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가 길을 알려준 것처럼 또 누군가가 그들의 여행을 도와줄 것이다.
나는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일을 종종 겪는다. 그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고 처음 본 나에게 해줄 말이 있다며 다가오기도 한다. 요청하는 도움 내용은 이렇다. 설문조사에 답해 달라고 하거나 모금행사에 참여해달라고 한다. 길을 묻기도 하고 앱으로 택시 부르는 법을 묻기도 한다. 차비를 잃어버렸다며 꿔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카드를 두고 왔는데 대신 결제해주면 돈을 갚겠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도움을 청하는 게 아니라 나에게 해줄 말이 있다며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다. 처음에 나는 그들의 말을 호기심을 갖고 들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전도하려 했고, 나는 종교를 가질 생각이 없기에 모르는 사람 말은 들어서 시간 낭비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후론 그런 사람들을 무시하고 지나친다. 이런 의도를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들 때문에 사람을 순수하게 믿을 수 없게 돼 아쉬웠다.
강남역이나 홍대역 같이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가면 네 번 중에 한 번 꼴로 누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남들도 다 나 정도는 겪고 사는 줄 알았다. 내가 이런 경험을 얘기하니 혼자 다니는 여자들은 말 걸기가 쉬워서 표적이 되기 쉽다고들 했지만 혼자 다니는 여자치고도 나는 이런 일을 많이 겪은 것 같았다.
이유를 생각해봤다. 우선 나는 순하게 생긴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첫인상은 기 세 보인다거나 차가워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성격과 말투도 단호하고 의견 표현을 분명히 하는 편이었다. 그런 인상과 성격에도 불구하고 왜 그 사람들은 하필 내게 말을 건 걸까? 사람이 열 명 넘게 서 있는 신호등 앞이나 인파가 떼 지어 지나가는 지하철역 주변에서도 꼭 나에게만 다가왔다. 신기한 일이었다. 단순히 길을 묻거나 가벼운 요청일 때도 있지만, 수상쩍은 사람들로 겪는 번거로운 일들도 많았기에 나는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하고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얼마 전, 고향 친구가 내가 있는 서울에 놀러 왔다. 우리는 같이 저녁 식사를 한 뒤, 우리 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경남의 소도시에 사는 친구는 서울의 인구밀도와 복잡한 지하철 역사 구조에 혀를 내둘렀다.
우리가 삼각지역의 4호선에서 6호선으로 가는 환승 통로를 지나갈 때였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자분이 내게 손을 뻗으며 나를 붙잡으려는 듯 다가왔다. 나는 그분이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개찰구를 통과해 멈춰섰다. 내 친구도 나를 보곤 같이 멈춰 기다려줬다.
여자분은 개찰구 너머에 있는 내게 자기 핸드폰을 내밀었다. 핸드폰엔 번역기 앱이 켜져 있었다.
― X역으로 가야 하는데 여기서 어디로 가면 되나요?
번역 전은 한자였고 번역 결과물은 한국어였다. 다시 그분을 보니 손에 캐리어가 들려있었다.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홍콩, 대만 등 한자를 쓰는 나라에서 온 것 같았다. 그분은 내가 자판을 칠 수 있도록 본인 핸드폰 자판 설정을 한글로 바꿔주었다. 내가 핸드폰을 받아들고 들여다보는 사이 그분은 뒤를 향해 손짓했다. 일행으로 보이는 또래 여자분이 캐리어를 끌고 허둥지둥 뛰어왔다.
그분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지 다음 문장을 쳤다. 번역기가 중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보여줬다.
― X역으로 가려면 효창공원앞역 방향으로 가라고 나오는데, 여긴 방향이 달라요.
친절하게도 그는 내게 길 찾기 앱의 화면을 같이 보여줬다. 스크린도어 위 역명을 보니 다음 역이 녹사평역으로, 같은 6호선이지만 효창공원앞역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확실히 알기 위해, 친구와 여행자들을 자리에 두고 일단 나 혼자 계단을 지나 아래로 내려갔다. 표지판을 보니 계단을 지나가는 게 역시 맞았다. 나는 다시 위로 올라왔다. 그분이 내 말이 궁금하다는 듯 번역기 앱이 켜진 본인 핸드폰을 내밀었다.
나는 자판을 조금 치다가 개찰구 너머로 팔을 뻗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설정의 자판도 불편해서 더 빠른 방법을 택했다.
“이쪽으로 가면 돼요. 따라오세요.”
나는 영어로 말하며 손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외국(한국)에 온 여행자이니 간단한 영어는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영어를 못하더라도 바디 랭귀지로 대충은 의사소통이 될 것 같았다. 여행자들은 내 뜻을 이해한 듯 개찰구를 넘어왔다.
방향이 같은 우리 넷은 함께 걸어갔다. 그분들이 혹시 불안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표지판 보는 법도 알려주고 싶어서 나는 표지판을 가리키며 우리가 맞게 가고 있다고 영어로 설명했다. 내 친구도, X역으로 가려면 어디에서 무슨 색깔의 몇 호선으로 갈아타면 되는지 말했다. 친구와 나는 영어를 조금 할 수 있을 뿐 중국어는 전혀 몰랐다. 그분들은 캐리어를 열심히 끌며 우리를 따라왔는데 우리 말에 대답 없이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나와 친구는 얼굴을 마주 봤다.
‘영어를 못하시는 것 같은데?’
말은 안 했지만, 우리 둘은 같은 생각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좀 더 걸어가다 그분이 나를 툭툭 치더니 자기 핸드폰 화면을 보여줬다.
― 이제 저희끼리 갈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분의 핸드폰으로 이렇게 쳤다.
― 저희도 가는 길이에요.
가는 동안 두 여행자는 서로 폰을 보여주며 얘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손짓은 했지만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처음부터 지금까지 몇 분 동안 두 사람의 목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나와 친구는 서로 대화하고 이분들에게도 말했는데. 불현듯 나는 이분들이 청각장애인 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이 소음을 만들며 들어오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 시야에 그분들이 안 보였다. 캐리어 때문에 뒤처졌나? 뒤돌아보니 한 스크린도어 앞에 두 분이 서 있었다. 그곳에서 지하철을 타려는 모양이었다.
그분들이 한 손을 턱에 갖다 대며 우리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똑같이 손 모양을 따라 하며 고개 숙였다. 나는 외국어의 정확한 뜻을 몰라도 상대방이 한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곤 했는데, 특히 작별의 순간에 쓸만하단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나의 반응에 그분들은 의아하단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마주 보더니 몇 번 더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지하철을 탔다.
그분들이 탄 칸과 우리의 거리는 지하철 두어 칸쯤이었는데, 나는 왔던 길을 돌아가 그분들과 같은 칸에 탈지 고민했다.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청각장애인 두 사람이 여행하는 게 괜찮을까? 문득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분들이 지하철에 탔고 나는 빨리 그분에게 가야할 것 같아 초조해졌다.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방금 처음 만난 분들을 걱정하고 있지? 그분들이 청각장애인인 외국인 여행자여서다. 하지만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가능하니까 지금껏 다니고 있는 게 아닐까? 지하철 환승 구간에서 어디로 갈지 헷갈리는 건, 외국인도 장애인도 아니며 서울에서 오래 산 나도 종종 겪는 일이었다.
청각장애인이라고 여행을 못 다니란 법도 없는데. 그분들의 의사와상관 없이 내가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었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한 손엔 캐리어를 끌고 한 손엔 번역기 앱을 켠 핸드폰을 든 채, 서로 수어로 소통하며 잘 다니고 있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면 여느 여행자가 그러하듯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고, 오늘 내가 길을 알려준 것처럼 또 누군가가 그들의 여행을 도와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안심이 됐다. 만약 내가 낯선 사람과도 쉽게 친해지거나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같은 칸에 따라 탔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대로 그들과 헤어지기로 했다.
친구와 나도 문이 닫히기 전 지하철에 올랐다. 지하철 안에서 친구가 내게 물었다.
“그분들 청각장애인이신 거지?”
“응, 그런 거 같아.”
“아까 그거 무슨 뜻이야? 수어야?”
“나도 몰라. 고맙다 아니면 잘 가라는 뜻 아닐까?”
길을 물어본 사람과 헤어질 때 할 수 있는 말로는 두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도 내 말에 수긍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은 사람이 진짜 많다. 여기 와서 외국인들도 많이 봤어.”
친구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신기해하며 말했다. 나는 지하철이나 붐비는 길거리에서 주위를 잘 살피지 않지만, 친구는 사람 구경도 하고 의식하면서 다니고 있었다. 친구에게 낯선 곳이기도 하거니와 친구는 본래 나보다 주위를 잘 둘러보며 다니는 성향이기도 했다.
“난 이런 번화가에 오면 열에 네 번은 누가 나한테 말 거는 일이 생겨. 아까처럼 외국인이 나한테 길 물어보는 일도 자주 있고.”
“사실 그분이 나한테도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다가왔었는데 난 그냥 지나갔어. 급한 일이면 본인이 더 적극적으로 붙잡을 것 같아서. 근데 그러진 않더라고.”
그분은 나에게만 말을 걸려고 했던 게 아니었다. 나와 친구는 막 개찰구에 도착해서 지나가는 중이었지만, 그분은 길 물을 행인을 얼마나 오래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 소리로 소통하는 게 어려워 바로 본론부터 물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핸드폰 번역기 화면을 보여주려면 일단 상대가 멈춰 서고 거리가 가까워져야 했다. 나는 그분이 여행자인 걸 몰랐을 때도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서 걸음을 멈췄지만, 바쁘고 삭막한 대도시에서는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제야 왜 유독 나에게 길에서 말을 거는 사람들이 많은지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은 낯선 사람이 다가올 때 미리 경계하고 눈을 피하든 빨리 지나치든 하는데, 나는 상대가 아주 가까이 왔을 때야 깨닫는 것이다. 또 상대가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해하는 성향이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든 전도자든 누구든 많이 만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의 오래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내가 만만해 보여서 사람들이 다가온 게 아니었다! 경계하지 않는 나의 성격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이 성격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직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을 궁금해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오늘 나를 붙잡은 사람이 순수한 도움을 바라는 사람이어서 고마웠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던 경험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