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문화관 단상9-구룡사 계곡
원주에서 서울이 멀지 않아 남편이나 지인들이 가끔 찾아왔다. 토지에서는 우유 하나를 사려고 해도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는 터라 뭘 사는 게 어렵다. 경기도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이 장을 봐주겠다고 주말에 왔다. 생필품도 필요한 게 좀 생기고 과일 같은 것도 아쉽던 차였다.
원주의 재래시장은 규모가 엄청나다. 상시 열려있는 원주 중앙시장을 비롯하여 풍물시장, 2일, 7일 열리는 오일장까지 길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산이 깊으니 두릅, 엄나무 순, 고비, 버섯 등등 산나물들이 황홀할 지경이다. 큰 다라에 가득하던 다슬기도 탐스러웠다. 특히 횡성이 지척이라 한우골 목도 유명하다. 남편이 온 날, 좁은 시장 골목을 돌아 검색해서 찾아 들어간 한우식당은 테이블 너 댓 개의 작은 규모였지만 자판을 두드리고 앉은 지금도 침이 고인다.
남편과 한나절 산책한 구룡사 계곡도 다시 가고 싶은 곳으로 저장되었다. 치악산 자락이라 물도 좋고 길도 좋았다. 구룡사는 문무왕 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창건 당시 깊은 소에 살고 있던 아홉 마리 용에 얽힌 전설이 있어 구룡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계곡 초입에 위치한 구룡사 계곡을 따라 걷다 보니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그럴싸하게 느껴졌다.
세렴폭포까지 걷는 길은 가볍게 산책하기 좋았지만 그다음부터는 계단도 많고 길도 험한 모양이었다. 크지는 않아도 제법 폭포의 용태를 갖춘 세렴폭포를 보고 돌아 내려오면서 물소리 고운 계곡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쉬는데 제비만 한 다람쥐 한 마리가 쪼르르 나오더니 오락가락했다. 음식 냄새를 맡고 그러나 보다고 짐작한 남편이 입구에서 사서 들고 온 감자전 한 조각을 던져주니 바위 끝에 앉아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다. 촐촐 물소리, 재롱부리는 다람쥐, 비단결 같은 숲길에서 호사한 삼월의 일요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