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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책방 May 14. 2021

그가 진심으로 잘 지내길 바란다


편혜영 작가의 소설 <플리즈 콜 미> 에는 중년의 여인 미조와 미조의 딸 그리고 사위, 세 사람이 나온다.      

미조의 남편은 건강하고 건실한 직장에 다녀서 넉넉하지는 않아도 딸을 지원하고 여행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퇴직한 후 벌인 일이 잘 되지 않아 경제적 문제가 생기고 건강까지 나빠졌다. 그러던 중 남편은 연락도 없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미조에게 전화를 어렵사리 걸어 강원도 ‘양양’이라고 했다. 미조는 경찰에게 남편의 실종 신고를 했다. 그리고 치매이고 지적 수준이 높다고 경찰에게 말했지만, 경찰은 실종 원인을 바로 납득했다. 미조는 경찰이 만들어준 실종 전단지를 배포를 하는 노력 하기는 했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남편에게 걸려온 전화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아무도 미조가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이 기억을 잃었을지언정 자신의 인지능력이 돌아오면 집으로 올 줄 알았지만, 결국 오지 않는다.



  

미조의 딸은 힘들어하고 있는 엄마에게 자신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미조는 딸과 사위가 살고 있는 외국의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다. 미조가 혼자 있을 때 전화가 걸려왔다. ‘플리즈 콜미’ 자동응답기 너머로 걸려온 목소리는 남편인 듯 하지만 사위에게 걸려온 독촉 전화였다. 사위의 오랜 실직과 함께 밀린 집세, 딸의 초과근무와 주말출근하는 것을 보며 미조는 딸의 사정이 좋지 않음을 알게 된다.      



미조는 모른 척했을 뿐이다. 남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도울 방법이 없으니 괜찮겠거니 생각해버린 것이다. (p.138) 

<플리즈 콜미> 편혜영 지음      



 남편이 사라져 마음이 힘들어도 미조는 적극적으로 찾지 않는다. 미조의 딸은 유학 중에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기로 하며 학업을 포기한다. 미조가 학비를 대줄 형편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딸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게 권할 수도 없었다. 미조는 그들의 상황을 도울 방법이 없기 때문에 힘들어도 모른척하고 있을 뿐이다.      



작년 내가 믿고 따르던 분의 안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엄청난 사업을 하게 되어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는 것을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다음 해에는 그 사업 자체가 사기였다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분은 내가 아는 사람들을 포함한 여러 지인들에게 사업에 관한 투자를 받았고 그 투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했었는데 뉴스 기사에 날 만큼 큰 사기에 휘말리게 된 것이었다. 수십억이 넘는 돈을 사기에 휘말려 회수는커녕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그분의 둘째 아이는 태어났다. 그 많은 돈을 어떻게 갚아야 하는 건지 상상만 해도 앞이 깜깜해졌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라서 가슴이 답답해져 숨이 차올랐다.     


  

수년 전부터 자연스레 연락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이 힘든 소식을 듣고도 섣불리 나설 수 없어서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어떻게 해야 해? 가만히 있어야 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그들은 연락하지 않는 게 낫겠다고 했다. 상대방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굳이 나서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분에게는 경제적인 도움이 절실할 텐데, 네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겠냐’고 주변에선 나에게 되물었다.     



정말 경제적인 도움만 있으면 괜찮을까. 어떤 큰 어려움에 휘말렸을 때 함께 있는 것만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응어리는 조금이나마 녹아 힘듦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게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미약하지만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었던 마음만 붙잡고 며칠 내내 마음이 아파서 잠 못 이루고 있었다.      



누군가 가까이 있기만 해도 충분할 때가 있다는 걸, 미조에게 딸이 그런 존재라는 걸 딸은 모르는 것 같았다. (p.126)

<플리즈 콜미> 편혜영 지음      



우리는 회생하기 힘든 상황이 부닥치면 주변에 어떤 도움을 요청하기도 어렵고 이 세상 밖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하기만 하다면, 이런 상황을 주변 가까운 사람에게 일어난다면 나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앞에서 말한 대로 그분의 소식을 듣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었지만 나는 지금까지 연락 한번 하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서성이고 있다. 연락하지 말라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와 별개로 나는 그분에게 내가 어떤 힘이 될 수 있을지 어렵기만 했다. 내 존재가 그분에게 힘이 되었으면 하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1g의 용기조차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했지만 도움 요청 없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에 나는 그의 좋은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불필요한 도움과 참견은 오히려 불쾌한 감정의 불씨만 만들 수 있다.      



작가는 미조의 가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작은 언지도 없다. 서로 모른척하며 직접적인 소통을 하지 않은 채, 끝났다. 하지만 나는 미조와 미조의 식구들, 모두 자신의 역할을 다 하며 일상을 잘 살아내길 바란다. 당장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도 서로 힘듦을 풀어내고, 그들이 함께하고 있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그분에게서 좋은 소식이 들리길 기다린다. 상황이 나아져 잘 해결되고 있기를, 그가 잘 지내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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