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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진 않은데 톡은 안 보고 싶었어요

비비엔느가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by N의 노트

지금으로부터 4년쯤 전, 2020년 겨울의 일이다.

나는 경복궁역에서 비비엔느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비비엔느는 내가 언어교환 사이트에서 알게 된 미국인으로, 오늘은 우리가 처음으로 만나는 날이었다. 약속 시간이 되자 금발의 백인 여성, 비비엔느가 나터났다. 우리는 조금 어색하지만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종로구에 있는 독립·예술영화 전용 상영관인 에무시네마로 향했다.


비비엔느가 내게 그 영화를 보자고 한 건 여러모로 의외였다. 나와 비비엔느는 한 번 영상 통화한 후 카카오톡으로 짧은 대화를 나눈 게 전부인 사이였다. 게다가 비비엔느는 회사 일이 바쁜지 카카오톡 답이 느렸다. 그랬기에 만나서 영화를 보자며 티켓도 자기가 사겠다는 그녀의 적극성이 뜻밖인 데다, 비비엔느가 말한 영화는 한국 독립영화 <벌새>. 독립영화계에서 호평받으며 흥행 중인 영화여서 나도 관심은 있었지만, 상업영화에 비하면 대중적인 영화는 아니었다. 어쨌거나 비비엔느를 직접 만나는 것도, 벌새를 외국인과 함께 보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어서 나는 비비엔느의 제안에 좋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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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오르막길을 걸어 오르며 에무시네마로 가는 동안, 비비엔느와 나는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했다. 그동안 영어를 주로 써서 몰랐는데 비비엔느는 내 생각보다 훨씬 한국어가 유창했다. 비비엔느가 한국어를 배운 7년보다 훨씬 오래 영어를 배워온 입장에서 약간 부끄럽긴 하지만, 내 영어 실력보다 비비엔느의 한국어 실력이 더 나은 듯 했다. 비비엔느는 한국 유학을 했고 지금도 한국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어서인지 한국 문화도 잘 알았다.


소소한 잡담 이후 우리의 대화 주제는 한국의 사교육과 직장 문화로 넘어갔다. 둘 다 세계에 내놓았을 때 ‘별난 데’가 있는 한국 문화였다. 비비엔느는 영어로 말할 때도 학원을 아카데미(Academy)가 아닌 한국어 그대로 ‘학원(hagwon)’이라고 했다. 미국에는 학원이 많지 않고, 입시 공부를 위해 학원에 다닌다는 개념이 없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그만큼 학원이 한국에만 있는 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의 회사 생활을 말하며, 비비엔느는 한국 회사에서는 눈치를 많이 봐야 하고 일을 다 해도 상사가 남아 있으면 퇴근을 못 한다고 했다. 나는 특이할 것도 없는 한국 직장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톡도 확인해야 할 게 너무 많아서 쌓여있어요. 제가 답장을 너무 늦게 해서 미안해요.”

비비엔느의 답장은 2, 3일 뒤에 올 때가 종종 있었다. 답장이 느린 편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우리가 친한 사이도 아닌 데다 그녀의 일이 바쁘겠지 하며 이해했었다.

“괜찮아요, 바빠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카카오톡에서도 답이 늦어 미안하다고 하더니, 나는 그녀가 몹시 예의 바르다고 생각했다.

“아뇨, 바쁘진 않은데 톡은 안 보고 싶었어요.”

비비엔느가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어려운 말은 하나도 없는데 나는 이게 무슨 뜻이지? 하고 잠시 멍해졌다.

연락이 늦어서 미안하다, 그런데 바쁘진 않았고 그냥 보기 싫어서 늦게 답한 거라고?

“다른 사람들 카톡도 많이 쌓여있어서 보기 싫었어요. 핸드폰 보는 거 너무 피곤해요.”

“하하. 그럴 수 있죠.”

나는 내 대답이 늦어졌음을 깨닫고 재빨리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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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나 역시 상대가 싫어서가 아니라 답장하는 게 귀찮고 피곤해서 미룬 경험이 있었다. 비비엔느와의 차이점은 나는 하루 내에는 답을 한다는 점이다. 사소한 말일지라도 상대방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되도록 빨리 답을 해줘야 한다는 나름의 강박이 있었다. 답이 늦으면, 게다가 친밀한 사이도 아니고 서먹한 사이에 답이 늦으면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길 것 같았다.


비비엔느의 솔직한 말은 나에게 신선한 문화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 카톡을 읽기 싫었다는 말이 곧 나라는 사람이 싫단 의미는 아니었다. 그저 비비엔느에겐 타인과 연결되기까지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뿐. 비비엔느가 연락이 느릴 때도, 카톡이 쌓여있어서 보기 싫었다는 말을 들은 지금도 전혀 그녀가 나를 무시한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곱씹을수록 그런 종류의 솔직함이 다정하고 산뜻하게 느껴졌다.



KakaoTalk_20251026_141512643_06.jpg copyright. 에무시네마



비비엔느와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 나는 비비엔느의 한 마디가 내 마음에 남긴 파문을 들여다봤다.

“바쁘진 않은데 톡은 안 보고 싶었어요.”

바빠서가 아니라 연락이 피곤해서 답을 늦게 했다고 말해도 괜찮구나. 반드시 답을 일찍 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구나. 관계의 피곤함에 솔직해져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구나.

그동안 나에게는 한 가지 공식이 있었다.



내용이 성의 있다. → 이 사람은 내게 호의적이지만 바빠서 답이 늦는구나.

답장이 늦는다

내용이 성의 없다. → 이 사람은 내게 비호의적이어서 답이 늦는구나.



이렇게 생각했기에, 내 톡에 어떨 때는 2, 3일, 심하면 일주일씩 늦게 답을 하던 친구 H가 화장실 갈 때도 핸드폰을 들고 가는 핸드폰 중독자임을 알게 됐을 때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동안 그토록 긴 답장 간격을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건 다 친구가 바빴을 거라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핸드폰을 하며 시간을 죽이면서도 내 카톡은 씹고 있다니. H와 한집에 같이 살지 않았더라면 계속 몰랐을 사실이었다. H는 답을 하는데 큰 에너지가 소모되어서 카톡이 몇백 개 쌓이도록 미루는 스타일이었다. 동거인인 나에게는 점점 덜 그러긴 했지만, H는 친하고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도 그랬다. 그래도 주변인들이 그녀를 ‘얜 원래 그런 애야’ 하고 이해해주는 건, 내용이 무척 성의 있고 만났을 때도 잘 하는 사람이어서다.


나는 공식을 수정하기로 했다. 바쁘지 않아도 호의적인 상대에 대한 답이 늦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빠른 답장에 대한 내 강박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비비엔느가 한국인보다 눈치를 안 보는 미국인이라서 솔직하게 말 수 있었던 건진 모르겠지만, 비비엔느의 시각을 알게 되고 해방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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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몇 년 흐른 지금, ‘소셜 배터리’라는 영미권 밈이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다. 소셜 배터리(social battery)는 사람이 사교를 위해 가지고 있는 에너지의 양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시끌벅적한 모임에서 여러 사람과 만난 후나, 회사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온갖 커뮤니케이션을 한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마치 배터리가 방전된 듯 어떠힌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기운도 안 남은 상태가 되곤 한다. 누구든 적어도 한 번쯤은 이런 방전을 겪어보지 않았을까?


다행인 건, 내가 비비엔느를 이해하게 됐듯이 점점 소셜 배터리의 개념을 알게 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점이다. 사교를 위해 에너지를 충전해야 함을 부정적인 뉘앙스 없이 전하고, 섭섭해하거나 오해하지 않고 상대의 시간을 존중해주는 관계가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다.




상대방의 답장이 느릴 때 어떤 생각을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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