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닷새나 고향 산을 태운 산불을 보며 마음이 멀리 달려가서 ‘불’이 화마(火魔)가 아니라 추억이 되는 순간을 떠올려본다.
60여 년 전 내가 자라던 시절은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해 먹고 방을 덥히고 쇠죽을 끓였다. 여름에는 부엌에 불을 피우면 방이 더워지니 마당에 간이 아궁이를 만들어 사용했는데 해가 쨍쨍한 점심에 국수라도 삶으려면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불을 땠다. 겨울은 따뜻한 아궁이 앞이 그만이다. 그 시절의 고단함은 논외로 하고 여자들이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때서 자궁 건강에 도움 되는 측면은 있었다는 말은 일견 수긍이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아무튼 마른 솔잎 한 줌을 넣어 성냥을 탁 켜서 밑불을 만든 후 솥 안의 음식에 따라, 가느다란 삭정이를 똑똑 꺾어 때거나, 쪼개 놓은 장작을 때기도 한다.
가장 고소한 순간은 남은 잔불 위에 석쇠를 놓고 굽는 갈치구이였다. 내륙지방이라 생선은 매우 귀한 음식이었기에 특별한 날에나 꼬리 쪽 한 토막 얻어걸리는 정도였지만 아궁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음식이다.
무쇠솥 가에 뜨거운 김이 넘쳐흐르면 불을 끄고 잠시 뜸을 들인다. 이때 솥뚜껑을 열어 얇은 채반 위에 얹은 호박잎이나 계란찜을 살짝 올려 두면 뜸 드는 동안 맛있게 완성되었다. 틈을 준 후 다시 약한 불을 살짝 한소끔 때 주면 드디어 밥은 구수하게 익는다.
불을 다 때고 난 아궁이는 입구를 잠그는 무쇠 뚜껑을 단단히 걸어 혹여 불씨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두었다가 시간이 지난 후 소복하게 식어있는 잿더미를 긁어내어 거름 만드는 헛간에 퇴비와 함께 섞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