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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쏟기 Jul 23. 2024

민강 대협곡, 그 험난한 삶의 여정

험난한 자가운전 여행길도 함께하며

송반고성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모우니고우에 방문하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점심시간이 다 되었더군요. 근처에 먹을 곳도 마땅치 않고 비상식량을 꺼내 물을 붓고 차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했습니다. 사람도 별로 없고 주차장에서 야영을 하는 느낌이 살짝 나더군요.  


그렇게 식사를 끝내고 장거리 운전에 들어가기 전의 마음의 준비를 한 후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목적지는 두장옌(都江堰, 도강언)이라는 도시입니다. 여기는 행정상 청두시에 속한 현급시죠. 도시이름이긴 한데 두장옌이라는 수리시설로 유명한 곳인데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서 이동합니다. 무슨 수리시설이 관광지냐? 고 의문을 가질 법도 한데요,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곳입니다. 아주 오래전 전국시대 진나라의 이빙(李冰) 부자父子 의해 설계되고 지역주민들에 의해 건설된 일종의 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매번 범람하는 물로 인해 피해가 생겨서 제대로 농사도 못 짓는 땅을 현명한 수리시설을 통해 제어함으로써 향후 청두라는 도시가 중심지가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죠. 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얻는 셈입니다. 


이곳을 여행 목적지로 삼았기에 두장옌시에 있는 숙소로 향했습니다.

약 270킬로 미터정도의 운전거리였습니다. '민강대협곡'이라 불리는 산악지형의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거라 쉽지 않았습니다. 1차선 도로가 대부분이었고, 트럭들과 관광버스등의 대형차들이 앞길을 너무 자주 막는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이런 차들을 추월해서 가려니 한두 번도 아니고... 마냥 뒤따라가다 보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요. 긴장을 놓칠 수가 없을 정도로 조금은 살벌한 운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약 4시간이 조금 못 미치게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아내와 번갈아 가면서 운전하기로 했는데, 이런 낯설고도 계속 추월을 해야 하는 길에는 아내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혼자 아내의 끝없는 수다를 들으며 운전을 했습니다. 아마도 졸지 말라고 더 떠든거 같긴 하네요. 


중국의 물길을 보여주는 지도와 이번 여행지인 민강부근의 지도

중국은 지형도를 보면 크게 2개의 강이 서에서 동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나는 황허(黄河, 황하)라고 불리는 강이고, 또 하나는 양쯔강(扬子江,양자강)인데 창지앙(长江, 장강)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 장강은 티베트 고원에서 중국 내륙을 거쳐서 동중국해로 흐르는 강입니다. 장강은 중간에 여러 물줄기가 합쳐져서 하류로 흐르게 되는데, 그 시류 중의 하나가 민지앙(岷江, 민강)이라고 불리는 강입니다. 바로 제가 여행을 한 지역이 바로 민강의 물이 형성되고 이어지는 경로이기도 하죠. 여행을 했던 구채구나 무니구등의 물들이 여기 민강으로 흘러서 다시 장강으로 합류됩니다. 민강은 예부터 다른 강보다 수량이 많아서 지금 청두지역은 매번 물난리를 겪어야 했습니다. 바로 이 어마무시한 물살을 잡아서 정리를 해주는 바람에 청두가 곡창지대로 사용될 수 있었고, 이 지역이 사천성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된 거죠. 그런 의미에서 두장옌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더구나 그 옛날(2000년 전) 수리공학을 실천했으니 자연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도전에 박수를 보냅니다. 


차량 이동 중 보이는 주변 풍경. 거세게 흐르는 민강의 물살이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민강대협곡'을 따라 계속 이동을 하는 경로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원추안(汶川, 문천)시도 지나갑니다. 2008년의 사천대지진이 있었던 곳이죠. 사천대지진으로 불리지만 중국에서는 조금 더 직접적인 지역명인 문천대지진으로 불립니다. 이 지역엔 당시 지진피해를 기념하고자 지진기념관도 건립되어 있죠. 이곳도 방문하려다 뺐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이것도 좀 아쉽네요. 아쉬운 김에 이곳 기념관을 검색으로 찾아봤는데, 건물 전체가 땅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의미를 표현한 디자인이네요. 땅의 지진과 다시 새로운 생명이 꽃피는 그런 의미일 거라 '추정'을 해봅니다. 


사천대지진(문천대지진) 기념관과 내부 전시 모형

운전 중에도 아직 복구가 덜 되어 있거나, 새롭게 도로를 내는 공사들을 여럿 볼 수 있었는데, 당시 피해가 엄청났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리히터 규모 8.0으로 사망자 약 69,000명, 부상자 약 374,000명, 행방불명자 약 18,000명이라고 하니 정말 엄청난 재난이었죠. 


이렇게 큰 물살과 각종 자연재해를 받아들이며 대협곡에서 오랜 기간을 살아가고 있는 소수민족도 있습니다. 

이들을 '치앙주(羌族강족)'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문화를 일구며 살아왔는데 그 오랜 역사 속에서도 굳건히 대를 이어 살아온 이들이 사천대지진으로 삶의 터전의 약 80%가 무너졌다고 합니다. 중국 정부는 새로운 도시에 이들을 정착시켰다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새로운 현대식 건물에 살게 되면서 급속도로 이들의 정체성이 희석되어가고 있다고 하네요. 


운전을 하다 지도상에 강족 마을이 보여서 잠깐 쉴 겸 들렸습니다. 

근데 왠걸...완전 새롭게 정비된 도시가 나와서 여기가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지금에야 이해가 되네요. 기대했던 전통가옥들은 보이지 않고, 중국 지방도시들의 평범한 모습이었습니다. 

관광을 위해 급조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거부감을 느껴지더군요. 이곳에서 각종 공연도하고 그러는 모양입니다. 우린 잠시 들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산책을 하다 바로 이동을 했습니다. 


강종 자치구의 공연장과 근처에서 관광상품을 파는 강족 여인들

윗글은 2007년 쓰인 강족에 대한 한겨레신문 글입니다.

2008년에 지진이 일어났으니 바로 전에 답사를 하고 쓴 글로 보입니다. 강족에 대해 더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링크를 남겨봅니다. 여기 글을 보면 강족들의 전통가옥들이 보이는데 이런 류의 건물들이 대다수 소실된 모양입니다. 강족들은 돌을 귀하게 여기고 숭상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고, 흰돌을 신성시한다고 합니다. 사진을 보면 돌을 쌓아 지은 건물들이 많은데, 이런 조적식 구조물은 지진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었겠죠. 


이들은 상나라의 갑골문자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고대민족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강족의 ‘강羌’ 자는 양과 사람이 합쳐진 글자인데, 양을 중시하는 유목민족이었습니다. 지금도 여러 상징적 문양들을 보면 양의 형상을 볼 수 있죠. 이들은 강인한 전투력을 갖고 있었던지라 고대의 상나라는 이들로 인해 여러 번 수도를 옮겨야 하는 치욕을 맛보았다고 하죠. 이런 깊은 원한으로 상나라의 제사 때에는 동물대신 잡혀온 강족의 머리를 잘라 제물로 올렸다는 학자들의 분석이 있습니다. 상나라의 제사장 유적지에서 강족들로 보이는 목 없는 시신들이 대량으로 발굴되었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강태공(姜太公)'

강태공은 직책이름이고 실제 이름은 여상(呂尙) 또는 강상(姜尙)이라고 합니다.

강태공이 '강족羌族'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아시나요? 강족이었던 강태공은 상나라의 공격으로 가족을 잃고 요동지역에서 40년 동안 숨어 지내다가 상나라를 계승했다는 주나라의 문왕을 만나게 됩니다 (호수에서 찌없는 낚시를 하다가...). 문왕이 강태공을 스승으로 삼고 문왕과 그의 아들 무왕을 도와 상나라를 공격하게 됨으로써 상나라가 멸망하게 됩니다. 


강태공이 요동지역에서 숨어살 때 밥벌이를 못하고 맨날 허송세월을 보내니 아내가 그렇게 구박을 했나 봅니다. 후에 문왕을 도와 제대로 출세를 하니 아내가 찾아옵니다. 이때 물을 한 사발 떠 오게 하고 이를 땅바닥에 엎질러버리고는 다시 담아보라고 합니다. 어디서 많이 듣던 말이죠?


'엎질러진 물'이라는 우리가 잘 쓰는 표현이 여기서 왔다네요.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복수난수(覆水難收) : 한 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글쎄요... 강태공이 잘한 건 없는 거 같은데,

늙어서도 성공하면 떳떳해지나 봅니다. 

강태공은 허송세월 보내다 72세에 문왕을 만나 139세까지 살았다고 하니. 어떤 이들은 160살까지 살아서 '궁팔십 달팔십(窮八十 達八十)'이라는 말도 있다고 합니다. 80세까지 궁하게 살다 나머지 80세는 영광스럽게 살았다 뭐 그런 의미죠. 기다림의 끝판왕?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이런저런 자료를 찾으면서 글을 쓰다 보니 혼자만 알기 아까워서 꾸역꾸역 적어봅니다. )


과거의 사건과 인물은 그렇다 치고,

전통문화를 과연 언제까지 지킬 수 있는 것인가? 언제까지 지켜야 하는가? 는 논쟁이 될 부분이겠지만, 이렇게 오랜 문화가 사라져 간다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겠죠. 과연 중국 내의 56개의 민족들을 중국은 언제까지 어떻게 끌고 갈지 모르겠습니다. 또 이 민족들은 언제까지 한족들 틈바구니 속에서 힘겹게 생명을 유지해야 할지도 의문이고요. 이래저래 다양한 소수민족들을 접해보면서 드는 생각들입니다. 


방문지의 관광약도


저희가 방문한 지역의 이름도 제대로 몰랐는데, 여기 지도를 보니 쓰여있네요.

‘羌王官寨-演艺中心片区’ 강왕관채연예중심

중국에선 '古羌城‘으로 통합니다. 


저의 조금 치우친 생각인지 모르지만, 이런 식의 '테마파크'는 이들의 삶이 구경거리가 되는데 불과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럼 전통이 이어지는 게 아니라, 전통을 '공연'하는 삶을 살아가는 거죠. 


다시금 전통은 보존돼야 하는가? 어떻게 보존되어야 하는가? 누구의 관점으로 보전되어야 하는가? 보존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보존되어야 하는가? 어느 정도까지의 변형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생각할 거리들이 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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