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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책방 Mar 13. 2021

나는 그녀를 응원한다

나는 그녀를 응원한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김이설. 작가정신



오래된 목련빌라에 화자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똑똑하고 야무진 동생과 달리 화자는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해 본 적이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랬던 그녀에게 처음으로 ‘내 안에서 자라고 있는 걸’ 발견하고 동생에게 털어놓았다. 대체 무엇이 그토록 하고 싶었던 걸까, 창피한 일을 고백하듯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시 쓰기’였다. 하지만 3년 전부터 동생이 가정폭력을 피해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돌아오면서 화자는 시를 쓸 수 없게 되었다. 밤낮 없이 일을 하는 동생을 대신해 세 살 된 큰아이와 백일 지난 둘째를 화자는 맡아 키우며 집안일까지 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지쳐 쓰러져 잠들기 바쁜 화자, 조금이라도 쓰기 위해 빈 화면이라도 보거나 내 글은 쓰지 못한 채 필사노트만 채워가는 밤이 계속 되었다.



아무도 화자의 가사노동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경제적인 능력 없이 집에 있는 그녀가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치부되었다. 엄마는 집안일을 숙제 내듯이 하나씩 던지고 출근을 했고, 동생은 두 아이를 돌보지 않아 아이들의 사소한 것부터 어린이집에서의 결정해야 할 일들까지 이모인 화자가 해야 했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주저앉지 마. 엄마가 하란 대로 하지도 말고.”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김이설, 작가정신 (117쪽)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이 말이 화자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집을 나왔다. 시를 쓰기 위한 나만의 방이 필요했다. 더 이상 식구들과 함께 할 수 없어 화자는 독립의 길 위에 올라섰다.



화자는 가족들과 함께 사는 곳에서 ‘시를 쓰고 싶은 나만의 것’을 찾았지만 진전은 없었다. 결국 나만의 것을 하려면 옥죄어 오는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만약 동생의 아이를 돌보지 않았더라면, 집안일을 도맡아 하지 않았더라면, 화자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등단해서 잘나가는 시인으로 살고 있었을까? 시간이 극도로 부족하고 꺼져가는 체력을 이기지 못해 쓰러지듯이 자버리는 화자, 그렇기에 더욱 시를 쓰고 싶고 써야한다는 욕구가 강해져 독립으로 이어졌으리라 생각해본다.



책의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육아하는 내 모습을 투영해서 읽고 있었다. 한참 글쓰기에 물이 올라 SNS에 글 연재를 하던 중에 출산을 하고 집에 왔다. 육아하면서 틈나면 읽고 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집에 오자마자 시작된 남편의 장기간 지방 출장에 나는 쓰는 것에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돌보며 내 것을 한다는 건 엄청난 시간과 여유 또 용기까지 요하는 일이었다. 한 줄 쓰지 못하고 필사만이라도 하는 화자의 마음이 곧 내 마음과 다를 바 없어 계속 마음이 아려왔다.



출산을 기다리며 쉬엄쉬엄 글쓰기를 했던 ‘나’와 지금의 짧은 시간 속에서 지친 심신을 일깨워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하는 ‘나’ 사이엔 엄청난 간극이 있다. 제한이 많은 상황일수록 내 것을 꼭 해야 한다는 욕구가 더욱 강해지기 마련이다. 밤이 되면 아이를 재우고 나는 책상 앞으로 돌아온다. 대체 밤마다 무엇이 쓰고 싶어서 다 뜨지도 못한 눈으로 빈 화면을 멍하게 보고 있는 걸까. 졸린 눈을 비비며 읽고 내 안에 떠돌아다니는 말들을 주워 담아 글로 정리하며 짧은 시간이라도 오직 나를 위해 쓴다. 글 쓸 여유가 없는 날에는 틈틈이 책의 몇 문장이라도 뜯어가며 읽어냈다. 그렇게 쌓인 밑줄과 메모를 모아 천천히 내 글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렇게라도 해야 살 것 같았다. 읽고 쓰는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하게 마음을 당기는 동아줄이었다. 이 동아줄을 놓으면 출산 전 내 모습을 잃어버릴 것만 같아, 꼭 붙들고 있다.



독립의 길 위에 선 화자, 결국 그녀는 자신의 것을 찾았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집안에서 그림자 같이 육아와 집안일 하느라 자신의 잃어버렸던 사랑을 다시 되찾았고, 시를 쓰기 위한 공간도 생겼다. 3년 넘게 하지 못한 것들하고 쓰고 싶었던 마음껏 필사하고 시 쓸 수 있기를, 그리고 개미처럼 부지런히 읽고 쓰는 나에게도 온 마음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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