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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남수 Jun 28. 2021

원주의 봄

토지문화관 단상 8- 미나리 소동

 

 “선생님, 혹시 귀래관 옆 연못에서 미나리 채취하셨어요?”

어느 날 점심시간 식당에 가니 L작가가 살짝 물었다.

 “아뇨? 거기 미나리도 있어요?”

 쑥, 돌나물, 민들레는 널려 있지만 미나리는 못 본 나는 흥미로워 큰 소리로 반색했는데 이게 반색할 일이 아니었다.

 토지 식당 조리사님이 작가들 점심 겉절이 해주려고 아껴둔 미나리를 끊으러 가보니 누가 다 끊어가 버렸다는 것이다. 당혹해진 조리사가 L작가에게 푸념한 모양이다.   

  

 여럿이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정한 것도 아닌데 반장 역할을 하는 사람이 생긴다. 이곳에서도 몇 년 전 입주경험이 있어 토지 재단 분들과 익숙한 L작가가 약간의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작가들은 먹이고 재워가며 집필실 제공해주는 것만도 감사한데 달리 뭘 요구하기는 민망하다. 이럴 때 적절히 역할하는 것 같았다. 조리사도 그런 탓에 난처해진 상황을 L작가에게 하소 했을 것이다.

 상황을 파악한 나는 공연히 제 발이 저렸다.


 이 동네의 야생 나물들에 가장 눈독을 들이는 사람이 경상도 촌 출신 나, 강원도 산골 출신 E작가라는 게 이미 확인된 때문이다. E작가는 나처럼 아침 형 인간이라 새벽안개가 깔린 밭둑에서 쑥을 캐며 시를 쓰는 것 같았다. 나도 제주 집에 일이 생겨 다녀오게 된 날, 미나리와 쑥을 한 봉지씩 캐서 들고 가 잘해 먹었다고 자랑 한 터이다. 나물 캐는 재미를 워낙 좋아하는 우리 둘 중 하나가 미나리를 싹쓸이한 것 아니냐는 의혹에 L작가는 신경이 쓰였나 보다.    


 그러나 범인은 따로 있었다. 원주시내에서 주말에 이 동네 밭에 트럭을 타고 일하러 온 한 무리가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들이 연못에서 미나리를 끊어 가는 것을 본 작가가 있었다. 연못 가까운 주차장에 트럭이 주차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타고 하는 것을 나도 본 바는 있었다.

 목격자가 등장하자 비로소 의기양양해진 L작가는 우리 작가들이 점심식단계획을 방해한 게 아니라고 조리사에게 전했다. 이날  식단은 미나리 겉절이 대신 절인 깻잎이 나왔던가 싶다.  

   

 식단 이야기로 가끔 우리는 낄낄댔다. 기본 식단은 시골밥상이었지만 두부나 돼지고기찌개 생선 등의 단백질 군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육식을 좋아하는 분들은 단백질 보충한다며 주말에 고기 집으로 가기도 했다. 때문에 토지 뒤뜰의 죄 없는 거위가 불안했을 것이다. 돼지고기 볶음이 나온 어느 날 식사 후, 육식 선호하는 분이 한 말을 거위가 들었다면 말이다.

 “며칠 더 봐서 고기 안 나오면 밤에 거위 잡으려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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