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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쏟기 Oct 09. 2024

'녹색모자'의 의미

중국친구에겐 녹색모자를 선물하면 안 되는 이유

여행 유튜버의 영상을 보다가 중국인에게 녹색모자를 선물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순간... 아 저건 실례인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행히 중국인은 중국문화를 잘 모르는 이방인의 호의에 웃으면서 즐겁게 받아들이더군요.


왜 중국인에게 녹색모자를 선물하면 안 될까요?


중국에서 좀 살다 보면 이 녹색모자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됩니다.

왜 녹색모자가 중국인들에게 금기가 되었는지 알아볼까 합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녹색은 종종 천박함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은 예부터 홍색, 황색, 남색, 흑색, 백색의 다섯 가지 '원색'을 '정색正色'이라고 불렀고 높은 지위를 주었습니다. 이에 따라서 의복의 색은 이와 같은 인식에 따라서 분류되었죠. 고대인들은 녹색 자체가 노란색과 파란색으로 구성되어 있는 중간색이었기에 원색을 중시하고 이차색을 경멸하는 문화에 의해 녹색을 부정적 의미를 두는 색으로 여겼습니다.  


《诗经·邶风·绿衣》“绿衣黄裳,心之忧矣”

《시경북풍녹색옷》에서는 "녹색 옷과 노란색 옷은 마음을 괴롭게 한다."라고 적었음.


예를 들어 당나라 관리들은 잘못을 저지른 관료들을 처벌하기 위해 사형하기 전 녹색두건을 씌웠고, 명나라에게선 죄인은 녹색 두건과 녹색 옷을 입도록 규정하였습니다. 또한 원나라땐 매춘에 종사하는 여성에겐 보라색 옷을 입도록 요구했고, 매춘 남성들에겐 녹색 터번을 두르게 하여 일반인과 구분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고대 중국에서부터 중국인들에게 녹색모자에 대해 비하적인 의미를 갖게 만들었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녹색 모자의 의미는 점차 배우자(아내 또는 남편)의 외도, 즉 짝이 바람을 피우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이 의미는 특히 현대 중국어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매우 모역적인 색채가 강합니다. 

이와 관련된 스토리를 짧게나마 소개하면, 예전에 옷을 파는 상인과 바람이 여자가 상인과 불륜을 이어가기 위해 남편에게 녹색모자를 씌워 밖으로 장사를 나가게 해서 남편이 위치를 쉽게 알아볼 있게 했다는 거죠. 이를 알고 있는 주변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녹색 모자를 쓴 남편을 조롱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戴绿帽子 따이 뤼마오쯔 (녹색모자를 쓰다)'라는 의미는 현대의 중국인들에게 '배우자 및 애인의 바람'과 같은 부정적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와이프의 외도로 유명해진 중국연예인들을 풍자한 모습 (좌:焦恩俊, 우:王宝强)


중국의 어디선가 녹색모자를 쓰고 다닌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조롱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이렇듯 나라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할 자신들의 금기 문화가 존재합니다. 좋은 의미로 선물을 전달할지라도 이런 선물을 받게 된다면 아마도 상대방은 당황할 듯싶습니다. 가까운 나라인 중국의 문화에 대해 이 정도 지식은 알고 있는 것이 좋을 듯싶네요.




중국에 살다 보니 우리와 비슷한 것도 참 많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자성어나 한자문화권에서 배웠던 많은 고사들이 같은 맥락에서 학습된 것들이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들 문화 속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와 다른 사고방식들을 엿보게 되는 것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럼 녹색모자와 함께 금기시되는 것들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시계'가 있는데요 시계는 중국어로 ‘钟 zhong 쭝'이라고 쓰고 발음하죠. 우리말로 '쫑났다'라는 표현도 있죠? '우리 사이는 쫑났다(끝났다)'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마지막을 알리다' 혹은 '죽음을 알리다'라는 뜻의 "送终 (sòng zhōng)"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시계를 선물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우산이나 신발, 배, 칼이나 가위등의 선물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하지만, 막상 중국에 살아보니 이런 선물들도 친한 사람들끼리는 필요한 것들 잘 포장해서 선물하면 좋아하곤 합니다. 선물은 관계를 대변하는 것이기에 마음을 전달할 수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크게 여의치는 않겠죠. 


하지만, 좀 더 격식 있고 중요한 자리의 선물이라면 중국인의 문화심리를 이해하고 선물하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일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내용들을 좀 알고 있으면 좋겠네요. 이왕 선물할 거 문화적으로 긍정적이면서 발전적인 의미를 가진 선물들이 좋지 않을까요? 


이 포스트를 쓰다 보니 우리는 예전 녹색모자를 많이 쓰고 다녔던 거 같습니다.

새마을운동 모자가 생각나네요. 

이럴 때도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1980년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는 영주시 한 부녀회 회원들의 녹색모자 


그런데, 이렇게 녹색을 천하게 여기던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많이들 보셨겠지만, 중국의 인민복이라고 불리는 옷의 색이 짙은 녹색이죠. 게다가 마오쩌둥이 자주 썼던 모자도 역시 같은 색상이고요. 이 당시의 대부분의 '인민'들은 이 짙은 녹색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이 녹색 인민복은 어쩌면 공산혁명 이후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계급 통일을 이룬 일등공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대 받던 녹색을 당당하게 주체적 위치로 만들었으니깐요.

이렇게 공산혁명 이후 녹색은 모두를 평등하게 만드는 정치적 색상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다양한 색상의 의상을 소비하는 지금 이 시대에는 그런 전체주의적 의복도 없으며 색으로서 계급을 짓는 일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민간에서는 녹색모자의 의미를 두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기도 합니다. 



예전부터 이 녹색모자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다 이번에 갑자기 떠올라 급하게 몇 자 적어봅니다. 


좋은 하루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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