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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쏟기 Jul 24. 2024

매운맛 좀 볼래? 사천의  맛

사천성 어느 거리음식에 대하여

'캡사이신(Capsaicin)'

고추에 들어있는 매운맛을 내는 성분입니다.

매운맛은 5가지 맛(단맛,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에 들어가지 않는, 맛이 아닌 '아픈 감각'이라고 하죠. 포유류에게 존재하는 촉각수용기 가운데 통증 수용 단백질인 TRPV1과 결합하여 강한 열감과 통증 신호를 전달케 하며,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매운맛을 느끼게 됩니다.


즉 '매운맛'은 '아픈 맛'입니다.

한국인들은 한 매운맛 하죠. 매운 거 잘 먹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곳 사천성 사람들이 보면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사천성은 매운맛으로 유명합니다. 향이 강한 화자오나 매운 고추 등의 향신료를 많이 넣어, 향이 강하고, 매운 중국 요리로 알려져 있죠. 고추를 이용해서 매운맛을 내는 우리 음식과 이들이 먹는 매운맛은 좀 다릅니다. 


예전 청두를 방문했을 때 훠궈식당을 방문해서 먹은 적이 있었죠. 매운 거 반, 안 매운 거 반 이렇게 탕을 시켜놓고선 그래도 한국사람인데 매콤한 걸 먹어야지 하는 호기를 부리면서 매운 쪽을 선택했죠. 그런데 처음엔 어느 정도 먹을만하더니만 점차 시간이 갈수록 이건 음식이 아니라 무슨 화학용액을 먹는 기분이었습니다. 끓일수록 매운 농도가 진해지고 매운 성분이 농축되어 가면서 음식이 아닌 매운 어떠한 용액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보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들 잘 먹고 있습니다. 이렇게 먹고도 위장이 멀쩡한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학자라면 이 지역 사람들 위장검사 데이터라도 한번 분석하고 싶네요. 전 이런 따끔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에 절대로 사천음식을 얕보지 못합니다. 


중국음식을 시킬 때에는 종업원이 손님들에게 매운 정도를 물어봅니다. 

不辣, 微辣,中辣,重辣 (순서대로 부라:안 맵게, 웨이라:조금 맵게, 중라:중간정도 맵게, 쭝라:아주 맵게)

중라와 쭝라는 발음 잘하셔야 할 듯....

그런데 이 스펙트럼 기준이 지역에 따라 다르다는 게 문제죠. 상하이에서 말하는 '웨이라微辣'와 이곳에서 말하는 ‘웨이라’는 완전 다릅니다. 참 신기하죠? 왜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도 매운 걸 좋아할까요? 

많은 설명자료들을 보면 이 지역이 분지지형의 기후영향으로 습기가 많아서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을 흘려 건강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습기라면 상하이가 더하면 더하거든요. 게다가 매운 음식을 먹는 곳이 여기 사천뿐은 아니죠. 


중국의 경우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서야 고추에 대한 기록이 보입니다. 남미 쪽에서 시작된 고추가 유입된 건 훨씬 뒤라는 이야기인데, 사천지역의 매운맛은 화자오가 주였고 후에 고추가 유입되면서 복합화된 경향을 띠죠. 어떤 경우든 여러 이유가 같이 어우러져 지역의 맛을 형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사천지역의 매운맛은 중국의 공산화 혁명을 겪으면서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사천요리가 더욱 유명해진 결과를 가져왔죠. 



저희는 길고도 자칫 위험했던 운행을 마치고 드디어 뚜장옌(都江堰,도강언)에 입성합니다.

며칠을 산과 호수를 보다가 '문명'을 보기 시작하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차들이 넘쳐나고 사람들도 많이 보입니다. 도심으로 들어서자 차도 막히기 시작합니다. 딸아이는 각종 칵테일 음료와 KFC가 있다고 좋아합니다. 

그렇게 서서히 도심에 접어들고 숙소가 있는 '꽌시엔구청(灌县古城, 관현고성)'에 도착했습니다.

뚜장옌 수리시설 (뚜장옌 관광지)의 아래쪽에 형성되어 있는 옛 성입니다. 옛 건물과 각종 상점들 그리고 저녁 무렵에 들어서기 시작하는 노점들이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뚜장옌풍경구를 본격 관광하기 전 저녁에 간단하게 요기를 한다거나 맥주 한잔 하기 딱 좋은 그런 야시장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사람이 미어터집니다. 얼마 전까진 사람이 안 미치는 자연생태계를 보면서 감탄을 했는데, 여기선 미어터지는 사람들을 보고 감탄을 합니다. 

관현고성의 야식거리
관현고성내의 다양한 사천 거리 음식


숙소에 짐을 풀고 거리로 나와보니 온갖 종류의 거리 음식들이 즐비합니다. 

'여기서 저녁을 때우자' 아내와 눈빛을 교환합니다. 

많은 사람들과 많은 거리 음식들을 보자니 괜히 기분이 들뜨게 됩니다. 상업적 분위기는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한몫을 하는 모양입니다. 운전하며 오다가 강물과 주변의 야경을 얼핏 보았는데, 그곳으로 향하면서 이것저것 뭘 먹을까 둘러봅니다. 

상하이에서는 보지 못하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있더군요. 물론 기본으론 대부분이 빨간색입니다. 

가족들과 맛을 같이 보려면 그중 안 매운 것을 골라야 하기에 한동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다가 시식을 시작했습니다. 식당에 앉아 요리사가 만드는 음식도 맛나겠지만, 이런 거리의 음식도 나름 매력이 있습니다. 

관현고성내 사천지역 거리 음식들. 오른쪽 사진은 '돼지뇌 요리'


그렇게 군중을 헤치며 하나 둘 주워 먹다 보니 앞서 보았던 '앙티엔워(仰天窝,앙천와)'에 도착했습니다. 강을 건너는 지붕 있는 교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곳 주변으로 야경이 펼쳐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움집해 있더군요. 교각을 건너려니 지나가기도 쉽지 않을 만큼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강변을 산책을 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사람이 너무 많아 이곳을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송반고성에서 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다시 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 이때까지만 해도 '왜 사진에 봤던 수리시설은 안 보이는 거지?'라는 의구심을 안고 있었는데요. 알고 보니 뚜장옌 수리시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은 상류 쪽이었고, 거긴 '당연히' 입장료를 받고 입장하는 곳이었습니다. 중국에 이렇게 오래 있으면서도 아직 '순수한' 맘을 갖고 있었네요. 

앙티엔워 교각의 입구
'앙티엔워' 근처의 밀집된 군중의 모습


오기 전에 봤던 많은 사진들 중에서 여기 앙티엔 교각의 사진이 많이 보여서 전 이곳에 뚜장옌관광지의 중요지역인지 알았습니다. 어쨌든 궁금증은 다음날 입장료를 내면서 해결이 되었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역시나 아침이 되니 조용하고 모든 게 잘 들어왔습니다. 신기한 건 밤에 그렇게 많이 있던 노점들이 언제 있었냐는 듯 싹 사라지고, 아주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더군요. 아침 일찍 청소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매번 이렇게 수고를 하는 모양입니다. 나름 이 지역에서는 노점상과 관리지역 간의 합의가 잘 되어 있는 거 같기도 하고요. 중국도 과거에 비해선 많이 달라졌습니다. 발전하고 있는 거죠.

저녁때완 달리 깨끗하게 정리된 거리 모습

역시나 아침에 아내에게 같이 가겠냐고 물어봤지만, 들은체만체...

강변 옆에는 어제 늦게까지 영업했던 노상 의자들에 앉아서 수다를 떠는 어르신들이 보입니다. 아침 일찍 새장을 들고 나와 산책을 하시는 분들이죠. 자주 그 자리 그 시간에 보니 다들 친분이 있으신가 봅니다. 그분들 옆에서 새소리와 세찬 강물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전화가 울립니다. 아내가 나왔다고 어디 있냐고 묻네요. 그렇게 아내와 합류를 하고 아침 데이트를 합니다. 


참고) 새를 기르는 문화는 만주족에서 시작되어 청나라 귀족들에게 유행하던 문화라고 합니다. 중국 공원에 가면 새장을 갖고 나와서 걸어놓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분들을 종종 뵐 수 있습니다. 새 노래 경연대회도 있다고 하니 새 기르기에 진심인 이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죠. 


아침에 듣는 시원하고 거센 민강의 물소리
새장을 갖고 나와서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
교각의 전날과 아침 풍경 비교

날이 밝으니 더 많은 것들이 보이네요.

강물 흐르는 소리를 남기고 이동을 하면서 아내와 '어디를 더 가볼까?' 하는 의논을 합니다. 아내가 문득 뭔가 떠올랐다며 핸드폰 검색을 합니다. 무슨 대형 판다가 있다고 하네요.

뚜장옌에 가면 꼭 가보는 젊은 세대들의 핫플레이스(중국말로 打卡点) 중에 대형 판다가 생각났다면서 검색을 해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코앞에 있더군요.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SNS에서 핫한 대형 판다 조형물


여행기를 그냥 시간의 순서로 나열하려니 시간차로 중복 방문하는 곳도 생기고 해서,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살짝 고민을 해봤습니다. 그냥 어디 어디에 가봤더니 이러하더라 하는 식보다는 좀 더 다양한 관점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없을까 생각했죠. 어쩌면 이 짧은 여행기 속에서 중국의 깊은 내면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드러내기엔 한참 부족한 지식과 경험이지만 오랜 중국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그동안 보고 느꼈던 것들을 같이 담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만의 의식의 흐름으로 글이 막 흘러가기도 하네요. 


여행을 갔다 와서 기억을 남기고자 하는 생각에 글을 쓰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그중 몇 개의 글은 포털에 뜨는 바람에 조회수가 많이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에겐 몇 안되시는 꾸준히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셔 더욱 감사하게 느껴지고 글에 책임감도 생깁니다. 


이제 여행을 한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아직도 글을 완성 못하고 있습니다. 

어제 일이 있어 다시 다른 지역의 호텔에 도착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항상 쓸 내용은 쌓이는데 속도가 쫓아오지 못하네요. 그래도 이렇게 한 두 편의 글을 쓰다 보니 글 쓰는 능력은 모르겠으나, 글을 쓰는 습관은 조금 들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계속 써야겠습니다. 


사천지역은 삼국지의 유비와 제갈량의 활동지역이죠.

'촉한'지역으로 산세가 험하고 다양한 민족이 얽혀 있습니다. 이 지역이 중원의 한족들에겐 매력적인 땅은 아니지만, 쳐들어 오는 적들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수해야 하는 지역이죠. 그렇게 험한 역사의 이야기를 담은 곳이면서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섞여있는 곳입니다. 


이곳의 매운맛만큼이나 매운 역사와 매운 스토리들이 담긴 곳입니다. 

사천의 매운맛을 보실 때, 한 번쯤 이곳의 '인문人文'을 떠올려보시면 매운맛이 더 맛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여행은 막바지에 이르러 며칠 남기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내용들을 계속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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