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남자의 체력회복기
샤워를 위해 웃통을 벗어 무심코 쳐다본 거울 속의 나.
왠지 낯설다는 느낌이 납니다.
익숙했던 배 두둑하게 나오고 둥글둥글한 몸뚱이가 아니더군요.
팔을 들어 알통을 만들어 보고 흔히들 하는 거울 앞의 포즈들(?)을 하다가 무언가를 발견했습니다.
전 스스로 '무술인'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과거 아주 오래전이지만 학창 시절에 입문했던 합기도는 제 성장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공부보다는 도장에서 운동하는 것이 즐거웠고, 매번 쉬는 날이 오면 서점에 달려가서 새로운 무술 관련 책이 나온 게 없나 이런저런 책들을 들쳐보던 혈기 넘치던 청년이었죠.
이소룡과 최배달선생은 저의 우상이었고, 당시 최배달을 만화로 그려낸 ‘바람의 파이터’는 스토리를 달달 외울 만큼 마음속에 깊이 담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인용된 ‘오륜서(五輪書)’라는 책도 사서 보고, 일본의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사람도 알게 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무술의 이론적 탐구에 온 마음을 빼앗긴 그런 시기였습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쓰셨던 얇은 ‘태권도 철학과 구성원리’라는 책에서 느꼈던 그 방대한 지식에 감탄하면서 나도 나중에 이런 무술 이론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사회에 나와 직장을 다니고 아침저녁으로 바쁜 생활,
그리고 잦은 야근이 일상화되는 삶을 살아가면서, 청춘을 쏟아부었었던 ‘무술의 길’은 어느덧 많이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세월은 지나가고 나이를 먹으면서 술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자신이 가진 성인병의 종류를 나열하면서 나이 듦을 설파하는 모습들도 이제는 어느덧 익숙해졌습니다.
적당히 나온 뱃살. 점점 뻣뻣해져 가는 관절, 놀이기구를 타면 어지럼증이 생기고, 늘 피곤한 몸뚱이…
그래도 아주 비만은 아니기에 굳이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면서 밥상을 맞이하곤 했었죠.
그러던 찰나. 지인 한 분이 복싱체육관에 다니시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지은 한 분도 사모님과 함께 같은 체육관에 다니시더군요.
항상 복싱을 한번 배워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주변의 지인들이 다니고 있어 용기를 내어봤습니다. 체육관에 들렀다가 바로 등록을 했습니다.
'어색한 몸짓, 그냥 휘둘러대는 주먹들.'
그래도 샌드백을 두드릴 때 오는 그 짜릿함은 계속 체육관을 다니는 원동력이 되었죠. 그런데, 그러다 그만 상하이 코로나 봉쇄가 왔습니다.
몇 달을 꼼짝없이 아파트 단지에 묶이게 되면서 동력은 점차 떨어졌고, 그 후 봉쇄가 풀리긴 했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한 달에 한두 번 나갈까 말까 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름 한창때 무술을 수련했던 무술인이었는데…. 이까짓 복싱정도야~
하지만, 과거 다녔던 도장과는 시스템이 다른 복싱체육관은 코치에게 개인교습을 신청해서 받지 않는 이상 거의 ‘방치’되는 경우가 많이 있더군요. 게다가 중년 아저씨의 몸이 되어버린지 오랜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부터 복싱 관련 영상을 보고 몸짓을 익히고 학습하면서 체육관에 가서 흉내도 내고, 연습도 하면서 점차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왕 시작한 거 체력이라도 길러보자라는 마음으로 체육관에서의 운동루틴을 만들어 나름 열심히 운동을 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운동을 하면서 제 몸뚱이에 대해 깨닫게 되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참 땀이 많이 나는 몸이라는 거, 체력이 엉망이었다는 것, 근력 또한 형편없어졌다는 거…. 등등등
'쨉, 쨉... 원, 투...' 폴짝폴짝 뛰는 동작을 1분만 해도 종아리는 쥐가 나듯이 통증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가끔 고혈압 증세가 나타나기도 하고, 이제는 없어졌지만 한 때 통풍으로 고생도 했고, 쉬이 피곤함을 느끼기도 했던 모양입니다.
중국의 복싱 관련 영상을 살펴보다가 한 여성코치의 말이 많이 와닿았습니다.
“초보는 체력, 중급은 기술, 고수는 전략‘
다들 기술을 익힌다고 이래저래 연습을 하고 가로훅이 맞니, 세로훅이 맞니 이야기들을 하는데… 역시 권투는 먼저 ‘체력’이란 말이 맞습니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술은 쓸 수가 없거든요.
한 번은 유튜브 영상에서 선수들의 '파워 샌드백' 훈련을 보고 입이 턱 벌어졌었습니다. 저렇게 하니 10라운드 이상을 뛸 수 있는 거구나...
요샌 일주일에 3~4회 체육관을 방문합니다.
한 번에 짧게는 1시간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 30분 정도 운동을 하기도 하고요.
수많은 격기 운동 중에 복싱의 자세와 주먹 던지기 기술들은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오면서 익힌 최적의 궤적과 공격 기술일 겁니다. 많은 격기 운동이 있지만 주먹을 쓰는 기술에서는 복싱을 이야기 안 할 수 없죠. 그만큼 복싱의 자세와 주먹을 던지는 방법들은 인류의 역사만큼의 노하우가 쌓였다고 봐야 하기에 모든 동작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초보들은 그냥 의심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익히고 볼 일입니다.
제 딴에는 합기도를 꽤 오랫동안 수련한 경험이 있기에 심적으로 건방이 올라옴이 있었지만, 지금은 복싱체육관에서는 ‘겸손’을 최고의 미덕으로 인류 최고의 주먹 던지기 기술을 연습하면서 체력을 기르고 있는 중이죠.
그랬더니 기적이 생겼습니다.
제 갈비뼈가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이게 몇십 년 만에 보는 제 갈비뼈인지….
내게도 숨어있던 뼈가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더군요.
너무 감탄한 나머지 이렇게 별 싱겁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도 글도 쓰고 있는 겁니다.
체력도 올라오고, 갈비뼈도 보이기 시작하고.
웃통을 벗고 있어도 별로 부끄러울 게 없다는 자신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합니다.
이젠 수영에 도전을 할까요? ^^
몇 달 정말 열심히 운동을 해보면서 곰곰이 생각을 해봤습니다.
대부분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옆의 코치들은 꽤 힘든 운동을 마구 시키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한테는 혹은 운동을 많이 하시던 분들에게는 별로 힘들지 않은 동작들이니깐요. 하지만, 처음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정말 힘듭니다. 고통이죠. 단련을 해야 하는 건 알겠지만, 그 '고통'은 분명 힘겹습니다.
그 고통을 이기고 계속 운동을 해야 한다는 말은 쉽지만, 몸이 안 따릅니다. 몸이 적당한 수준에 올라야 다음 동작으로 넘어갈 수 있는 거죠. 그래야 재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아님 설명이라도 자세히 해줘서 이 과정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알려줘야 합니다. 운동을 안 해보신 분들에게 이 과정을 이기고 올라오길 기대하는 것은 정말 힘듭니다. 그 초기의 고통이 필요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많이들 포기할 것입니다. 어쩌면 바로 이 시점에 제대로 된 ‘운동 마케팅’의 관점이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점차 고령화되는 사회.
자신의 몸을 제대로 관리하려는 사회적 기대는 점차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생활체육 혹은 사회체육의 시장성은 매우 높을 거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운동들이 젊고 건강한 이들을 위한 운동으로 마케팅되고 있죠. 우리 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을 모두 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구나 점차 노령화되는 인구구조 속에서 이 문제는 분명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이기도 할 것입니다. 과제가 되기도 하면서 돈 벌 기회가 되기도 하겠죠.
유튜브가 일반화된 요즘.
운동 관련 검색을 하면 유난히 많은 영상들이 보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수많은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느낀 점은.
아무리 영상으로 봐도 실제 자기 몸으로 움직여보고 옆에서 지도를 해주어야 제대로 교정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체육관이 필요하고 코치가 필요한 거겠죠.
인공지능으로 떠들썩한 이 시대. 자기 몸을 이해하고 단련하고 개발하는 노력도 역시 주목받아야 하고 그럴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제 갈비뼈 노출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다들 건강한 신체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