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문화관단상 10-집필실
토지문화관 집필실은 시계, 거울, TV가 없다.
대신 큰 책상이 있다. 나는 혹여나 해서 한 뼘쯤 되는 사각 휴대용 거울 하나를 들고 갔기에 책상 위에 놓고 사용했다. 세면장에 거울이 있고 시계는 핸드폰으로, 뉴스는 검색으로 다 되니 별 불편할 것도 없었다. 다만 내가 있던 매지관은 오래된 건물이라 물탱크가 작아서 온수 공급이 하루 두 번 오전과 저녁에 1시간씩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온수가 나오기에 무심코 머리를 감다 찬물이 쏟아져 기겁한 적이 있다.
제비뽑기로 결정된 내 방은 매지관 중 가장 전망이 좋은 방이었다. 발코니 쪽 전면 창외에도 동네 방향으로 큰 창을 낸 2층이라 때때로 엄습하는 새벽 추위는 감수해야 했다. 제주도와 기온 차이가 큰 데다 워낙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기도 해서 더 그럴 테지만 전망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방이었다.
주는 밥 먹고 내 공간 방 하나만 청소하면 되고 화장할 일 없고 차려입을 일도 없으니 점점 소박 해지는 느낌이었다.
한밤중에 책상 의자를 밀거나 당길 때, 비염 때문에 재채기를 심하게 할 때, 급한 일로 통화할 때 옆방이나 아래 방 작가들께 폐가 되지 않을까 신경 쓰이는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만 오롯한 고요가 참 좋았다.
고요를 즐길 수만은 없는 것이 하루하루 머무는 일수가 쌓이면서 부담이 피어올랐다.
소설인지, 수필인지, 일기인지, 정체도 모르게 써 나간 내 글의 정글에서 헤매기 시작한 탓이다. 그러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