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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남수 Dec 05. 2020

새들과 먹이를 나누는 닭


 산책하는 작은 오름 옆 밭에 그물을 둘러 닭을 키우는 곳이 있다. 닭 집 마당에 는 키 큰 남자와 여자 마네킹을 세워놓아 얼핏 보면 사람 둘이 서 있는 것 같다. 산 밑이라 야생동물 공격 방비일터이다. 영리한 동물이라면 이 계절에 여름옷을 걸치고 있는 마네킹이 가짜라고 느끼겠지만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예전엔 펄럭펄럭 허수아비를 세우던 논밭에도 요즘은 가끔 이런 마네킹을 발견하게 된다. 허수아비의 진화라 할까. 둘러 쳐 놓은 그물과 가짜사람의 보호아래 닭들은 흙을 파기도 하고 언덕을 오르내리기도 하며 활발하다. 양계장에서 사육되는 닭에 비교할 수 없는 녀석들이다. 행복해서일까, 이 닭들은 새들과도 정답게 지낸다.    


  

 오늘도 산을 오르면서 보니 서른 마리쯤 되는 닭은 둔덕에 앉아 느긋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모양이다. 닭 집 마당에는 닭 대신 새들이 옹기종기 모이를 쪼고 있었다. 몇 마리의 닭이 새들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지만 놀러 온 이웃에게 음식 대접하는 모양새 같다. 날아다니는 새와 날지 못하는 닭이, 붉은 색과 회색이, 작은 새와 1.5배는 더 큰 닭이, 매일 만나는 친구 같이 자연스러웠다. 자기 집 마당에서 모이를 먹는 새들을 편안히 바라보고 있는 닭을 보니 인간의 욕심과 비교된다. 축적은 인간만이 한다던가. 개미는 겨울을 대비하여 먹이를 모은다지만 축적의 의미는 아닐 것이다. 죽을 때 까지 먹고 써도 못다 쓸 재물을 켜켜이 쌓고 또 쌓는 인간의 욕심이 결국 인류의 재앙을 만들고 있음에도 천년만년 살 것처럼 놓지 못한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윤회라는 게 있다면 저 닭들의 다음 생은 평화로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나는 이생에 무슨 업을 쌓아 무엇으로 윤회할까? 내가 산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니 새 두 마리가 늦게 왔는지 닭의 마당에서 먹이를 쪼고 있었다.     


 어릴 때의 집 마당에는 늘 몇 마리의 닭이 있었다. 녀석들은 새벽에 식구들을 깨웠고 깨끗이 비질 해 놓은 마당을 휘젓거나 지렁이를 입에 물고 다니기도 했다. 시끄럽고 성가시기도 하지만 따끈한 알을 낳아 주었다. 양계장에서 알만 낳는 닭들이 아니니 계란은 귀했다. 삶고 구워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치킨에 소주를 놓고 한 선배가 불콰해진 얼굴로 말한 적이 있다. 건강하지 못했던 자신을 살게 해 준 것은 계란 덕분이라고. 고기는 구경하기 어려운 형편에 어머니가 매일 계란을 먹이셨다고. 

 프라이팬에 풀어놓은 계란을 붓고 잘게 썬 부추 당근을 뿌리고 치즈도 한 줌 뿌려 돌돌 말아 따끈한 밥에 얹어 먹어야겠다. ‘닭님’께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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