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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쏟기 Jul 22. 2024

뭔가 다른 古城, 송반고청

사천성 송반고성의 흥미진진 이야기(2)

많은 중국의 왕조들을 보면 성곽을 세우는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고대 전쟁을 묘사한 영상들을 보면 서양이나 동양이나 성벽을 넘거나 파괴하는 것이 전쟁의 성패를 규정하는 중요한 전략이었습니다.


일본의 도쿠카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후 아들인 히데요리와 대립하게 되는데요, 히데요리는 대립하는 과정에서 이에야스를 믿고 오사카성의 해자(垓子, moat) 메우는데 동의를 합니다. 당시 휴전의 조건으로 성이나 요새를 부수는 관행이 있었다고 하는데 안쪽과 바깥쪽의 해자 중 한 곳인 바깥쪽만 메우는 조건이라 승낙을 한 모양이네요. 결국 이 행위로 인해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하는 최후의 승자가 됩니다.


북경이나 서안의 성곽들은 평지에 지어진데 비해, 여기 송반고성의 성곽은 지형을 활용하는데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한족의 입장에서는 서쪽의 오랑캐들이 넘어오는 것을 막는 중요한 전략지였기 때문이죠.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개념들이 있습니다. 바로 서쪽의 성곽문이 지상에서 500미터나 높은 산꼭대기에 있다는 겁니다. 중국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형태죠. 서쪽의 산줄기를 따라 성곽을 짓고 서문을 설치함으로써 혹시 모를 서쪽산을 타고 내려오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데 노력을 한 것이죠. 이 때문에 전체 성의 평면이 지형을 따라 사각형이 아닌 오각형을 띠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문화혁명으로 많이 파괴되어 형태가 불명확해졌지만 말입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중국에서 가장 두터운 벽두께를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총길이 6.5km의 성벽 길이이고, 가장 두꺼운 곳의 벽두께는 12미터에 이릅니다. 벽돌마다 일련번호와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품질관리를 위한 것으로 파악이 되며, 돌들은 오동기름과 찹쌀 그리고 석회를 혼합해 만들었습니다. 이런 특수 접착제의 영향으로 여기 성곽의 벽들은 천년이 지나도 튼튼하다고 하네요. 참고로 이곳엔 찹쌀이 나지 않았다니 재료 공급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깊은 두께를 알 수 있는 성곽문의 통로

성 안에는 독특하게도 불교사원과 회교도 사원들이 섞여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설명을 했지만, 이곳에는 다양한 민족들이 자신의 풍습과 습관을 유지하면서 서로 간섭 없이 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전부터 ‘차마고도茶馬古道’라 불리는 지역이라 이민족들 간의 상업이 발달한 이유이기도 하겠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문화적 동화 없이 서로 존중하고 잘 살아가고 있네요.



이러한 가본 지식을 바탕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방을 나섰습니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아내한테 일어날 거냐고 물어보니 몸만 뒤척거리고 대꾸를 안 합니다. 조용히 나와서 어젯밤에 못 가본 성문을 넘어봤습니다. 그제사 뒤따라온 아내와 합류해 아침 산책을 시작했죠.


먼저 어제 너무 늦어서 나서지 못했던 가까운 북문의 화친상을 보러 갔습니다. 문성공주와 송첸캄포가 다정하게 같이 서있는 티베트인과 한족 간의 다정다감함을 표현한 조각상이죠. 사진을 남겨야 하기에 얼른 몇 장을 찍고 있는데, 아침 운동하시는 분들이 보입니다. 산소가 부족해서 숙소에 산소호흡기까지 있는 곳인데 이렇게 아침에 조깅들을 하십니다. 여기서 운동하시는 분들은 아마도 폐활량이 무지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살펴봅니다.

성곽에서 아침조깅을 하시는 분들


멀리 서쪽산을 바라보니 성문이 하나 보입니다. 아항 이게 그 성문이구나… 저기에 어떻게 올라가지? 왠지 아침 운동삼아 가도 될 거 같아서 호기를 부려봅니다. 혹시 몰라 정차하고 있던 택시기사분들한테 물어보니 걸어서는 한 시간 정도 걸린답니다. 아쉽게도 오전에 모우니고우에 들려야 하기에 무리이더군요. 아이도 방에서 자고 있고. 포기하고 그냥 중간에 보이는 사찰이나 가보자고 올랐습니다. 다 올라가 보니 문이 꼭꼭 잠겨 있더군요. 운영을 안 하는 거 같았습니다. 거참~ 뭐라 설명이 어려운 묘한 감정을 안은채 옆 골목으로 방향을 옮겨 내려갔습니다.


송주고성의 전체 모습(추정)과 서쪽 성문의 위치, 우측은 북문 내부에서 바라본 모습


사찰을 오르던 중 좁은 골목길에 가건물이 있고 아침부터 뭔가 열심히 작업을 하기에 열린 문틈으로 들여다봤습니다.  


허거걱~

이게 뭐죠? 잘린 소머리가 한가득 쌓여있고 강한 불로 머리털을 태우고 있더군요. 아니 왜 불교 사원 아래서 이러고 있나 의아해했는데, 다행인지 사원은 닫혀 있더군요. 이 괴상한 모습은 아래로 내려와 이동하면서 바로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뭔가 음침하면서 쾌쾌한 비릿한 냄새가 감돈다했더니만 바로 얼마 못 가서 도살장이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 보니 이곳에서 소들이 도축되어 소매상으로 넘어가는 모양입니다. 앞서 보았던 소머리를 처리하는 곳도 이 도살장과 연관되어 있었던 거고요. 바닥에 깔리 소 피들과 여기저기 쌓여있는 부속물들을 보자니 기분이 찜찜했습니다. 그렇게 계속 앞을 향해 가다 보니 주변에 각종 소와 양고기탕을 파는 곳들이 보였고요. 조금 더 가보니 조금 규모가 있는 건물이 보입니다. 안을 조심히 살피고 들어가 보니 회교도 사원이었습니다. 밖의 모양은 중국식 전통기와 건물인데 회교도인들의 사원이더군요.

도살장과 주변의 갓 잡은 고기를 판매하는 상점과 소양고기시장


이제야 이 모든 것들이 이해가 가기 시작합니다. 

앞의 글에서도 설명했듯이 이곳은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얽혀 지내고 있습니다. 그중에 우리가 회교도라고 불리는 회족((回族)은 현재는 한족과 동화되어 아랍 쪽의 이슬람인들과는 좀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은 거의 한족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요, 그럼에도 돼지고기를 안 먹고 소나 양고기를 먹는 풍습을 지키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하기에 여기 도축장이 있는 거죠.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회족들이 예배를 드리는 사원 근처는 거의 대부분이 소나 양을 도축하거나 관련 고기를 파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회교사원의 모습


관련자료들을 보면 회족들은 한족들에 비해서 훨씬 위생적이고 규율을 잘 지킨다고 하네요. 거리에 침을 뱉지도 않고, 이것저것 고기를 가리지 않고 먹지도 않고, 예배를 위해 잘 씻고... 종교적 가르침을 잘 따르는 이들은 아무래도 남에게 피해를 덜 주는 삶을 살겠죠. 종교적 망상에 사로잡히지만 않으면요. 


모든 것이 이런 이유였구나... 하는 의문들이 풀리면서 이 지역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생을 마감하는 동물들이 가엽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이 그렇게 다른 동물의 생명을 앗아가면서 이어가는 생태계속에서 사는 겁니다. 이 생태계를 거부하면서 채식을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맛난 고기를 먹으며 살고 있죠. 인간을 위해 고기를 내어주는 동물들에게 감사하는 생각도 해야겠습니다. 그러니 과식하지 말고 적당히 음식을 소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조금 음습한 기운을 뒤로한 채로 이곳의 아침풍경을 살피다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우러 숙소로 복귀했습니다. 가는 길에 아침 먹거리를 내놓은 곳도 보이고, 한 곳에서는 여럿이 모여서 뭔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더군요. 가까이 가서 보니 '동충하초'를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이게 이렇게 일일이 사람손을 거쳐서 정리되는 줄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이런 약재에 크게 관심을 가지 않아서 잠깐 지켜보다 자리를 옮겼습니다. 

가격을 물어보진 못했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들이 아침부터 나와 손질하는 걸 보면 수입이 되는 모양입니다. 

동충하초를 씻고 있는 모습


숙소로 돌아와 자고 있던 아이를 깨워 아침식사를 하러 내려갔습니다. 

작은 규모의 식당은 지하에 마련되어 있었는데, 어젯밤에 묵은 손님은 저희 외에 다른 한 팀 밖에 없었나 봅니다. 모자가 같이 식사를 하시는 한 팀이 계시고, 그리고 우리 세명이었죠. 그렇게 아침식사를 했고, 뭔가 준비를 한 거 같기는 한데 마땅히 먹을만한 게 없더군요. 간단히 식사를 마쳤지만 딸아이는 입맛이 까탈스러워 제대로 먹지도 못했습니다. 아침 커피를 마시는 아내는 커피를 잘 가져왔다면서 챙겨 온 커피를 마셨고요.

상하이는 커피숍이 가장 많이 있는 도시 중의 하나라고 하던데, 아직 이곳까지는 커피 문화가 스며들지 못했나 봅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서 비장의 컵라면을 꺼내서 아이에게 먹였습니다. 


지하식당 내부와 조촐한 아침식단



중국 컵라면이 우리 입맛에 잘 안 맞는데요, 그중에서도 먹을만한 거 하나 권해 드립니다.

탕다런(汤达人, 탕달인)이라는 라면인데요, 컵라면과 일반라면으로 출시되어 있습니다.

요것이 묘하게 우리가 일본 가서 먹는 '일본라멘'의 맛이 나는데 거의 비슷합니다. 좀 짭짤하면서 국물이 진한 바로 그 맛이죠. 그래서 우리 입맛에는 잘 맞습니다. 제 딸아이의 최애 라면이죠. 혹시라도 중국에서 입맛이 맞지 않을 경우 권해드립니다. 

먹으라는 숙소 아침식사는 안 하고 방에 들어와서 컵라면을 먹는 딸아이, 우측은 탕달인 제품사진


이렇게 짧은 시간이었지만 송반고성에서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두 편의 글로 정리한 내용이라 앞의 내용을 보시면 조금 더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래에 링크 달아 놓습니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우린 어제 늦게 찾았던 모우니고우를 다시 방문합니다.

이곳은 정말 멋졌습니다. 

모우니고우(牟尼沟,무니구)풍경구에 대한 이야기는 이곳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이날 기나긴 자동차 여정이 시작됩니다. 

이곳이 우리가 여행했던 가장 높은 곳이었고, 아래로 흐르는 강을 따라서 나머지 일정을 소화하러 향합니다.

올라올 때와는 다른 노선으로 움직였더니 좁은 꼬불꼬불한 도로에 차량은 많고, 특히나 대형 트럭들이 이런 도로들을 막고 가는 바람에 조금 속도를 높이고자 운전 스킬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죠. 


이런 이야기와 함께 청두라는 도시가 어떻게 이렇게 번성하게 되었는지 그 근원을 알 수 있는 이야기가 곧 펼쳐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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