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 전유성을 기리며
얼마 전 2025년 9월 25일 전유성 씨가 돌아가셨습니다.
최근 여러 매체에서 봤을 때 부쩍 마르고 어딘가 안 좋은 얼굴이었는데, 몸이 많이 편찮으셨나 보네요.
작년 이 분의 책 한 권을 사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오는 책들은 들고 오는 짐의 한계로 고르고 또 고르게 됩니다. 그래서 나름 여러 기준을 가지고서 선택을 하는데요, 이 책은 책 소개를 보고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하다가 다행히 한국으로 출장을 다녀오는 지인에게 부탁해 받은 책입니다.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책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우리가 늘 보아왔던 익숙한 것들을 처음처럼 느끼고, 늘 보던 것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다시 보자는 의미로 제목을 지은 모양입니다. 전유성 씨는 책에서 말합니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물음표를 붙이는 일이 즐겁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어슬렁거린다. 마치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개그맨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든 분으로 알려졌죠.
그런데 정작 본인은 가장 개그맨스럽지 않은 개그맨입니다. TV에선 늘 무뚝뚝하고 별로 안 웃기는 분이니깐요. 하지만, 이분의 말과 글을 접해보면 천성이 개그맨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촌철살인 격의 관점들을 보면 왜 이분이 이 세계에서 그리 존경을 받았고 유명했는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알고 보니 그동안 책을 몇 권 쓰시기도 하셨더군요.
『남의 문화유산 답사기』,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하지 말라는 것은 다 재미있다』등의 책들이 있네요. 아쉽게도 아마도 제가 가지고 있는『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이 책이 이 분의 마지막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마도 건강하게 더 계셨으면 책이 더 나올 수도 있었겠죠.
이 책의 첫 번째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종합검진>
병원에 종합검진을 받으러 갔다.
"어머, 전유성 씨 안녕하세요?"
반가운 얼굴로 인사하는 간호사.
"안녕한지 어떤지 보러 왔는데요."
대부분이 이런 식의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글을 읽다 보면 이 분의 평소의 생각과 발상,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왜 그렇게 틀에 박혀서 흔히 말하듯 뻣뻣하게 인생을 살고 있을까? 하는 자각을 하게 만드네요.
이분의 우리말에 대한 철학도 엿보입니다.
"우리말에 대한 나의 철학은 단순하다. 쓰는 사람이 쉽고 편할 것. 어렵게 관습적으로 굳어져 버린 말들을 수비고 편하게 바꾸어 간다면 우리의 일상이 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제발 부탁하오니 '사무소 개소식'은 '사무소 첫 문 여는 날'로 바꾸어 주시옵소서."
틀을 깬다는 것은 어쩌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또는 명확한 자기 확신이 필요하죠. 그런 면모를 가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늘 틀속에 룰 속에 갇혀 살게 됩니다. 그게 편하니깐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변화와 진보는 항상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 어쩌면 개개인의 성향차이일 수도 있겠지만요,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을 바꿔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이어령장관님의 영상을 봤는데 방향성을 이야기하시더군요. 왜 다들 한 곳으로만 달려가는지, 그러면 결국 등수가 나뉠 수밖에 없는데 말입니다. 방향은 360도라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꾸준히 갔을 때 따라오는 이들이 적을지라도 가장 앞서 달려갈 수 있는 거겠죠.
전유성 씨는 '왜 반려동물은 콘서트에 가면 안 되는 거야?' '그건 누가 정한 룰이지?' 라며 클래식 콘서트 <개나 소나 콘서트>를 기획하고 열어서 매회 성공시켰다고 합니다. 10회나 했다니 꽤 성공적인 콘서트였나 보네요.
"남이 만들어놓은 룰을 따르기만 하면 새로운 일은 벌일 수 없다. 남이 안 해본 일을 하려면 룰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들을 참으로 많이 해내었던 분인 듯싶습니다.
학력에 대한 이분의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음악회를 여는데 구성원들 경력란에 최초 학력만 쓰자고 했답니다. 그러니깐 출신 초등학교만 기입하자는 거였죠. 점차 음악회가 지속되면서 이런 플래카드가 보이기 시작했다네요.
'경주 초등학교 41기 파이팅!'
이 분의 발상의 전환은 끝이 없습니다.
'전유성의 사진 실패 전'
'산삼을 위한 음악회'
'아이들이 떠들어도 화내지 않는 음악회'
'심야극장'의 아이디어도 이 분이 냈다고 하네요.
장례식장에 가면 많은 근조화환들이 보입니다.
대부분 비슷한 내용들이 적혀있고, 으레 그렇게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전유성 씨는 이런 근조화환에도 조금 다르게 써야 한다고 주장을 하죠.
'너네 어머니 오이지 참 맛있었는데.'
'믿을 수가 없다. 허참아.' (친구 허참이 세상을 떠났을 때)
'거기 가서는 아프지 마세요'
'진심으로 가슴 아픕니다.'
'00아, 내가 옆에 있었으면 네 손을 꼭 잡아 줄 수 있었을 텐데.'
이런 글을 썼던 전유성 씨 본인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만난 적도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지만, 이 분과 같은 세상을 살았고 먼저 떠나신 진정 '유쾌한' 전유성 님을 기리면서, 저도 한마디 적어보렵니다.
'거기서도 계속 심심하시길 바랍니다'
(심심하니깐 공상하고 착각하고 구라 치고, 심심하니까 헛소리도 하고 아재 개그도 만들어보고, 심심하니까 옆 동네 사람과 소주 마시면서 지내고.... 내 인생의 심심했던 시간들에 감사를 전하며 책을 닫는다. _ 전유성『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에필로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