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님, 금수저였네, 어쩐지…!”
내가 가진 편견을 깨닫고 얼굴이 뜨거워질 만큼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뒤, 같은 과를 나온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친구는 대학원에 다니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여러 개하고 있었다. 대화를 하다가 친구가 고충을 털어놓았다.
“알바 때문에 대학원 활동에 나만 빠질 때가 있거든. 대학원 선배들이 그걸 지적해서 K 교수님한테 고민 상담을 했어. 교수님은 뭐가 더 중요한 건지 우선순위를 파악해서 집중해보라고 하시더라.”
친구의 어려움에 쉽게 이입이 됐다. 나는 K 교수님 수업은 들은 적 없지만, 학교에서 종종 마주쳤던 그분의 모습을 떠올렸다.
K 교수님은 무스를 발라 올려세운 머리, 딱 붙는 작은 귀걸이를 착용하고 슬림핏의 정장을 입은 차림새였고, 늘 조금은 능글맞아 보이기도 하는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청바지처럼 캐주얼한 복장의 교수님들이 많았기에 그분의 매끈한 정장 차림이 내 인상에 깊게 박혔던 것 같다. K 교수님의 이미지는 해외 유학파인 그의 배경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그 교수님은 집이 잘살아서 너한테 그렇게 말한 거 아니야? 뉴욕에서 석박사 하셨을 정도면.”
“그건 아냐. 집안 형편이 안 좋았다고 하셨어. 장학금 받으면서 유학했고, 알바도 많이 하고 고생하셨대.”
친구는 교수님에 대해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다. 인사 외에는 말 한마디 나눈 적 없으면서 마치 K 교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듯 말했던, 10여 초 전의 내가 부끄러워졌다. 친구는 하던 얘기를 마저 이어갔지만 나는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K 교수님의 어려운 가정 형편이 너무 의외여서라기보단, ‘내가 몇 없는 정보로 어떻게 그렇게 확신에 차서 말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나는 친구의 대답을 듣기 전으로 돌아갔다. K 교수님은 미국에서, 그것도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에서 유학 생활을 했으니 집안이 잘살겠지. 번드르르 해 보이는 옷차림이나 여유로운 태도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다. 우선순위를 파악해서 집중하라는 교수님의 조언도 너무 원론적으로 느껴졌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누가 그걸 몰라서 못 하랴. 그런 조언이 나온 건 K 교수님이 고학생의 심정을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이기 때문이겠지, 이것이 나의 사고판단 과정이었다. 곱씹어보니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추측들이었다. 추측들이 결합해 확신이 되는 데에는 내 머릿속에서 채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 후 쉽게 판단하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이때의 경험을 되새기며 경계했다. 쉬운 판단은 편견으로 이어지기 십상이었다. 편견을 갖는 건 상대에게 실례이기도 하고 내 판단을 스스로 신뢰할 수 없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몇 년 후, 뜻밖에도 내가 ‘금수저’로 오해받는 일이 생겼다. 회사에서 취미에 관해 사담을 나누다 자연스레 내 경험을 말을 때였다.
“대학생 때 미술을 배우러 다녔거든요.”
“N 님, 금수저였네, 어쩐지…!”
회사 분의 말에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우리 집은 잘살지도 않고, 비용이 부담돼서 미술 배우는 것도 몇 달만 하고 그만뒀다고 나는 부랴부랴 해명했다.
“나는 대학생 때 알바 하느라 바빠서 취미 배우는 건 생각도 못 했거든요. 취미도 즐기고 좋았겠다.”
그 분의 반응을 보니 내 해명이 효과는 있는 걸까, 석연치 않았다.
이후로도 이 비슷한 얘기를 그 분과 나누게 되었다. 그 분의 처지에 공감이 되고 안타까운 한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마음이 불편했다. 누군가 나를 대놓고, 진심으로 부러워한 적은 내 기억엔 처음이었다.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건 소위 말하는 금수저, 엄친아, 엄친딸이라고 생각했고 그에 반해 나는 너무 평범, 아니 어떤 기준에 따라서는 평범 이하가 될 때도 잦았다. 그런 나이기에 부러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을 잘 몰랐다. 막상 내가 그 입장이 되자, 부러움 받는 사람의 객관적인 ‘스펙’보다는 부러워하는 사람의 심정이 더 잘 느껴졌다. 그 분의 말과 표정에서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짙게 깔려있었다.
내가 K 교수님을 금수저로 오해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내가 쉽게 편견을 가진 건, 그를 부러워했기 때문 아닐까? 내가 가진 결핍이 그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해외 유학 경험이 있는 사람을 막연히 동경해왔다. 유학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은 멋있어 보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걸스카우트를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걸 스카우트 신청 안내문에 단복 가격이 10여만 원인 것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엄마에게는 단복이 너무 비싸서라곤 말하지 못하고, 그냥 안내문을 보여주며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엄마가 걸스카우트를 내가 먼저 권유했기에 나는 엄마가 신청해보라고 하면 못 이기는 척 따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걸스카우트의 안 좋은 점을 얘기하며 내 결정을 반겼다. 여러모로 돈이 많이 든다는 단점을 얘기했던 것 같은데 오래전 일이어서 기억이 정확하진 않다.
아무튼, 나는 ‘낮은 비용 대비 많은 경험’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래서인지 국내 여행, 독서 모임, 언어교환 사이트에서 외국인 친구 만들기, 강의 수강하기 같은 것들을 하며 직·간접 경험을 쌓았다. 하지만 해외 유학은 시도할 엄두조차 안 났다. 영어 실력이나 내가 직접 돈을 마련하는 방법 등은 차치하더라도(왜 차치했는진 모르겠다) 일단 돈 때문에 유학은 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돈만 없었던 게 아니라 열정과 동기(유학으로 특별히 배우고 싶은 분야는 없었고 새로운 경험 그 자체를 선망했다), 모험심 또한 부족했지만, 첫 번째 이유는 돈으로 내세웠다. 그편이 좀 더 마음이 편해서였을까?
내 주변에는 교환학생을 제외하면 유학한 사람도 없어서, 내가 유학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피상적이었다. 그래서 K 교수님에 대한 나의 편견이 그렇게 쉽게 발생한 것 아닐까? 나는 뉴욕 유학파인 K 교수님의 집안이 잘살 거라고 쉽게 단정했다. 유학했거나 주변에 그런 사람이 많아서 데이터가 풍부한 사람이라면, K 교수님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지 않았을까?
사람이든 분야이든 무언갈 잘 아는 사람에게 물었을 때, “케이스 바이 케이스지. 경우마다 달라서 하나로 딱 이렇다, 말하기는 힘들어.”라는 답변이 자주 나오곤 한다. 잘 아는 그룹에서는 다양성과 차이점을 보고, 낯선 그룹에서는 단일성과 공통점을 발견해내는 것이 인간의 습성 같기도 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회사 분은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녔고, 알바해서 용돈을 버는 건 물론 집에 생활비까지 드렸다고 한다. 나는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알바도 했지만, 대학시절 매달 용돈을 받았으며 집에 생활비를 드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가족 부양과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나는 회사 분이 나를 금수저로 오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나도 나 자신을 치우쳐서 생각했던 거 아닐까? 누군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나’를 자각하게 되었다. 그 사람은 집안의 지원이 부족해서 경험할 기회를 놓친 사람이 아니라, 지원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즐길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나의 부러움은 K 교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했지만, 회사 분의 부러움은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알게 했다.
처음 K 교수님에 대한 편견을 깨닫고는 다른 사람을 잘못 판단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내 시선은 바깥에 가 있었고 정작 내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볼 생각은 못 했다. 나에 대한 이해 없이 타인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할까? 나 자신에서 출발해 타인을 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에 빗대 타인을 보고 또 타인에 빗대 나에 대한 인식을 수정하는, 돌고 도는 고리 안에서 우리는 불완전하게나마 나와 세상을 이해하는 게 아닐까?
다른 사람이 부러울 때, 남의 속도 모르고 저런 소리 한다 싶을 때, 시선의 방향을 돌려서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겠다. 거기에는 아직 발견되지 못한 결핍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결핍은 나와 타인에 대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말해줄 것이다.
당신에게는 어떤 결핍이 있나요? 그 결핍 때문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