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를 읽고
최근에 알게 된 지인이 내게 주말에 무엇을 하며 보내는지 물었다.
나는 에세이를 쓰고 있다고 답했다. 1년 넘게 에세이 모임을 하고 있는데, 참 즐겁다고 덧붙였다. 지인은 창작을 한다는 점에서 나와 자신이 다르다며 내 취미를 특별하게 여겨주었다.
그의 반응이 고마웠지만, 사실 그렇게 특별히 어려운 취미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내 취미는 단순히 에세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에세이를 써서 모임 사람들과 나누고, 글을 통해 그 외의 것들까지 교류하는 것’이다. 과연 이 사람들이 없었다면 내가 에세이를 꾸준히 쓸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이들을 떠올리며 에세이를 썼다.
내가 참여 중인 에세이 모임은 작년(2023년)에 수강했던 에세이 강좌의 후속 모임이다. 그 강의의 선생님은 책『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의 저자 정문정 작가님이셨다. 마지막 수업 날, 작가님은 우리 모두에게 책 한 권씩을 선물해주셨다.
내가 받은 책은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라는 소설이었다. 책 속지에 붙은 메모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주변을 관찰하면서도 자기의 중요한 질문을 지켜가시길.” 아마도 내 글과 이 책이, 주변을 관찰하며 자신의 질문을 던지는 점에서 닮았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책을 읽은 지금은 그 말씀이 와닿는다.
『어떻게 지내요』의 첫 문장은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의 말이다.
이웃을 오롯이 사랑한다는 것은 그저 “어떻게 지내요?”하고 물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소설은 인류문명의 종말과 말기 암으로 죽음을 앞둔 친구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인류의 죽음과 개인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화자는 독자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담담하게 서술한다. 작가의 독특한 유머 감각과 우아한 사유가 이야기에 깃들어 있다.
화자는 아픈 친구를 보살피고 인류의 종말에 책임감을 느끼지만, 지나치게 거기에 침잠하지는 않는다. 그건 대상과 화자 간 어느 정도 정서적 거리가 있어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 대상이 너무 가까웠다면 감정에 압도되어 화자의 삶이 흔들렸을 것이고, 너무 멀었다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인류와 친구는 화자에게 ‘이웃’의 개념과 닮아있다.
이웃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는 ‘나란히 또는 가까이 있어서 경계가 서로 붙어 있음’이다. 즉, 영향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운 타인이지만, 나와 완전히 동일시되지 않는 존재다.
『어떻게 지내요』는 다양한 이웃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말기 암 친구뿐만 아니라 화자 주변 인물들, 화자가 접한 영화나 소설 속 인물들까지 각자의 이야기가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마치 에세이 같다는 평을 듣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의 일기장을 보는 것 같단 평에도 공감했다. 내밀한 심리와 사유가 해부도를 보듯 솔직하고 명료하게 그려져 있었다.
우리 에세이 모임 역시 비슷하다. 우리는 매번 모임을 근황 이야기로 시작한다. 에세이 모임이지만 합평보다 근황 얘기가 더 길어질 때도 있다. 2주에 한 번씩 “어떻게 지내요?”라고 물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관계를 가지라고 적극 권하고 싶을만큼.
매일 묻는다면 대답할 새로운 이야기가 적어질 것이고, 1년에 한 번 묻는다면 근황이라고 하기엔 너무 긴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상대와 내가 너무 많이 변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2주에서 한 달 주기가 어색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주기라고 생각한다. 너무 반복적이고 일상적이지 않게, 갑작스럽거나 어색하지도 않게 안부를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이 모두를 이해하고 내 편이 되겠다고 약속해줄 사람, 내가 잠든 사이에 약을 변기에 넣고 내려버리는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 사람이야. 지금 당장 나와 너무 가깝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신뢰할 수 있지만 쭉 만난 건 아닌 사람(p.133)
소설 속 말기 암 환자는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할 사람으로 화자를 선택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너무 가까운 사람은 자살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안락사를 위한 약을 버릴 수도 있겠지만, 화자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의 선택은 적절했다.
‘신뢰할 수 있지만 쭉 만난 건 아닌 사람.’ 이 표현을 읽고, 나는 곧바로 에세이 모임 사람들이 떠올랐다. 만약 모임원들이 내 삶의 다른 영역(가족, 친구, 직장 등)과 얽혀 있었다면, 나는 솔직한 에세이를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에세이 모임은 그런 점에서 독립적인 공간이다. 글은 기록으로 남고, 소통과 유대가 가능하다. 나는 이 모임을 ‘고독하지 않은 일기장’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어떻게 지내요? 이렇게 물을 수 있는 것이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의 진정한 의미라고 썼을 때 시몬 베유는 자신의 모어인 프랑스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그 위대한 질문이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무엇으로 고통받고 있나요Ouel est ton tourment? (p.122)
에세이 모임에서 서로 근황을 나누기에,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아, 이거 모임에 가서 말해야지’하고 미리 생각해두곤 한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가 진짜로 만나는 시간 외에도 그들을 떠올리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
우리는 요즘 겪고 있는 힘든 일을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땐 그저 들어주는 사람도 있고 나름의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성향만큼 각양각색의 조언이 오가고, 나는 그중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고를 수 있다.
또, 우리는 말로만 소통하지 않고 글로도 소통하기에 더 깊이 있는 이야기가 가능한 것 같다. 최근의 고통뿐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친 고통을 에세이에 진솔하게 털어놓기도 한다.
에세이 쓰기는 내 삶을 돌아볼 좋은 명분이 된다. 모임의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묻는 셈이다. 어떻게 지내니? 2주간의 소소한 일상부터 10년 전의 기억까지 반추하게 된다. 이런 기회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특별한 시간이다.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물에 빠져 상대를 구하려 무력하게 애쓰는 사람들처럼 서로를 부여잡고 목이 메어가며 영화를 봤다. 괜히 봤다고 후회했다는 말은 아니다. 아무리 슬픈 영화라도 아름답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사람을 고양시키니까. (p.160)
우리 모임에는 합평하는 과정이 있다. 어떤 부분이 좋았고 어떤 부분이 아쉬웠는지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다. 에세이를 가지고 단지 얘기 나누는 게 목적이라면 합평은 불필요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에세이 수업에서 출발했고, 많은 모임원들이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 나 역시 그렇다.
에세이 모임의 합평 시간은 글을 아름답게 다듬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글에는 기쁨, 슬픔, 외로움, 불안, 유대감, 설렘 등 다양한 감정이 담긴다. 그 감정이 무엇이든 아름답게 직조하기 위해 언어와 생각을 다듬는 과정은 중요하다. 설령 맥락이 없더라도 내 삶은 한없이 안락하고 유복하기를 바라지만―사실은 삶이 내 바람대로 될 리 없고―내 글은 설령 고통에 대해 쓰더라도 아름답게 직조됐으면 좋겠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오늘도 이들을 떠올리며 에세이를 쓴다.
“어떻게 지내요?”라고 서로 묻는 관계가 있나요?
있다면- 그들에게 어떤 마음이 드나요?
없다면- 어떤 사람에게 그런 질문을 하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