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샘누리 : 이웃과의 행복한 삶을 꿈꾸는 마을공방

도시작가 with 공동체공간

by 앤스페이스 NSPACE

이웃과의 행복한 삶을 꿈꾸는 마을공방

꿈샘누리


초등학생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어렸을 적 거주하던 아파트에는 학교 친구 여럿이 살았다. 옆집, 윗집 모두 가족끼리도 친한 ‘이웃’이었다.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배고프면 함께 밥 먹고, 그러다가 늦으면 자고 가기도 하고. 집과 가까운 곳에 하고 싶은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고, 심심할 때마다 옆집, 윗집 초인종을 눌러댔다. 그러다 중학교를 거쳐 대학교에 입학하고, 직업을 갖게 되면서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동네 친구들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웃과의 관계는 점점 희미해져갔고, 동네는 잠만 자는 곳이 됐다.


이웃과 모르고 살아도 큰 불편함은 없지만,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하는 삶에 갈증을 느낀 것은 필자뿐만이 아닌 듯하다. 서울시 곳곳에는 이웃 간에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크고 작은 움직임이 있다. 서울시는 이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여러 사업을 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마을예술창작소’다. 예술 활동으로 동네 친구를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으로, 주민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공간을 가꿔나간다. 필자가 방문했던 곳은 강서구 공항동에 자리한 '꿈샘누리'이다.


빨간 벽돌건물 3층에 자리한 꿈샘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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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아이들의 손길이 묻어있다.

9호선 공항시장 역에서 내려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꿈샘누리'를 찾아갔다. 주변 건물과는 조금 다른 3층짜리 빨간 벽돌 빌라를 만났는데, 건물 외벽에 걸린 ‘꿈샘누리’ 간판을 보고 잘 찾아왔음에 안도했다. 건물 오른 편에는 아이와 주민이 함께 그린 벽화가, 건물 앞에는 화분이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눈사람과 병아리로 추정되는 아기자기한 조형물과 낙서를 발견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공방꿀잼', '공방이닭!' 적혀있는 걸 보니, 아이들 솜씨리라. 아이들에게 꿈샘누리가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어 미소가 절로 나왔다.


계단을 좀 더 오르니, 활짝 열려있는 꿈샘누리의 대문이 보였다. 중문을 열고 들어간 꿈샘누리 내부는 거실, 방 3개, 부엌, 화장실로 이뤄진 여느 가정집의 모습이었다. ‘멋’보다는 ‘생활’에 초점을 맞춘 평범한 모습이지만, 찬찬히 둘러보면 주민들이 정성껏 손으로 만들었을 그림, 손뜨개, 도자기가 곳곳에 놓여있다. 거실에 놓인 커다란 테이블에서 다양한 예술 활동이 벌어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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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풍경이 보이는 창문 앞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테이블에서 그림, 손뜨개, 그릇 등 손 떼 묻은 작품이 탄생한다.

꿈샘누리가 문을 연 것은 2016년이지만, 그보다 4년 전인 2012년부터 다양한 주민모임이 있었다. 아이들을 매개로 엄마끼리 친해졌고 하루는 이 집 가서 떡 만들고 하루는 저 집 가서 고추장 만드는 등 자발적인 모임이 지속됐다. 그러던 중 꿈샘누리 김화경 대표는 구에서 주민모임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효도밥상을 시작하게 됐다. 밥상에 필요한 그릇과 요리를 아이들 손으로 직접 만들어 아빠에게 차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김 대표의 동생이자 도자를 전공한 누리공방 김수경 씨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그릇을 빚었고, 그 위에 아이들이 식자재 구입부터 요리까지 담당한 음식을 담았다. 아빠들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받았을 밥상을 보고 얼마나 감동했을까.


효도밥상을 계기로, 아빠들은 텃밭 모임으로 관계가 이어졌고 가족들끼리도 친해졌다. 효도밥상 활동을 3년 하니, 다른 단체에서 효도밥상의 공동체 활동을 배워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생활미술과 공예를 하는 ‘소드레 팀’이었다. 처음엔 효도밥상에 배우러 왔지만, 어느새 친해져 같이 활동하게 됐다. 그렇게 기존 마을공동체인 효도밥상, 누리공방, 소드래가 ‘꿈샘누리’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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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이 벌어지는 꿈샘누리 테이블.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한 끼를 만드는 ‘힐링테이블’(좌)과 아이들이 도예 활동을 하는 모습(우) (사진제공: 꿈샘누리)

덕분에 다양한 예술 활동이 꿈샘누리에서 벌어진다. 아동미술, 페이퍼아트, 생활공예, 도예, 공유부엌, 식생활 강좌 등이 이곳에서 진행된다. 특히 꿈샘누리의 공유부엌은 남다르다. 요리만 하지 않는다. 음식과 도예, 공예를 엮은 프로그램이 많다. 작년에는 ‘힐링테이블’이라는 혼밥족 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혼밥족이라 해서 1인가구를 뜻하. 엄마들이다.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들은 학교 가서 급식을 하기 때문에 엄마 혼자 집에 남아 식사하는 것이다. 이에 꿈샘누리에서는 혼밥족들이 자신의 소중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열었다. 소드래팀은 바느질을 담당해 테이블보를 함께 만들었고, 누리공방은 그릇 도예를, 효도밥상은 요리를 맡아 혼밥 엄마들이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한 끼를 만들도록 도왔다. 결과가 좋아 안국역에 있는 상생상회에서 시연을 하기도 했다. 올해에는 1인 가구를 위한 부엌 프로그램이 매월 1회 진행되고 있다.

꿈샘누리에는 예정된 프로그램이 없어도 주민들이 거리낌 없이 놀러와 이야기꽃을 피우고 취미생활을 공유한다. ‘꿈이 샘솟는 세상’이라는 꿈샘누리의 뜻에 걸맞게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 모여 하고 싶었던 일을 함께 하고 이뤄간다.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다. 필자가 어렸을 적 심심할 때마다 친구네 집 초인종을 눌렀던 것처럼, 이곳 아이들도 꿈샘누리의 초인종을 누른다. 더우면 옥상에 올라가 물놀이도 하고, 흙도 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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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김 대표의 어머님을 위해 만든 키링. 옥상에는 아이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풀장이 마련돼 있다.

한 번은 아이들에게 꿈샘누리 공간을 빌려달라는 요청이 왔다. 밤새도록 놀고 싶다는 거였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할 건지 직접 기획하고 준비했다. 음식을 싸오고 파자마 파티를 위한 잠옷도 가져왔다. 가방에서 미러볼을 꺼내 춤을 추기도 했다고. 어른들은 아이들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창문에 스크린을 걸었고, 부엌에서는 팝콘을 튀겼다. 사소하지만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응원해주는 마을 주민이 있다는 건 이웃 간의 단절이 심화된 현대사회에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지하 1층에 공간을 마련했는데 주민들의 아지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조그마한 거실과 방 2개가 마련되어 있는데, 한 곳은 영화관 부럽지 않는 스크린과 음향시설을 갖췄다. 이 방에는 LP 플레이어와 LP 판도 있고, 피아노도 있다. 방 전체가 방음처리돼 있어 소음 걱정 없이 맘껏 놀아도 된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엄마 모임부터 아빠 모임까지 이 곳을 찾는다. 영화 보고, 음악 듣고, 피아노 치고, 노래 연습을 하기도 하고, 술판을 벌이기도 한다. 거실에 있는 미니 냉장고에 샴페인부터 와인, 맥주까지 다양한 종류의 술이 한가득인 걸 보니, 여기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꽃이 피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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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아지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지하 1층. 영화감상실과 공방으로 구성돼 있다.

옆방에는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수십 가지의 공방 기구들로 가득하다. 거실에 있는 나무 테이블도 기성품이 아닌 DIY로 탄생했다. 마을에 버려진 가구를 이곳에서 고쳐 재활용하기도 한다고. 지하 1층을 둘러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이 공간을 이용하는 금액은 얼마일까. 김 대표에게 슬쩍 물어보니, 돈은 따로 받지 않는단다. 경제적인 논리보단 커뮤니티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꿈샘누리를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다. 수익보단 이웃과의 행복한 삶에 초점을 맞췄다. 사실 꿈샘누리가 위치한 3층은 김 대표가 거주할 목적으로 얻은 집이다. 하지만 곧 공동체 공간으로 쓰임새를 변경했다. 당시 이웃과 모일만한 마땅한 공간이 없어, 하루는 A 집에서 모이고, 다음날은 B 집 등 여러 집을 돌아다녔기에 모임 공간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침 김대표의 동생 김수경 씨 또한 작업 공간이 필요했다. 이에 자매는 각자 비용을 반반 부담해서 이곳을 모임공간과 공방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세를 놓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모이는 게 즐거우니까. 비용이 부담되더라도 즐겁게 살자”는 마음에서 그랬다고.

꿈샘누리는 처음부터 거창한 비전과 목표, 수익모델을 세우고 공동체 공간을 조성하지 않았다. 엄마끼리 모이던 주민모임이 아빠 모임, 아이들과 함께하는 예술 활동으로 이어졌다. 각자 활동하던 효도밥상, 누리공방, 소드래팀이 ‘꿈샘누리’로 하나가 됐다. 이웃과 함께 모여 재밌게 활동하니, 일이 다양한 형태로 뻗어나가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이다. 지난해에는 서울공동체상 공간부문을 수상했다. 느리지만, 꾸준하고 단단하게 성장하고 있다.


로컬공간기록 프로젝트 도시작가 시즌2, 김아영 작가

본 글은 서울시공동체공간 X NSPACE with 도시작가 프로젝트로 쓰였습니다.



꿈샘누리

서울 강서구 초원로16길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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