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적인 대화에서 여러 의미를 추론해내는 것이 내겐 벅찼다
최근 배우 공유와 이동욱이 거절하는 법을 이야기하는하는 토크쇼 영상을 봤다. 밥 먹자는 연락을 거절할 때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공유는 몇 번 보류하다 보면 상대가 알아챈다며 우회적으로 거절한다고 답했다. 반면 이동욱은 “그냥 안 된다고 해요.”라며 직설적으로 얘기한다고 했다.
나도 이동욱처럼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 댓글 창을 내렸더니, ‘단호한 게 좋다.’, ‘확실한 거절이 피차 서로 시간 낭비 없이 편하다.’ 같은 의견이 주를 이루었고 좋아요 수도 많았다. 물론 ‘넷상’이긴 하지만, 내가 알던 ‘돌려 말하기가 미덕인 한국 문화’와는 차이가 있어 흥미로웠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나는 사람들에게 종종 ‘단호하다’는 평가와 동시에 당황하는 듯한 반응도 보곤 하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 A는 내 방식에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벌써 근 10년 전 일이다. 나는 소개팅했던 상대와 연락을 이어가고 싶지 않아 고심 끝에 '나와는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내용을 메시지로 전했다. 친구 A는 자신이라면 그런 메시지를 받으면 단칼에 거절당했다는 느낌에 마음이 상할 것 같다고 했다. 얕은 사이에서는 카톡 답장을 늦게 하며 서서히 눈치채게 하는 우회적 거절이 낫다고 했다. 나는 직설화법이 불필요한 오해와 시간 낭비를 막아준다고 믿었다. A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내 방식을 고수했다. 그게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A와 나처럼 직설 화법이 좋냐, 완곡 화법이 좋냐에 대해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는 경우를 최근에 봤다. 연애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거절 방식을 분석하는 유튜브 영상의 댓글에서였다. 확실한 거절이 낫다는 의견과 우회적인 거절이 낫다는 의견이 비슷한 비율로 팽팽히 갈렸다. 약속 잡는 문제와는 달리 좀 더 민감한 감정의 영역이어서이리라. 직설 화법파인 나조차도, ‘직설적으로 말해야만 해’라는 강경한 주장에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거절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굳이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배려이지, 배려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배려’의 사전적 정의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씀’이다. 내가 굳이 배려라는 단어를 꺼내는 건, 완곡 어법 혹은 그것과 관련된 문화 때문에 불편했던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사무보조 아르바이트 첫날이었다. 관리자가 ‘제가 담배를 피우는데 불편하면 자리 바꿔도 된다.’고 했다.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곧장 손을 들었고 다행히 동기가 흔쾌히 자리를 바꿔주었다. 비흡연자인 데다 기관지가 약한 나에겐 담배 냄새가 고역이었다. 그런데 관리자가 자리를 비운 뒤, 동기가 내게 담배를 싫어하냐고 물었다. 나는 ‘나에게 피해를 주면’이라는 말은 생략하고 그렇다고 했다.
“제 친한 친구가 담배를 피우는데, 제가 걔 담배 피우는 걸 싫어해서 잔소리를 많이 했거든요. 근데 나중에 후회되더라고요. 피우고 안 피우고는 걔 자유인데 제가 왜 그랬나 싶어요.”
나는 그가 왜 갑자기 자기 친구 얘기를 하는 지 몰라 엉뚱하다고 생각했다. 깨달음은 동기가 어떤 사람인지 겪고 난 후 뒤늦게 찾아왔다. 그는 내가 ‘상사 옆자리 불편하다’고 바로 말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뜻을 돌려 전한 것이었다.
이 일을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는 동기가 나를 챙겨주려 사회생활에 대해 완곡하게 조언한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배려받은 게 아니라 기만당한 기분이었다. 차라리 직설적으로 “그렇게 바로 말하면 상사분한테 눈치 주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라든가, “다른 사람들도 담배 냄새 싫은 건 마찬가지인데, 혼자 손드는 건 의리가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정말 그의 의도가 그랬다면 말이다. 직설적으로 말해주었다면 나 역시 그에 맞는 대응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뒤늦게 답답함만 남았다.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속뜻을 뒤늦게 깨닫거나, 내가 한 말이 오해받았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즉흥적인 대화에서 여러 의미를 추론해내는 것이 내겐 벅찼다.
반대로 누군가 직설적으로 말해서 불편했던 경험이 있냐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굳이 꼽으려 해도, 전달 방식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 자체의 문제여서 돌려 말했어도 불쾌했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직설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어서 기분이 안 나빴던 것이지 그게 더 나은 방식이어서는 아닌 것 같다. 완곡 화법을 선호하는 사람에게 물으면 나와 반대로 직설 화법 때문에 불편했던 경험이 줄줄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혹자는 미묘하고 우회적인 거절을 어떻게 다 파악하느냐며 볼멘소리를 하고, 혹자는 직설적으로 말해서 상처를 줘야 하냐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는 말투를 고치라는 압박은 직설 화법일 경우에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포장을 잘 못 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사회생활 못한다, 화법이 미숙하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반면 돌려 말하는 사람은 적어도 그 두 말은 듣지 않는다.
온·오프라인 공간에서의 갑론을박과 내 경험을 되짚어보니 “직설적으로 바로 말해주는 게 상대에 대한 배려야.”라던 내 주장에도 의구심이 든다. 사실 상대도 그걸 배려라고 생각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친구 A의 말처럼 그 방식이 상대방에겐 더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다. 직설 화법도 완곡 화법도 그 자체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아닌 것 같다. 나의 경우엔 그냥 내 가치관에 직접 화법이 맞고 그게 편해서 고수했던 것뿐이다. 누군가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서 말을 꾸미는 게 불편하고, 누군가는 상대에게 어떤 반응이 나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내 의사를 바로 드러내는 게 불편하다. 그래서 각자에게 편한 방식을 택하는 것 같다.
진짜 배려라면 상대가 편한 방식으로 해주는 게 아닐까? 직설 화법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직설적으로, 완곡 화법을 선호하는 사람에게는 우회적으로. (어떤 걸 선호하는지는 평소 그 사람이 말하는 방식을 통해 대강 알 수 있다.) 그러니 우회적으로 말한 사람을 탓하는 것도, 직접 화법을 구사한 나야말로 상대를 배려했다는 말도 이젠 그만해야겠다. 나와 가치관이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기 전에, 나부터 상대의 선호를 파악해 말하는 게 맞지 않을까? 물론 그건 쉽지 않고, 나도 아직 잘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못 하는 걸 남들에게 바라지는 말아야겠다.
직설화법과 간접화법 중 어떤 것을 선호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