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넘는 동료에서, 주제 있는 친구로
오랜만에 옛 직장동료를 만났습니다.
시간을 따져보니 거의 15년 정도 만나보지 못했네요. 간혹 톡으로 대화를 하긴 했지만, 직접 얼굴을 보는 건 참 오랜만입니다.
동글동글한 얼굴에 말하는 투나 별로 변해 보이진 않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눈가에 주름이 늘고 머리 많이 빠쪄 거의 밀다시피하고 다니네요. 저를 보더니 흰머리가 많아졌답니다. 근데 별로 변한 게 없다네요. 오히려 몸은 훨씬 좋아 보인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요새 제 몸무게가 고등학교 때 몸무게입니다. 그때는 한창 몸을 움직이던 때였는데, 당시의 몸무게가 되어 있으니 그렇게 보이겠죠. 게다가 요새 열심히 복싱과 웨이트를 하기에 몸의 균형도 조금은 잡혀 보일 겁니다. 조금 더 자랑질을 해보자면, 배에 복근도 생겼고요. 선명함을 위해 더 노력 중입니다.
중년 아재의 몸부림입니다.
이렇게 서로 눈에 보이는 모습들을 관찰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오갔습니다.
이 친구를 만난 곳은 중국에서 처음 잡은 직장이었는데, 미국계 회사로 상업건축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습니다. 여기서 한국의 대형 쇼핑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 제가 할 일이 좀 있더군요. 한국에서 설계사무실을 다녔던 제 이력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사장님은 대만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한가닥 하시던 분이었는데, 중국 발전의 기회를 잡고자 중국에 사무실을 오픈한 거죠. 그래도 대외적으로는 미국에 있는 회사였습니다. 그 당시 많은 회사들이 그렇게 코스프레를 했죠. 실질적으로도 미국에 사무실은 있었으니깐요. 그 덕에 새벽까지 일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저희에겐 곤혹이기도 했습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처음 잡은 직장은 이렇게 한국의 제 경험이 밑천이 되어서 작은 팀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팀장 디자이너로 사장님과 같이 하는 회의에 참석하곤 했는데, 이때 오늘 만난 이 친구와 디자인 대결을 하곤 했습니다. 간혹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데, 제 중국어 실력이 이제 막 어학연수를 마친 상태라 그리 순탄하지는 못했는데, 사장님 회의를 하게 되면 수많은 디자인 요구사항과 중점들에 대해 듣고 팀 구성원들에게 전달을 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사장님 보고 시간이 되어 디자인을 가지고 미팅을 했는데, 이 중국친구는 제가 이해한 내용과 좀 다른 방안을 설명하는 겁니다. 순간 잘 못 알아들은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머리가 하얗게 되더군요. 제 차례가 되어 설명을 마치고 사장님의 의견을 기다리는데 결국은 이 친구가 잘 못 알아들은 거였더군요. 이 작은 에피소드를 가지고선, 중국인이 중국어를 잘 알아듣지만 결국 소통이 되는 것과는 다른 거다라는 걸 기회가 있을 때 말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이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겠다더군요. 영국으로 가겠다고요.
당시 술자리에서 아이도 있고, 와이프도 있는데 그 나이에 그렇게 가는 게 과연 옳을까? 중국이 발전하고 있어 나 같은 외국인이 중국에 왔는데, 넌 왜 중국인이 기회를 버리고 떠나려고 하느냐? 충고를 하곤 했습니다. 실제 당시 많은 중국인들이 유학을 가곤 했는데,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지 이렇게 가정까지 꾸린 가장이 움직이는 건 부담되는 거였죠.
그런 친구가 오늘 아주 멋진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건축계에서는 최고의 회사로 인정받는 영국의 노먼포스터 회사의 파트너가 되어 있더군요.
상하이에 미팅이 있어 오게 되었고, 제가 보고 싶어 연락을 했다고 합니다.
오늘 미팅 때 보여줬던 회사 홍보자료를 제게 보여주면서 열정적 설명을 해줬습니다.
노먼 포스터… 이미 90이 넘었다고 하네요.
이 분은 현대건축계에서 손꼽히는 디자이너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근데 그것보다도 이 회사가 갖고 있는 업계를 선도하는 투자와 노력들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인공지능 시대에 있어 회사가 준비하고 있는 혹은 진행하고 운영하고 있는 시스템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이 업계의 최고의 수준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신기하기도 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자체적 인공지능을 탑재한 디자인과 고객 서비스 차원의 기능들이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이 회사를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첨언을 하자면, 애플파크라는 원형으로 지어진 신사옥 건물을 설계했고, 런던의 30St.Mary Axe타워, 한국에도 한국타이어 연구소와 사무실 등이 있습니다.
(회사 홈페이지 https://www.fosterandpartners.com )
요새 제가 관심 있어하는 인공지능 시대의 건축계의 변화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회사의 인공지능과 여러 기술적 운영시스템을 설명 듣고 나니, 이런 거대 기업들은 걱정할 일이 아니구나 생각이 됩니다. 글쎄요 한국의 건축계 탑기업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그중 한 곳인 ‘희림’은 김건희 씨와의 이야기가 입방아에 오르내리던데, 이러고 있을 상황이 아닌 거 같습니다.
어쨌든, 멋지게 돌아온 이 친구 모습을 보고 전 어땠을까요?
즐거웠죠.
“그래도 난 너보다 머리숱도 많고, 복근도 있다. ”
제가 이긴 거 같습니다. ㅎㅎㅎ
당시 주제넘은 제 조언이 부끄러웠습니다. 뭐 당시 조언이 틀린 건 아니지만, 이제 이 친구는 제게 조언을 합니다. 중국의 발전은 이제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렀는데, 동남아나 주변 국가들을 가보니 급변하고 있고 기회가 많은 거 같더라. 너도 한번 중국을 떠나보는 게 어때?
고려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뭐 고려는 항상 하고 있습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가정상황까지 디테일하게 공유하는 이야기를 하고는 다음엔 이 친구 사무실이 있는 심천에 가서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심천에 가야 할 일이 생긴 거 같네요.
노먼포스터 회사는 최근 한국 서울에 사무실을 오픈했습니다.
한국 모기업의 빌딩을 설계하기로 계약을 맺었다네요. 그러면서 한국에 프로젝트가 더 생길 거 같아 본사에서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국 경제가 나쁘지 않은 거 같다길래 제가 한 마디 했습니다.
모르는 소리 말고, 지금 중산층 이하의 서민들은 죽어난다고요.
정말 대기업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나 봅니다. 이런 비싼 회사의 디자인을 사려고 하니깐요.
오늘 회사 관련 내용을 보면서 비싼 이유와 비싼 값을 하긴 한다는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무엇이든 결과값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최첨단 기술로 디자인을 하던,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서 다양한 심사숙고를 거쳐서 디자인을 해도 결과값은 비슷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제 디자인의 논점은 많이 평이해지기도 했기 때문이죠. 많은 시각적 표현들은 대부분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포장하여 클라이언트의 눈을 호강시켜 주는데 집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걸 위해서 많은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말입니다. 무엇이든 수주를 하는게 중요하니 말입니다.
다시 처음 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15년이 지난 옛 동료가 친구로 돌아왔습니다. 저랑 동갑이기도 한 친구인데, 오랜만에 만나도 속 깊은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전혀 부담스럽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만남. 그리고 다시 10일이 될지 10년이 될지도 모르지만, 또 보자고 헤어졌습니다. 자식들 이야기하고, 아내 이야기도 하면서 그렇게 같이 살아온 삶에 대해 수다를 떨고, 살아갈 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조금 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길 기대하면서 말이죠.
만나서 반갑고 헤어져도 아쉽지 않은,
친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참, 비즈니스 이야기도 빼지 않더군요. 도와주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저도 뭔가 주고 싶은데, 제가 이 친구를 도와주기엔 너무 높은 곳에 있네요.
그렇게 사람만나는 즐거움을 느낀 하루를 보내며 글을 남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