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새로운 날은 잉태된다. 하늘의 자궁에서 터져 나오는 첫울음 같은 새벽, 찰칵찰칵 사진으로 담으며 바닷가로 걸어내려갔다.
이미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파도처럼 걷고 있다. 새벽 산책 후 출근하는 사람들일 게다. 대부분 혼자 와서 인사 없이 혼자 걷다 가지만 늘 보던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어디 아픈가?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팔을 위로 쭉쭉 뻗으며 걷는 사람, 앞뒤로 흔드는 사람, 허리께까지 바다에 몸을 담그고 물을 가르며 걷는 사람, 모양도 모두 제 각각이다.
복장을 단정히 갖춘 수녀 한 분도 매일 새벽 혼자 천천히 걷는 모습을 본다.
삶의 방식이 다 다르듯 걷는 모양도 조금씩 다르다.
어둠이 걷히는 시간에 따라 바다의 빛깔도 달라진다. 동쪽 하늘 귀퉁이에서 탁구공 만하게 보이던 해가 축구공만 하게 커지면서 푸르던 물빛이 노랗게 물들고 어느새 환한 아침을 맞는다. 이런 순간의 환희를 품고 나도 하루를 연다.
집으로 오는데 동네 밭에서 할아버지가 호박잎을 따고 계셨다.
탐스러워 “삼촌, 한 이천 원어치만 살 수 있을까요?” 물었더니 그러라며 한 보따리 안겨 주신다. (제주도는 동네 어른들을 통칭 ‘삼촌’으로 부른다) 동문시장으로 나갈 호박잎이라고 했다. 주신 양이 너무 많다는 내 사양에 할아버지는 “밭이니까.” 라며 웃으신다.
까끌까끌 싱싱한 호박잎을 줄기 똑딱 꺾어 살짝 벗겨낸 후 채반에 쪄서 양념장에 쌈 싸 먹을 생각에 발에 날개가 돋는다.
어제부터 강화된 코로나 방역 4단계로 ‘뭔가 유폐된 기분’이라는 후배의 문자에 ‘뭔가 미안한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나는 건강한 호박잎 식단을 만들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