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붓다붓 마을활력소 : 가깝게 다가붙은 모양으로

도시작가 with 공동체공간

by 앤스페이스 NSPACE
내게 서울이라는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생물 같은 이미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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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로 기억되는 곳, 가리봉동

꼬릿하면서도 자극적인 향신료 냄새. 가리봉 시장에 가면 중국 본토 음식들 특유의 냄새가 언저리부터 나기 시작한다. 시장 안에는 오리알, 고수, 건두부, 양고기, 밀전병, 순대, 마라, 쯔란, 육두구 등 중국 음식과 재료들이 늘어서 있다. 상점들에는 한국어보다 중국어로 된 간판들이 더 많이 보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소리에서 중국어와 조선족 동포들의 억양이 자연스럽게 들려온다. 이곳이 대한민국의 대표 차이나타운 가리봉동이다.

가리봉동은 한때 우리나라 봉제, 의류산업의 중심지였다. 196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은 쪽방, 벌집촌에 들어앉아 상상도 못 할 노동시간과 강도를 견디며 대한민국의 산업을 일구어냈다. 한편으로 이곳은 강력한 노동운동의 성지이기도 했다. 소위 학출이라 불리는 대학생 출신 노동자들이 공단에 들어와 노동운동을 조직해나갔고 대한민국의 압축적 성장, 노동자들을 향한 착취에 의문을 품고 제동을 걸었다. 어떻게 보면 그때가 가리봉동이 가장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을 때였다.

가리봉동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 것은 90년대부터였다. 산업구조가 변해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고 구로의 지대도 비싸지면서 과거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가리봉동을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들어온 것은 더 값싼 노동력을 지니고 있던 조선족 동포들이었다. 가리봉동은 집값도 저렴했지만, 인근 남구로역에서 새벽마다 열리는 건설노동자 인력시장이나 강남 식당에 출퇴근 하기에 용이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숨기고 대한민국의 일원으로 살았고 규모가 커지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리봉동은 이때부터 차이나타운의 면모를 갖춰왔고 조선족 동포뿐 아니라 본토 중국인들도 일자리를 찾아 적극적으로 이주를 감행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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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 가운데

다붓다붓 마을활력소는 길게 새우 모양으로 뻗어있는 가리봉동의 가운데 등 쪽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가리봉 시장이 나오고 시장을 지나 더 올라가면 7호선 남구로역이 나온다. 가산디지털단지와 구로디지털단지를 연결하는 디지털단지 오거리 뒤쪽 이면이다. 국가에서는 봉제, 의류산업이 사라진 자리에 디지털단지를 육성했고 가리봉동 자체가 두 디지털단지 사이에 납작하게 끼어 있는 모양새이다. 차이나타운이 가지는 선입견 때문에 가리봉동에는 젊은 사람들이 적고 나이가 많은 원주민들, 일자리를 찾아온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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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붓다붓 마을활력소는 3층 건물이다. 벽은 현대적이지만 특별히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회색이고, 2층을 진한 회색으로 감싸 구별했다. 건물의 외형으로는 인근의 가리봉동 주민센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실제로 기능과 정체성 면에서도 가리봉동 주민센터의 기능을 일부 분담하고 있다. 마을활력소의 1층은 새마을 작은도서관으로 운영되는데 원래는 가리봉동 자치회관에 있던 것을 마을활력소의 개소와 함께 옮겨왔다. (다붓다붓 마을활력소는 18년 11월 21일 열렸다) 2층은 작은 부엌과 테이블이 있는 다목적 공간이고 3층은 회의실이다. 건물 정면기준으로 왼쪽에 층을 오르내리는 계단과 홀, 화장실이 보이고 오른쪽에는 각 층의 용도에 맞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다. 대지는 30평 정도 되지만 계단과 통로, 화장실을 제외하면 각 층의 공간은 20평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건물의 구성으로 보면 1층을 도서관으로 두어 주민들의 접근을 끌어내고 2층과 3층을 주민활동에 사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보인다. 조금 의아한 것은 3층을 회의실로 꾸민 것이다. 1층의 도서관과 2층의 다목적실은 각각의 기능과 의도가 분명한 편이지만 3층의 회의실은 의도가 불분명하다. 3층에는 3개의 테이블과 20개의 좌석, 마이크 시설 등이 되어있는데 주민들을 위한 시설이라기보다는 기관이나 회사에서 주도하는 행사, 회의에 적합해 보인다. 2층의 다목적실도 의자와 테이블이 있고 15명 정도의 인원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3층은 좀 더 주민들을 고려한 편의시설, 문화시설로 구성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DSC02663.JPG 2층 다목적실
DSC02678.JPG 3층 회의실

활력을 위해 필요한 것들

대부분의 마을활력소는 구청에서 시설관리와 예산의 편성 집행 등을 수행하고 운영과 관리는 주민운영협의체에서 맡는다. 민간의 부담을 최소화하고 마을활동에 대한 주민들의 참여와 관심은 높이기 위해서다. 다붓다붓 마을활력소의 운영 또한 가리봉동에 사는 주민들이 맡았다. 운영의 책임을 맡은 이휘진 센터장 역시 가리봉동에서 자동차 대리점을 운영하는 주민이다. 그도 마을활력소의 기획단계에서부터 참여한 사람은 아니다. 관에서 낡은 건물을 매입하여 마을활력소로 개축하는 과정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간사로 활동 중이던 이휘진 센터장에게 제안이 왔다. 그는 자신이 알고 지내던 주민들을 모아 협의체를 만들었다. 현재는 2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다만 협의체라고 하여도 공간 운영을 해나갈 수 있는 폭이 크지는 않다고 했다. 인력과 예산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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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의 도서관


그는 ‘현재 마을활력소를 운영하는 데 가장 큰 문제는 관리인력’이라고 밝혔다. 공간을 운영하고 유지하는 데에는 항시 요구되는 노동력이 존재한다.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내방자에게 안내하고 물품을 구매하고 문을 닫는 일과는 어떤 공간 운영에도 필수적이다. 지금 다붓다붓 마을활력소의 일과는 오직 자원봉사자들의 책임이다. ‘지금 나오는 지원금으로는 소모품만 사도 끝이에요. 매일 해야 할 일이 있고, 다 생업이 있는 사람들인데 누가 쉽게 하겠느냐고요. 오전, 오후 조금씩 시간 내서 최대한 번갈아 가면서 사람들이 나오죠.’ 관에서 관리인력을 파견해주거나 관리인력에 대한 인건비가 지급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공간을 유지해나가는 일만 해도 벅차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관에서 짓고 운영하는 건물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들어와서 막 쓰죠. 어떤 사람들은 화장실만 쓰고 가고요. 결국 누군가 청소는 해야 하는데. 주민들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할 만한 여력이 얼마나 있겠어요.’

예산의 문제도 있다. 마을활력소는 자체적으로 수익을 만들어낼 방법이 없다. 공간 대관도 무료이며 진행되는 프로그램 또한 대부분 무료로 진행된다. 관에서 제공되는 지원금을 아끼거나 주민공모사업에 직접 신청하여 지원금을 받아야 했다.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사비를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마을활력소 개소 후 진행했던 프로그램들도 대부분 운영 주체들이 돈을 모아 진행했다고 했다.

물론 운영 주체인 주민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히 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월 1회 주기로는 한 끼 나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주민센터와 연계하여 40, 50대의 남성 1인 가구 (건설노동자들을 비롯해 혼인을 하지 않은 남성들이 혼자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를 대상으로 하여 집밥을 나눠 먹는 프로그램이었다. 주민협의체와 자원봉사자들이 돈가스, 비빔밥, 백반, 육회비빔밥 등을 준비했다. 처음에는 3명 정도 참여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이제는 10명에서 15명 정도가 참여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구로구의 주민공모사업에 지원해 비누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강사를 초빙해 참가자들과 비누를 만들고 만들어진 비누는 주위 주민들과 나눌 예정이다. 이외에도 매월 운영 회의를 하면서 주민들의 참여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가깝게 다가붙은 모양으로

다붓다붓 마을활력소는 현실적인 문제들로 주민들과 가깝게 운영된다고 보긴 힘들었다. (다붓다붓은 ‘여럿이 다 매우 가깝게 다가붙은 모양’이란 뜻이라고 한다) 앞서 소개했던 프로그램 이외에는 주민들이 쉽게 접근하고 참여할 방법을 찾기 어려웠다. 평일 오후 시간에 인터뷰를 위해 방문했을 때 도서관에는 두 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고 2층 다목적 공간과 3층 회의실에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 평균 방문자는 도서관을 포함해도 20명 안팎이라고 했다. 초기에는 새로 생긴 공간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방문해보는 사람들도 꽤 있었으나 현재는 공간을 탐방하러 오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고 한다.

이휘진 센터장은 ‘이 마을활력소 건물을 사서 꾸미는 비용도 많이 든 거로 알고 있다. 건축이나 외형보다 안에 사람이 중요한 건데’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활동과 교류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공간에 애정을 가지고 상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필수적인 공간관리 노동력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또한 공간 자체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고민이 필요하다. 마을활력소 공간의 외양이나 구성, 운영 등을 봐서도 큰 사업의 테두리 내에서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각 마을의 활력소가 일괄적으로 운영되는 느낌이 강했다. 마을활력소라면 각 마을의 특성과 요건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실제로 마을활력소를 운영하게 될 운영 주체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충분한 고민과 함께 운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의 차이나타운 같은 가리봉동에서 마을활력소는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가? 가리봉동의 주민들은 어떤 생활양식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을 위해서 마을활력소가 어떤 것을 제공해 줄 수 있는가와 같은 생각들이 더 깊게 다뤄지고 공유되어야만 마을활력소의 의미가 살아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마을활력소의 미래와 가능성에는 밝은 면이 있다. 민간에서 동원하기 어려운 행정력과 자본을 관에서 동원하여 공간을 만들고, 운영의 주체를 마을 주민들에게 맡겨본다는 발상은 대한민국의 어떤 도시에서도 추진하기 어려웠다. 내게 서울이라는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생물 같은 이미지가 있다. 항상 이 거대한 생물을 자르고 쪼개서 마을에서 숨 쉬고 있는 작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만들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을 꿈꿨었다. 앞으로 충분한 고민과 의견수렴으로 마을활력소가 작은 숨구멍들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로컬공간기록 프로젝트 도시작가 시즌2, 이인현 작가

본 글은 서울시공동체공간 X NSPACE with 도시작가 프로젝트로 쓰였습니다.



다붓다붓 마을활력소

서울 구로구 디지털로19길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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