이름뿐 아니라 표정, 머리 모양, 말투까지 기억한다. 당시 한 아이의 엄마가 학교에 자주 나타났고, 담임에게 물질적인 만족을 주곤 했다. 촌지 제공이 어색한 일이 아닌 시절이었다. 담임은 아이들 앞에서 툭하면 자랑까지 하며 그 아이를 치켜세웠다. 나는 그 사실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게는 하루하루 바른 자세로 수업을 듣는 야무진 모범생으로 지내는 것만이 관심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아이와 짝이 되었다. 녀석이 그간 짝들과 늘 다툼이 있었던 걸 알았기에 내키지 않았지만 나만 바르게 지내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가만히 있는 내게 시비를 걸었다. 말다툼이 생겼고, 담임이 우리 둘을 앞으로 불러냈다. 내가 먼저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던 찰나 담임이 무서운 도깨비 같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천둥처럼 소리쳤다.  
   “노신화! 무조건 네가 잘못한 거야! 알아?”
   나는 순간 얼음이 되고 말았다. 그간 다른 아이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긴 했는데 막상 내 차례가 되니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당혹스러웠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다시 말을 하려는데, 담임이 이번에는 삿대질까지 하며 나를 윽박질렀다. 부모님께도 좀처럼 혼나 본 적이 없었던 내게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울음을 터뜨리는 것뿐이었다. 그러자 내 옆에 서 있기만 하던 녀석이 더 크게 우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영악하고 고약하기 짝이 없었다. 담임은 우는 아기 달래듯 녀석을 감싸 안고 악어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서럽게 울고 있는 내게 몸을 돌려 다시 한번 악랄하게 악을 썼다.
   “노신화! 지금 뭘 잘했다고 울어? 뚝 그치지 못해?”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음과 억울함을 삼키려 안간힘을 썼다. 아직까지도 후회로 남는 것은 그 일을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범생으로 지내고 싶었던 나로서는 선생님에게 혼났다는 자체가 창피했다. 어리석었다. 반드시 알렸어야 했는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라온이와 로운이에게도 해주면서 강조했다. 혹시 내가 없는 곳에서 속상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내게 얘기하라고. 그래야 도움을 주고, 해결할 수도 있다면서.
 
   훗날 라온이는 자신의 1학년 시절을 떠올리면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당한 짓을 서슴지 않는 담임을 만났던 나는 마냥 암울하기만 했을까?  

  “근데, 라온아. 그때 선생님이 나빴던 게 엄마에게는 좋은 일이기도 했어. 왜냐면…… 그 선생님이 나쁜 행동 했을 때 엄마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알아?”
   “몰라.”
   “엄마는 저렇게 나쁘게 행동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엄마는 사람을 대할 때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하려고 노력한단다.”
   말을 하자마자 머릿속에 불빛이 번쩍했다. 나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와! 참 신기하다! 엄마가 그때는 논어를 읽지 않았었는데, 공자의 말대로 실천했던 거네! 공자가 그랬거든. 다른 사람의 못난 행동을 보면 나의 행동을 돌아보라고. 정말 신기하다! 어떻게 엄마가 공자랑 같은 생각을 했던 걸까?”

  물음이었지만 사실 감탄하며 내뱉은 독백에 가까운 말이었다. 그런데, 라온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차분하게 답을 주었다.
   “엄마가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고, 공자도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어서 엄마랑 공자가 서로 텔레파시가 통한 거야.”
   “세상에! 어쩜 그렇게 멋진 생각을 할 수 있니? 정말 그런가 보다. 텔레파시가 통한 것 같아.”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끼리 텔레파시가 통한다는 놀라운 깨달음을 여덟 살에게서 들으니 감동이 더 했다. 그냥 시간의 바람 속에 날려버릴 수 없는 일이었다. 붙잡고 싶었다. 나는 당장 노트북을 켜서 빛의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엄마, 지금 뭐 해?”
   “방금 라온이와의 대화를 적고 있어. 이런 건 잊지 않도록 적어둬야 해. 그리고 다음 책에 넣어서 사람들에게 알려줘야지.”
   녀석이 기분 좋게 웃더니 깜찍하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왜 이렇게 예뻐?”

  “음…… 마음이 예뻐서 그런 거 아닐까? 히히.”
   “내 생각에는 엄마는 착하고 지혜로워서 예쁜 거 같아. 왜냐면…… 지혜로운 사람은 상상력이 크고, 그래서 상상력이 커져서…… 머리가 커져서…… 그래서 예뻐 보여.”
   지금껏 그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칭찬의 표현들이 너무나 싱그러웠다. 녀석의 주옥같은 어록들을 모두 기록하고 싶었지만 시곗바늘이 나를 재촉했다.  
   “세상에나! 라온아, 정말 너무 멋진 말들이다. 시간만 되면 이런 일들 다 글로 쓰고 싶다. 근데, 지금은 식사 준비를 해야 해.”
   “엄마는 하는 일이 많아. 봐봐. 요리사고, 작가고, 한국어 선생님이고, 영어 선생님이잖아.(내가 엄마표 영어로 가끔 녀석을 지도했기에 하는 말이다)”
   “또 있어. 엄마는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하는 사람이고 싶어. 라온이도 같이 할래?”
   “좋아! 그런데…… 우리 둘만 하면 될까?”
   “둘만으론 안 될걸.”
   “왜?”
   “지구가 엄청나게 크니까. 그런데, 우리 둘이 열심히 하면 세상은 달라질 거야.”
   “어떻게?”
   그날 얻은 위대한 깨달음 덕에 나는 해답을 쉽게 찾았다. 그리고 자신 있게 답했다.
   “우리가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강하면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텔레파시를 보낼 거고, 그러면 그 사람들도 함께 행동할 거야.”
   “그러네!”


  

매거진의 이전글 멘토의 함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