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맵싹한 명태찌짐

내 지역성, 내 입맛이라는 정체성

by N의 노트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는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는 경상도 지역 음식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순대를 먹을 때 경상도는 쌈장에, 전라도는 초장에, 충청도와 강원도는 새우젓에, 서울은 소금에 찍어 먹는다는 얘기 정도를 인터넷으로 접했을 뿐, 아예 우리 지역만의 음식이 있다는 건 생각지 못했다. 내가 먹는 음식이 보편일 거라 으레 생각했던 것 같다.


서울로 이사 와서야 내가 즐겨 먹던 소고기뭇국은 ‘경상도식’ 소고기뭇국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냥 소고기뭇국이라고 말하면 상대는 국물이 멀건 국을 떠올리곤 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고춧가루를 넣어 국물이 칼칼한 소고기뭇국인데 말이다. 나는 그 맛을 ‘육개장과 비슷한데 국물이 좀 더 맑다’고 설명하곤 했다. 마산 아구찜처럼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고 인지도가 높은 음식은 굳이 부연할 일이 없지만, 소고기뭇국이나 부침 만두, 동래파전은 종종 설명을 요했다. 그래도 이 정도는 다른 지역 사람도 많이 아는 음식이어서 소통이 그리 어렵진 않았다.


최고난도는 따로 있었다.

서울 토박이 친구가 부산 여행을 가서 뭘 먹을지 고민이라며 내게 조언을 구해왔다. 나는 친구가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경험해보기를 바랐다. 돼지국밥을 먹으러 가는 건 이미 친구의 계획에 있었기에 나는 명태전을 추천했다.

“명태전, 그것도 경상도 음식이야? 제사상에 올라오는 거 맞지?”

친구가 내게 질문했다.

“그건 가시 발라서 동그랗게 부친 거잖아. 근데 내가 말하는 명태전은 명태 한 마리를 펴서 통째로 부친 거라 뼈가 그대로 있어.”


그래도 친구는 머릿속에서 음식이 잘 그려지지 않는 것 같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사진을 보여주고 싶어 검색했는데, 몇 페이지를 넘겨도 ‘제사상 명태전’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명태전을 먹었던 마산이라는 지역명을 붙여 검색했더니 드디어 원하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친구는 마산이 아니라 부산에 가는데? ‘부산 명태전’이라고 검색해도 되긴 하지만, 앞에 붙는 지역명을 줏대 없이 이리저리 바꿀 순 없는 노릇이었다. 명태전은 안동 찜닭, 동래(부산시 동래구) 파전과는 달리 함께 불리는 지명이 굳어져 있지 않았다.


고민하던 나에게 ‘명태찌짐’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보였다. 찌짐은 지짐이(기름에 지진 음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경상남도, 함경남도 방언이다. 일본에서도 전은 찌지미(チヂミ)로 불리는데, 우리 동남 방언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고 한다.

아무튼, 명태전으로 검색했을 때는 제사상 명태전 일색이던 웹페이지가, 명태찌짐으로 검색하니 완전히 달라졌다. 땡초(매운 고추)와 정구지(부추), 방아잎(배초향; 토종 허브)이 들어간 ‘명태 한 마리’ 전이 나왔다. 나는 친구에게 이 음식의 비주얼과 이름을 제대로 알려줄 수 있어 기뻤다. 명태전도 맞는 말이지만, 찌짐이라는 동남 방언을 붙였을 때 비로소 다른 명태전과 구별이 쉬워지고 지칭하는 바가 명확해졌다. 정보의 바다에서 나를 구해준 언어의 힘이란!


그러나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친구는 짧은 여행 일정 탓에 부산에서 명태찌짐을 맛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우습게도 친구에게 설명해주다 나야말로 명태찌짐이 너무 먹고 싶어져 버렸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명태찌짐을 서울로 택배 보내달라고 부탁하게 되었다.

사실 창원에서도 명태찌짐은 흔히 볼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엄마는 명태찌짐을 사러 차를 타고 50여 분을 달려 마산 부림시장에 갔다. 감사하게도 그렇게 산 명태찌짐을 냉동해서 아이스박스에 담아 서울 우리 집으로 보내주었다.




나는 서울 토박이 친구를 우리 집에 초대해 내가 자랑해 마지않던 명태찌짐을 대접했다. 얼린 찌짐을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구우니 맛있는 냄새가 퍼졌다. 탄수화물과 기름이 빚어내는 고소한 냄새! 연노랑을 띠는 제사상 명태전과 다르게, 명태찌짐은 마이야르 반응으로 인해 군데군데 먹음직스러운 갈색을 띠었다. 바삭바삭한 겉면을 깨물면, 안은 부드럽기 그지없다. 탱글탱글한 명태살과 부추, 고추 등 아삭한 채소가 짭조름한 밀가루 반죽 안에서 조화를 이루었다. 초간장이 따로 있지만, 굳이 찍어 먹지 않아도 간이 알맞았다. 풀밭을 입안으로 들인 듯 방아 향이 퍼지면, 느끼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찌짐이 한 입, 두 입 끊임없이 들어간다. 식당에서 뜨끈할 때 바로 먹는 것만은 못 하겠지만, 내가 그리워한 바로 그 맛이었다.



친구는 전이 매콤하다고 했지만, 나는 ‘맵싹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표준어가 아니라서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진 않지만, 네이버 오픈사전에서는 “아주 맵지는 않지만, 혀나 목구멍 또는 코에 자극을 받아 아린 듯한 느낌이 조금 있을 때, 고성·대구·부산·통영·합천 등지에서는 ‘맵싹하다’라고 한다”고 서술되어 있다. 학술적으로는 충분할지 몰라도, 내 감성엔 어쩐지 부족한 정의 같다.


내게 ‘매콤’은, 떡볶이가 매콤달콤하다고 할 때처럼 달콤과 잘 붙어 다니는, 조금은 귀여운 인상의 매운맛이다.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인상이지만 말이다. 표준어 ‘맵싸하다’는 내겐 입말 같지 않고 왠지 벽이 느껴진다. 반면 맵싹하다는 많이 들어서인지 친근하다. 개운하고 기분 좋은 매운맛이 그려진다. ‘맵다’의 열기에 ‘오싹하다’의 냉기가 만나서일까? 사우나로 시원하게 땀을 뺐을 때처럼 감각을 뒤흔들어놓게 매력적이다.


내 개인적 인상을 오래 늘어놓은 건, 맛이라는 ‘추상적이고 주관적이고 감상적인’ 감각을 설명하기엔 모국어(이 경우엔 사투리)가 제격이라는 걸 새삼 느껴서이다. 서울말이 모국어인 친구에게는 그 맛에 ‘매콤하다’가 찰떡같이 잘 어울리겠지만, 나의 경우는 좀 다른 것이다.

그동안 나는 고향 사람들과 있을 때를 제외하곤 사투리 쓰는 걸 자제해왔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그리고 고향이 아닌 이곳에서 자연스레 섞이기 위해서였다. 사실 우리 세대는 억양은 남아 있지만, 우리 부모·조부모 세대만큼 사투리 단어를 많이 쓰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맵싹하다’고 말했을 때, ‘그래, 이건 맵싹하다는 말로밖엔 설명이 안 돼!’ 싶었다. 그동안 나는 왜 언어가 완전히 치환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적어도 내게는 ‘매콤’이 ‘맵싹’을 대체할 수 없었다. 서울 친구가 내 느낌을 온전히 느끼진 못하더라도, 나는 이 맛을 ‘맵싹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동안 쓰려다가, ‘아 맞다, 사투리지’하고 표준어로 대체했던 몇몇 단어들이 생각났다. 내가 표준어로 대체하려고 했지만, 어감을 살리지 못해 아쉬웠던 단어는 아래와 같다.


“아가 와 이리 예빘노.” (애가 왜 이렇게 야위었어?) →‘예비다’에는 안쓰러움과 다정함이 녹아 있는 듯하다. ‘예비다’는 ‘여위다’와는 달리 긍정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예비니까 이런 옷도 예쁘지’처럼 쓰는 걸 듣기도 했다.


“이 옷은 여럽다.” (이 옷은 제 나이에 안 맞게 주책스럽거나 부끄럽다.) → 표준어로 바꾸면 너무 길어진다! 캐릭터가 크게 그려진 스몰 사이즈 티셔츠를 누가 내게 권한다면, 나는 대번에 여럽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방바닥이 찹찹하네.” (방바닥이 적당히 시원하네.) → 열대야일 때 내 체온에 데워진 방바닥을 떠나 찾은 ‘대나무 자리’의 온도를 표현하기엔 ‘차갑다’, ‘시원하다’보다 ‘찹찹하다’가 더 적합하게 느껴진다.



타 지역 사람들한테 얘기할 때도 이런 사투리를 쓰되 그 뜻을 설명해주면 소통에도 문제없고 언어도 더 풍부해질 것 같다.

나는 죽기 전에 세상에 있는 맛있는 음식은 모두 먹어보는 것이 꿈일 정도로,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좋아한다. 덜 익숙한 나라, 처음 들어보는 메뉴일수록 호기심이 커지고 선택 확률이 높아진다. 그 아래에는 낯선 경험에 대한 갈구가 있는 거 같다. 나 자신을 우물 안 개구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다 최근에 안 사실은, 내 우물로 다른 이를 초대할 때 비밀스러운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는 거다. 서울 친구에게 명태찌짐을 처음 알려줬을 때, 우리 집에서 함께 먹었을 때가 그랬다. 내 지역성, 내 입맛이라는 정체성을 보여주고 공유한 것 같았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 말일까? 솔직히 “명태찌짐이 맵싹하니 맛있네.”라고 말할 때는 통쾌함마저 들었다. 아마 표준어 사용자들은 이 시원함을 외국에 가지 않곤 느끼기 어렵지 않을까? 앞으론 이런 남다른 즐거움을 더 자주 누리고 싶다.




표준어로 대체할 수 없는 사투리, 혹시 떠오르는 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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