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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책방 Jun 17. 2021

자유로운 엄마가 되고 싶어

자유의 맛을 느껴버렸다


자유로운 엄마가 되고 싶어


찰스 스트릭랜드는 런던 증권 중개인 일을 하던 사십 대 남자다. 형편이 넉넉하고 아내와 아이 둘이 있는 가장이지만. 탄탄한 일과 가정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관계까지 버리고 파리로 간다. 부유했던 스트릭랜드는 이제 낡은 호텔에서 지내며 자신의 주변을 전혀 돌보지 않은 채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그가 파리에 머물면서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친구 더크, 굶주림과 병으로 시달리던 때에 물심양면으로 돕고 지원해주었다. 또 아픈 스트릭랜드를 돌보고 그림의 모델이 되어 주기도 하며 그와 사랑에 빠져 남편 더크를 버렸던 블란치는 그의 냉담에 자살을 한다. 스트릭랜드의 무관심은 이들의 관계를 져버리고 망치기도 한다. 그에게 관심사는 오로지 ‘그림’이었다. 그림을 향한 갈망과 열정은 자신의 관계를 모두 끊어내 버리기에 충분했다.



자신이 몸담았던 일터와 가정을 버리고 하고 싶은 것, 그림을 그리겠다고 나선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나는 회사를 그만둔 지 3년 된 육아맘이다. 7년 동안 쉬지 않고 일했던 회사를 미친 입덧으로 퇴사한 후부터 아이를 키우는 지금까지 일터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회사 출근 대신 집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다. 이제 집에서 일한 지 3개월이 되었고, 일을 하면서 육아맘이 아닌 사회인으로 살고 있는 기분을 새로이 느끼는 중이다. 또 시간을 쪼개어 책 읽고 글을 쓰고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지내는 시간은 오전 9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 6시간 동안 나는 내 것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 바빠서 여유가 없을 때는 컵라면이나 냉동밥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는데 그것도 괜찮았다. 회사 다닐 때는 밥 먹을 시간이 없으면 ‘왜 나는 밥 먹을 시간도 없는 것인가, 밥은 먹고 일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한탄하기도 했었는데, 집에서 일할 때는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울 때가 자주 있었다. 밥은 꼭 챙겨 먹는 밥순이인 내가 내 밥에 무관심해지는 순간이다. 회사 다니던 때를 돌이켜보면 나는 회사에 있는 시간을 아까워한 적이 많았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쓰면서 경력은 쌓이고 있지만, 내 시간을 돈으로 받는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면서 원치 않던 관계나 해야 하는 일 외의 다른 잡일에 신경 쓰지 않아서 홀가분하고 길 위에서 쓰는 출퇴근 시간도 육아에 쓸 수 있어 여유가 있다.



다만 침대에 눕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안방 문을 닫아 놓기도 하고 집안일을 하지 않기 위해 집이 어질러져 있어도 눈 꾹 한번 감아버린다. 내 욕구를 스스로 조절해야 하는 단점은 있지만 동시에 타의로 이뤄지는 시간과 묶여있는 관계에는 자유롭기 때문에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는 미장이니 목수니 하는 사람들보다 더 가난하게 살았다. 일은 더 열심히 했다. 대개의 사람들이 생활을 품고 있고 아름답게 해 준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돈에도 무관심했다. 명성도 안중에 없었다. 우리들 같으면 대체로 세상일에 적당히 타협하고 말지만 그는 그러한 유혹에 조금도 꺾이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그를 칭찬할 수는 없다. 그는 그런 유혹조차 느끼지 못했다. 타협이란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파리에 살면서도 그는 테배 사막에 사는 은자보다 더 고독했다. 그가 친구들에게 바란 것은 오직 자기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것에 온 마음을 쏟아 부었다.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까지 희생시켰다(자기희생쯤이야 많은 사람들이 하지만). 그에게는 비전이 있었다. (p.221)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육아맘이란 말은 나를 규정하는 정체성이 되었다. 지금의 나는 on/off 스위치를 누르는 것처럼 나는 육아맘과 그 외 여러 일을 하는 ‘나’로 정체성을 옮겨 다니며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다. 보다 더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일 하는 방식을 바꾸었고 시간을 알뜰살뜰하게 쓰고 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맞춰 살아가고 있다. 확실히 스트릭랜드처럼 현실을 거부하고 내면의 충동을 따라 살기는 어렵다. 나는 일터와 가정을 버리지 않을 것이고 가난하고 은자처럼 살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가 원했던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자유와 열정’이 무엇인지 이제 알 것 같다.



아이를 재우고 밤에 다시 서재로 들와서 작업할 준비를 한다. 낮에 못다 한 일을 할 때도 있고 책 읽고 글을 쓰기도 한다. 의자에 앉아서 쉼 없이 하고 있다 보면 새벽 3시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어떤 날은 아이를 재우면서 나도 같이 잠들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떠서 시계를 보면 새벽 2~3시가 되어 있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 서재로 들어가 할 일들을 한다. 고요한 시간 속에 내가 스며들게 해서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해 낸다. 회사를 다녔으면 워라벨을 외치며 자유로울 시간을 필사적으로 찾았을 텐데 지금은 워라벨에는 안중에도 없고 일상에서 육아하고 일도 하고 글도 쓰고 다음을 계획하기도 한다.



남편은 나에게 몸을 혹사시키지 말라고 한다. 강철체력이 아니기 때문에 피곤해서 몸이 늘어지거나 입안에 염증이 생겨 밥을 먹기 힘든 날도 있지만 그래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다. 자유의 맛을 느낀 이상 나는 나를 일정한 시간 속에 묶어 두었던 회사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보다 더 자유롭게 살기 위해 시간을 아끼고 쪼개어 원하는 곳에 투자하고 있다. 나도 내가 얼마큼 잘할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스트릭랜드의 끝을 알 수 없는 열정의 길을 따라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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