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떼쓰는 작은 인격체입니다

by 노신화

아이의 떼 부림을 현명하게 다스리는 것은 부모의 중요한 숙제이자 깊은 고민거리다. 부모를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 절실하다. 고집과 떼 부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도 부모도 지치게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어떤 떼 부림은 부모의 윽박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그 경험은 추후 또 다른 떼 부림의 씨앗이 된다. 아이가 전보다 더 높은 강도로 떼를 부리는 것이다.
아이니까 떼를 부리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시간을 줄이도록 부모가 도와야 한다. 아이의 떼 부림으로 흘려버릴 시간들을 놀이와 대화, 쌓인 집안일을 하는 데 활용하면 얼마나 좋단 말인가!

나는 올해로 여덟 살과 여섯 살 되는 사내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녀석들의 고집과 떼 부림 때문에 너무나 힘들어서 머리에 연기가 나고 가슴을 쳤던 순간이 얼마나 있을까? 내 기억에는 없다. 나 역시 많은 부모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힘들고 난처한 상황들에 맞닥뜨리곤 했지만, 아이와 나 모두가 미소 지을 수 있는 방법으로 해결한 덕분이다. 나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제부터 아이의 떼 부림을 다스렸던 나만의 독특한(?) 노하우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번쩍 안아주면 바닥에 내려오지 않으려 발버둥 칠 때

첫째 라온이가 생후 18개월이었을 때, 공원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두 팔을 위로 올려 "아, 아." 하며 안아달라는 녀석을 남편이 번쩍 안아주었다. 어느 정도 걸은 뒤 바닥에 내려주려 하니 라온이는 고개를 흔들며 거부했다. 남편은 장소를 정하고 그곳까지만 안아주기로 한 뒤 또다시 걸었다. 약속했던 장소에 도착했지만 녀석의 거부는 더욱 완강했다. 남편은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었다.

드디어 마지막 장소. 아빠가 어떻게든 내려주려 하자 라온이는 고개를 저어대며 공중에서 수영하듯 발버둥을 쳐댔다. 아빠의 목을 어찌나 세게 감싸 안았던지 남편은 담에 걸린 사람처럼 고개를 움직이지도 못했다. 주위에서 사람들의 혀를 끌끌 차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나서야만 했다. 여기까지만 안아주기로 했으니 내려와야 한다고 다시 강조해봤자 소용없을 게 뻔했다. 녀석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뿐이니까.

그 순간 데일 카네기가 떠올랐다. 그는 인간관계를 위해 도움이 되는 다양한 원칙들을 제시했다. 나는 서른 초반에 ‘데일 카네기 코스’라는 수업을 통해 그 원칙들을 알게 되었다. 그중 내가 특히 좋아하는 것이 있다.


J. 피어폰트 모건은 인간의 심리를 분석한 글에서,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그럴듯하게 보이는 이유이고, 또 하나는 진짜 이유이다. 행위를 하는 사람은 그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그 점을 강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 내심으로는 모두 이상주의자이므로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좀 더 고상한 동기에 호소해야 한다.


- 《인간관계론》중에서(데일 카네기, 카네기 연구소 펴냄)


과연 생후 18개월 아이에게도 이 원칙이 통할지 모르겠지만 도전해보기로 했다.
“라온아, 잠깐만. 엄마 얘기 좀 들어줄래? 아빠가 라온이를 계속 안고 계시면 허리가 아파. 라온이도 허리 아플 때 있지? 그때마다 엄마가 허리 마사지해주지? 그러니깐 아빠 허리 안 아프시게 이제 내려와서 걸을까?”
라온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뗐다.
“거.”
“뭐? 걸어가겠다고?”
녀석이 고개를 끄덕인 뒤, 아빠 목을 감쌌던 팔을 풀자 나도 모르게 탄 성이 나왔다.

나는 라온이에게 아빠를 위하는 아이가 되는 방법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녀석에게 있어서 ‘멋진 효자’가 된다는 것은 ‘고상한 동기’였기에 기분 좋게 내 말을 따랐다. 역시 데일 카네기의 방법은 이렇게 작은 아이에게도 통했다.


《우리 집에는 꼬마 철학자가 산다》중 '아빠를 위하는 아이가 되는 방법'의 일부였습니다.





낮잠 시간이지만 안 자겠다며 고집부릴 때


첫째 라온이가 생후 35개월이었을 때다. 낮잠 자러 들어갈 시간에 맞춰 읽어주기로 한 책들을 모두 읽어준 터였다. 하지만, 녀석은 얼굴에 졸음이 짙게 깔려있으면서도 책을 더 읽어달라며 고집을 부렸다. 조금 있으면 피곤 때문에 짜증을 부릴 게 뻔했다. 게다가 더 지체했다가는 낮잠 기회를 놓쳐버릴 수도 있었다. 먼저 꿈나라에 가 있던 둘째가 조만간 깰 시간이었다. 그전에 라온이를 재우고, 둘째의 간식까지 준비해두려면 시간이 빠듯했다.
“라온아, 우리 이 책만 읽고 자러 가기로 약속했잖아. 그래서 엄마가 정성껏 읽어준 거야. 그리고, 라온이는 지금 자야만 해. 너무 졸려하는 게 엄마 눈에는 다 보여. 낮잠을 자야지 더 건강해지고 무럭무럭 자랄 수 있어. 자고 나면 더 신나게 놀 수 있어. 그러니까 자러 가자. 응?”
라온이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더니 손에 든 책을 내게 내밀었다. 최후의 방법을 써야만 하는 걸까? 무서운 얼굴로 단호하게 말하는 것 말이다. 요 며칠 그래야만 녀석이 뜻을 굽히고 침실로 향하곤 했다. 오리주둥이만큼이나 삐죽 내민 입술로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비록 토라진 채로 침대에 눕기는 했지만 빠르게 잠이 들었다.

그날만큼은 그런 식으로 재우는 것이 도무지 내키지 않았다. 나는 라온이를 바라보다가 차분하게 말했다.
“라온아, 엄마가 중요한 얘기를 해줄게.”
“뭐?”
엄마는 라온이가 뭔가를 해달라고 하는 걸 들어주는 게 아주 기뻐. 반 면에 해달라고 하는 걸 못 들어주면 기분이 안 좋지. 지금 낮잠 잘 시간 이 많이 늦어져서 책을 더는 읽어줄 수가 없거든. 그런데도 라온이는 계속해서 읽어달라고 하고 있어. 엄마는 라온이의 요구를 들어줄 수가 없어. 어쩔 수가 없는 거야. 그럼 엄마 기분이 어떨까?”
라온이는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맑은 눈동자로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그러면 이 책은 자고 일어나면 읽자. 그러자.”
솜사탕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하는 라온이. 더 놀고 싶은 마음마저 접었는데도 아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얼굴에 자상함 까지 비쳤다. 속상함으로 굳어버릴 뻔했던 내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나는 녀석을 힘껏 안아주었다. 내게 행복을 안겨준 고맙고도 대견한 작은 천사를.
“응, 그러자. 고마워, 라온아. 엄마가 거절하지 않게 해 줘서.”
라온이는 내 손을 잡고 앞장서서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빠르게 잠들었다.


《우리 집에는 꼬마 철학자가 산다》 중 '세상에 온기를 채우는 심성'의 일부였습니다.





장난감을 사주기 전에는 한 발짝도 안 움직이려는 아이


부모는 자주 고민에 빠진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줄 수는 없으니까. 아이를 설득할 때 흔히 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미끼 던지기’다. 아이가 좋아할 만한 무언가로 마음을 움직이 는 것이다. “지금 집에 가면 과자 사줄게.”, “말 잘 들으면 장난감 사줄 게.”……. 아이가 웃으면서 부모의 말을 따른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미끼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력한 (?) 미끼가 있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자주 쓴 미끼는 어느 순간부터 아무 소용이 없게 되므로.


다른 하나는 ‘으름장 놓기’다. 말을 안 들으면 나쁜 일이 생길 수 있음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 상황을 피하려면 부모 말대로 할 수밖에. “장난감 정리 안 하면 다 버려 버릴 거야.”, “자꾸 그러면 앞으로는 영상 안 보여줄 거야.”……. 아이의 협조를 즉각적으로 끌어내는 데 제법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해맑던 아이의 얼굴에 두려움이나 짜증이 드리워진다. 부모 또한 자기 뜻대로 됐지만 유쾌하지 않다. 찜찜하기도 하고 후 회스럽기도 해서.


많은 부모가 애용(?)하는 ‘미끼 던지기’와 ‘으름장 놓기’는 둘 다 가볍지 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확실한 효과를 위해 미끼는 더욱 매력적이고, 으름장은 더욱 센 것이 쓰일 게 뻔하다. 그것에 지속해서 노출된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될까?


나도 자식을 설득할 때 미끼와 으름장을 활용하는 엄마다. 하지만 나만의 기준이 있다. 장난감 가게에서 장난감을 사달라며 고집을 부리는 네 살배기 둘째에게 나는 진지하지만 다정하게 말했다.
“로운아, 지금 이렇게 떼를 쓰면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 ‘다음에 백화점에 오면 또 이렇겠지?’ 하는 거야. 그렇게 되면 다음에는 로운이랑 백화점에 오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거고. 엄마는 로운이랑 다음에도 백화점에 오고 싶어. 그러니까 오늘은 그냥 가면 좋겠어. 그럴 수 있을까?”
내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던 로운이가 이윽고 입을 뗐다.
“그래. 집에 가자.”
그날 우리는 기분 좋게 웃으며 손을 꼭 잡고 집으로 갔다.


나의 미끼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내 말을 들었을 때 아이가 얻게 되는 기회나 긍정적인 상황이다. 나의 으름장은 ‘염려’라는 옷을 입고 있다. 엄마 말대로 하지 않았을 때의 불이익을 알려주는 것은 맞지만 안타까움과 걱정이 묻어있다. 내 방식의 핵심은 아이 스스로 행동의 결과를 머릿속에 그려보고, 판단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 에게 더 유리할지를.


《우리 집에는 꼬마 철학자가 산다》 중 '미끼와 으름장'의 일부였습니다.




무조건 엄마 손을 잡고 "빨리 와." 하며 잡아 끄는 아이


한 겨울바람이 매서운 날씨라 자가용을 타고 싶었지만 여섯 살, 네 살 형제의 청대로 버스를 탔다. 나는 여분의 아동복, 물티슈, 손수건, 간식, 마실 물 등을 챙겨 가방에 넣었다. 제법 무게가 나갔다. 아이들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조그만 자동차를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다. 마침내 백화점에 도착했고, 두 꼬마가 원하는 것들을 하나씩 들어주었다. 쌀국수를 먹고, 토르티야도 먹고, 장난감을 구경하고, 에스컬레이터를 실컷 탔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이 없는 일들인데도 우리 집 두 꼬마는 장소를 옮길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마지막 장소는 문화센터 앞 쉼터에 비치된 어린이 책을 읽는 곳이었다. 나는 녀석들이 들고 온 책들을 모두 읽어주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주면서도 머릿속에서 맴돈 것이 있었다. 걸어오던 길에 스치듯 봤던 옷. 할인 중이라 가격도 마음에 들었다. 때마침 라온이가 자석 칠판에 한글 자음, 모음을 붙이며 놀기 시작했고, 로운이는 책장에서 책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기회였다. 내가 잠깐 옷 좀 보고 오겠다고 하니 라온이는 흔쾌히 허락했다. 친정엄마에게 아이들을 부탁하고 뛰다시피 움직였다. 바로 옆 매장이라 금방 다녀올 수 있는 거리였다.


직원이 내가 입어 볼 수 있도록 옷을 준비하는 사이 로운이가 왔다. 녀석은 내 손을 잡아끌며 빨리 가자고만했다. 내가 잠깐이면 된다고, 꼭 필요했던 옷이라고 말해도 소용없었다. 난감한 얼굴로 쳐다보는 내게 직 원이 웃으면서 “다녀오세요.”라고 했다. 나는 곧 돌아오겠다는 눈빛을 보낸 뒤 네 살에게 끌려(?)갔다.


로운이는 골라뒀던 책을 내게 내밀었다. 마음이 다른 곳에 있으니 내 목소리 연기가 영 신통치 않았다. 딸의 마음을 알아챈 친정엄마가 자석 칠판에 숫자들을 붙였다 떼며 말했다.
“로운아, 이리 와봐. 이게 뭐야. 할머니한테 이거 좀 가르쳐줄래?”
로운이가 그쪽으로 다가갔다. 나는 서둘러 옷 가게로 가서 준비된 옷을 입었다. 거울을 보려던 순간, 로운이가 와서 앙칼지게 나를 부르더니 막무가내로 내 손을 잡아끌었다.
“엄마, 빨리 가자. 빨리 가자.”
“로운아, 이제 다 됐어. 이거 엄마한테 맞는지 한 번 보고 계산만 하면 돼.”
로운이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저어댔다. 내가 불쌍한 표정까지 지어 보이며 사정했지만, 녀석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데다가 낮잠을 자지 않은 탓에 몰려온 피곤이 녀석의 짜증을 부풀렸다.
직원이 또다시 웃으면서 다녀오라고 했다. 하지만 로운이를 재우기 전에는 못 돌아올 것이 뻔했다. 그때 친정엄마와 라온이가 왔다. 로운이는 같이 가자며 잡은 할머니의 손을 뿌리쳤다.

나는 한쪽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서 녀석에게 눈높이를 맞췄다.
“로운아, 아까 로운이가 좋아하는 버스 탔지?”
로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하는 버스 얘기에 짜증이 옅어졌다. 나는 말을 이었다.
“로운이가 좋아하는 쌀국수도 먹었지? 그리고 로운이가 좋아하는 토르티야도 먹었지? 로운이가 좋아하는 장난감 구경도 했지? 또 로운이가 좋아하는 책도 읽었지? 오늘 로운이가 좋아하는 것들 많이 해서 좋았지?”
모든 질문마다 로운이는 아무런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엄마가 원하는 것도 했으면 좋겠어. 어때?”
우리는 모두 침묵 속에서 네 살 배기의 반응을 기다렸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정은 평온했다. 나는 고맙다면서 꼭 안아주고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그날, 로운이를 설득하기 위해 데일 카네기의 ‘상대방을 설득하는 12가지 방법’ 중 하나를 적용했던 것이다. 나는 로운이가 끄덕일만한 질문을 거듭했고, 결국 녀석은 엄마를 위해 마음을 열어주었다.


상대방이 당신의 말에 “네, 네”라고 대답하게 하라.


- 《인간관계론》 중에서(데일 카네기, 카네기 연구소 펴냄)



《우리 집에는 꼬마 철학자가 산다》 중 '엄마가 원하는 것도 하면 좋겠어'의 일부였습니다.




아이의 떼 부림을 다스리는 경험을 할 때마다 확인하는 사실이 있다. 아이들은 몸집만 작을 뿐, 나와 다름없는 인격체라는 것. 아이들이 한 인격체로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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