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을 넘는 VPN에 대하여
중국에서 생활하시는 외국분들은 거의 대부분 VPN을 사용하십니다.
언젠가부터 한국의 여러 서비스들이 막히면서 접속에 어려움을 겪었죠. 많은 분들이 사용하시는 카카오톡이라든가 네이버, 다음 등의 서비스들이 중국에서는 접속이 되지 않아 불편을 많이 겪게 됩니다.
중국에서는 공식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이게 일종의 한한령이라고 인식하고 있죠.
중국에 오시는 한국분들은 가끔 질문을 하십니다.
"중국인들도 VPN을 쓰나요?"
저의 대답은 매번 비슷하죠.
"해외에서 유학을 하거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쓴다고 볼 수 있고, 특히 저희 같은 디자인 계통의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사용합니다."
중국만의 자료만으로는 눈에 차지 않아서, 디자인 선진국(?)들의 자료들을 접하게 위해 어쩔 수 없는 방법이죠. 조금 전문적인 분야라면 대부분 비슷하리라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많은 고급 인력들은 중국의 장벽을 넘어서 해외에 넘어가려는 노력들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왜 이렇게나 인터넷을 막아 놓는 것일까요?
표면적으론 어떻게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내면으로는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합니다.
중국에 비판적인 미디어의 접속을 아예 차단하려는 속셈이죠.
이게 현대 사회에서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전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예를 드는 게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는 매해 우리의 설연휴인 '춘절' 때가 되면 '春晚'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합니다. 모든 방송채널이 이 하나의 프로그램을 방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이 방송을 준비하기 위해 거의 6~8개월 전부터 시작한다니 방송이 끝나면 바로 시작한다고 봐도 될 듯싶네요. 이 방송에 한 번 등장하면 그 해에는 전국의 스타가 돼버립니다. 그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방송이죠.
그런데 말입니다.
의아한 건 시간이 지나도 이 포맷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의문입니다.
제가 중국생활 한 20년 넘게 하고 있는데, 처음 중국에서 이런 방송을 접했을 땐 신기해서 봤습니다. 많이 유치하지만 그래도 중국을 이해하는데 필요하단 생각이 앞서서 참을 만했죠. 노래하고 춤추고, 외국인 나와서 중국 좋다는 이야기 하고. 중국 각 지역의 온갖 소수민족들이 전통을 보여주고 서로 소통합니다. 절대 빠질 수 없는 무대의 모습은 56개의 소수민족 복장을 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손에 손잡고 일심동체가 되는 연출입니다. 그렇게 중국은 하나가 되려고 노력(?) 합니다.
근데 이런 모습을 한 20년 보다보면요. 의문이 생기죠.
왜 좀 더 발전된 연출은 못하는 걸까? 물론 바뀌긴 하죠. 로봇이 등장한다던가 화려한 빛의 향연도 하고요. 그런데 유치함을 느끼는 그 감정은 계속 유지가 됩니다. 이에 대해 전에 제 와이프(중국인)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죠. 이 친구의 대답은 그거 바꾸면 지방에 있는 나이 든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답변이었습니다.
13억 인구의 많은 수는 아직도 시골에서 마오쩌둥의 초상화를 걸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죠.
우리 미디어에서는 연일 중국의 기술발전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이렇게 변화지 않는 혹은 못하는 이들이 중국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해야 하죠. 그러하기에 인터넷 검열은 효과가 꽤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 글을 쓰려고 한 이유는 실은 다른데 있습니다.
오늘 하나의 은어를 배웠기 때문이죠.
사다리를 탄다? 뭐 그런 개념인데... 이게 도대체 뭔 말이지?
프로그램 문제로 이야기를 하다가 상대방이 '不开梯子的话不会~ 사다리를 타지 않으면 안 생겨....'란 표현을 썼습니다.
바로 사다리가 뭔 말이냐고 물었더니, 답변을 애매하게 합니다.
하나 배웠다고 다른 사람에게 이 단어를 썼더니만, 갑자기 말을 삭제하라고 합니다. 바로 느낌이 오더군요.
최근에 중국의 인터넷 SNS검열이 점점 지능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특정 단어를 사용하거나 하면 바로 걸리게 되어있죠. 그래서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VPN이라는 용어는 직접사용이 금지되다시피 되어 있습니다. 아무 경고도 없이 그냥 SNS계정이 삭제되는 경우도 허다하니,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조심할 수밖에 없겠죠.
VPN사용을 '사다리를 탄다'라는 표현. 재미있지 않나요?
중국의 여러 검열을 '만리장성'이라고 하듯이 이를 넘나들기 위해서는 '사다리'가 필요하단 의미겠죠.
예전 고성전투가 떠올려집니다.
그래서 좀 더 찾아봤습니다.
VPN 관련 용어들은 '翻墙 장벽 넘기', '科学上网 과학적 인터넷 접속', '魔法上网 마법처럼 인터넷 하기' 등등이 있더군요. '翻墙 장벽 넘기'이란 표현은 꽤 많이 들어봐서 알고 있었는데, 사다리 이야기는 생소해서 이렇게 생각나는 이야기를 적어봤습니다.
중국은 이 넓은 국토와 이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려면 '没办法 메이반파,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중국인들도 이렇게 인정해 버리죠. 중국이 발전하려면 이런 사고를 바꿔야 하겠지만, 당분간은 쉽지 않을 듯싶습니다. 이런 중국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대한민국이 떠올려집니다. 12.3 계엄이 있던 게 벌써 1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최근 이를 조명하는 다양한 영상들이 보이던데, 볼수록 대단하고 당시의 가슴 졸임이 떠올려집니다. 중국이라면 어땠을까? 잠깐 생각도 해봅니다.
계엄의 극복은 우리만이 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걸 이 중국땅에서 느낍니다.
사다리를 타고서야 바깥세상을 볼 수 있는 이곳이 아무리 인공지능이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전 중국을 폄혜하고 이 나라가 뒤처지길 바라지는 않습니다. 혹자들은 2050년이 되면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럴지도 모르겠죠. 하지만... 내면에 깔려있는 '민도民度'는 그렇게 쉽게 올라가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 부르는 나라들은 내면과 외면이 같이 어울리면서 발전한 나라들이었습니다.
가까우면서 견제할 수밖에 없는 중국을 제대로 알고 바라다보는 시각이 그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시기입니다.
오늘은 '사다리'가 제게 주는 사유의 씨앗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