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책을 읽어 주는 흐름이 자주 끊겼다. 티끌만큼이라도 이해가 안 가면 그냥 넘기지 않는 여섯 살 로운이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마다 “좋은 질문이야.”라고 호응해준 뒤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여덟 살 라온이는 가자미 눈으로 동생을 노려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데, 책장을 못 넘기니 답답해했다. 당연한 걸 묻는다며 핀잔을 주어도 로운이가 아랑곳하지 않자 귀가 따가울 정도로 악을 썼다.
“나 다음 얘기 궁금하단 말이야! 그만 좀 물어봐!”
그날따라 유난히도 사나웠다. 몇 시간 전의 답답했던 기억이 짜증을 증폭시킨 게다.
학교에서 돌아온 라온이가 자랑 섞인 목소리로 기분 좋게 말했었다.
“나, 오늘 학교에서 재미있는 이야기 들었는데, 해줄까?”
이야기뿐 아니라 당시에 느꼈던 행복까지 엄마와 동생에게 나누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황금새를 찾기 위한 왕자의 모험을 그린 이야기였다.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전개되었기에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맥락을 놓치지 않아야 했다. 꼬마 이야기꾼은 들었던 바를 최선을 다해 전하려 했지만 때로는 중요 단어나 상황을 건너뛰었다. 나는 괜찮았지만, 로운이는 그때마다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라온이가 “잘 들어봐. 로운아.”하며 친절하게, 천천히, 아나운서처럼 정확한 발음으로 얘기해주었다. 하지만 말의 속도만 달라졌을 뿐, 문제의 대목은 조금 전과 같은 내용이었다. 로운이는 그래도 이해 안 간다고 했고, 라온이의 얼굴에서 웃음기와 다정함이 사라졌다. 내가 나서서 로운이를 이해시키고 싸늘해질 뻔했던 분위기를 막아냈다. 상황이 도돌이표처럼 반복됐다. 라온이의 목소리에 점차 가시가 돋아났다. 급기야 “나 얘기 안 해!”하며 화를 냈고, 로운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라온이는 이야기를 마저 하고 싶어 했다. 내가 녀석을 달래고, 로운이 눈높이에 맞춘 설명을 중간중간 곁들인 끝에 드디어 이야기의 결말에 도착했다. 길고도, 힘겨운 이야기였다.
라온이 눈에는 로운이가 방해꾼이었다. 자신이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도, 엄마가 책을 읽어줄 때도 흐름을 막았으니까. 하지만, 로운이는 우리가 너그러움을 베풀어야 할 약자였다. 그러니 윽박지르는 것은 옳지 않았다. 나는 라온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라온아, 로운이가 자꾸 물어봐서 다음 이야기를 읽을 수 없으니까 답답한 거지? 그 마음 이해해. 음…… 라온이가 꼭 알아야 할 게 있어. 그렇게 동생에게 짜증 내면서 안 좋게 행동하면 그 행동이 라온이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돼.”
“부메랑이 뭐지? 아! 헬로 카봇(만화 제목)에 나왔던 거?”
“맞아. 헬로 카봇에서 기역(ㄱ) 자 모양으로 된 막대기를 슝 던지니까 다시 돌아왔지? 던지면 처음 자리로 돌아오는 걸 부메랑이라고 해. 그렇게 물건을 말하기도 하고, 어떤 행동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것을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온다’라고 말하기도 해.”
“그게 무슨 말이야?”
“음……. 얘들아, 우리가 옳은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아까 놀이터에서 확인했지?”
두 꼬마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얼굴이 되었다.
“아까 조종 자동차 놀이를 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OO이한테 자기도 한번 해보고 싶다고 했지? 그런데, OO이가 안 줬고, 대신 로운이가 그 친구에게 리모컨을 줬지?”
로운이가 씩 웃으며 자랑스레 말했다.
“응. 내가 그 친구 처음 보는 건데, 내 리모컨으로 하라고 줬잖아.”
“그랬더니 어떻게 됐지? OO이가 자기 걸로 하라면서 그 친구에게 리모컨을 줬지? 로운이가 좋은 행동을 하니까 OO이가 따라 한 거야. 사람 마음이 그래. 누군가 안 좋은 행동을 하면 또 그걸 따라 하게 되지. 그래서 우리는 좋은 행동을 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거고.”
이제야 녀석들의 얼굴에서 이해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로운아, OO이가 로운이를 따라 해서 로운이 기분이 어땠어?”
“좋았어.”
“그래. 아주 흐뭇했지? 결국 로운이 기분이 좋게 됐잖아. 그렇게 좋은 행동을 하면 나에게 좋은 일로 돌아오는 거지. 그런 걸 부메랑이 되어서 온다고 하는 거야. 행동뿐만 아니라, 말도 마찬가지야. 내가 좋은 말이나 행동을 하면 어떤 좋은 일이 생겨서 나한테 돌아오고, 내가 나쁜 말이나 행동을 하면 어떤 나쁜 일이 생겨서 나한테 돌아오지. 이해가 됐나요?”
“응.”
매번 느끼지만 이런 얘기를 아이들은 매우 좋아한다. 눈빛이 얼마나 반짝이는지 모른다. 말과 행동의 부메랑에 대한 기본 개념을 이해했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가 되었다.
“이렇게 될 수도 있어. 만약 라온이가 좋은 일을 하면, 소중한 사람에게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어. 엄마, 아빠, 로운이, 할머니, 이모…… 이런 사람들한테. 반대로 안 좋은 일을 하면 소중한 사람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지. 조금 전에 라온이가 로운이한테 짜증 내면서 말했었잖아. 그것 때문에 엄마가 기분이 안 좋게 되었어. 라온이는 라온이 덕분에 엄마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좋겠어?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좋겠어?”
“좋은 일.”
“그렇지? 만약 라온이가 동생에게 다정하고 부드럽게 말하면 라온이하고, 라온이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 생길 거야.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응.”
“우리의 말과 행동이 부메랑이 되어서 돌아온다는 걸 꼭 알고 조심하도록 하자. 좋은 말과 행동을 하면 되는 거야. 알겠나요?”
“응.”
녀석들과 대화를 나누면 내게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이 인다. 삶에 있어 중요한 기준을 세우거나, 다짐을 하게 된다. 이처럼 아이는 어른에게 차원이 다른 코치다. 그 어떤 방향 제시나 강조하는 바가 없는데도 변화하고픈 의지를 싹 틔우고 키워준다. 그저 순수한 눈망울로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질문이나 대답을 할 뿐인데 말이다. 그날도 그랬다. 나는 중요한 기준을 다시금 세우고 다짐을 했다. 그리고 나의 꼬마 코치들에게도 나눴다.
“엄마는 엄마랑 우리 라온이, 로운이,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서 좋은 말과 행동의 부메랑을 날릴 거야. 자, 부메랑아! 멋진 일이 되어서 돌아와라! 슈우웅.”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부메랑을 힘껏 날리는 시늉을 과장되게 하자, 녀석들은 내 손끝이 향한 곳을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반짝이는 눈동자에 호기심과 희망을 가득 담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