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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책방 Jan 04. 2021

내가 품지 못한 사람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를 읽고


<언니, 나의 작은, 순애언니>를 읽고

('쇼코의 미소' 중 단편소설. 최은영 지음)



순애이모는 전쟁 통에 부모를 잃고 함께 살던 할머니도 돌아가셨다. 나의 할머니를 도와주러 왔던 순애이모, 엄마네 가족들은 모두 이모에게 차가웠지만 엄마와 이모, 둘 사이는 깊었다. 순애이모는 결혼을 하고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하지만 이모부는 공산주의 책 읽고 라디오로 북쪽 방송 들었다는 명목으로 감옥에 가게 되었다. 엄마는 형부처럼 억울하게 감옥가게 된 사람들의 오해를 풀어주고자 온갖 노력을 했다. 청와대에 편지를 쓰기도 하고 피고인들을 위한 기도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또 선전문도 사람들에게 선전문을 나눠주기도 했다. 순애이모와 이모부를 위해 시작한 노력들은 결국 헛수고로 돌아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교류는 뜸해졌다. 통화를 하며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아도 이모는 엄마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생활을 이야기 하지 못했고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힘들게 살면서도 태연한 척 하는 이모가 불편해지면서 가족 같았던 둘 사이도 이제 멀어져갔다.



이모부가 출소하고 엄마는 이모네 가족들을 한번 만난 적이 있었다. 몸이 망가진 채 출소한 형부, 이모의 딸아이 그리고 예전의 모습과 달라진 이모. 그들은 삶이 망가진 채 바닥이 무너질 듯이 흔들리는 집에서 살고 있었다. 엄마는 그곳에서 벗어나 집으로 가고 싶었다.



순애 언니, 나는 언니가 싫고, 언니의 집이 싫고, 언니의 모든 것들이 싫어. (p.120)



엄마와 이모는 서로 관계없는 사이로 살아왔다. 종종 이모가 생각났어도 엄마는 연락하지 않았다.


엄마인 혜옥과 순애 이모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는 나의 오래된 친구를 떠올리고 있었다. 중, 고등학교를 같은 곳에서 졸업하고 우린 자주 붙어 다녔다. 별 이야기 하지 않아도 우린 ‘깔깔깔’ 웃음이 가득했고 서로의 고민을 서슴없이 들어주었던 오래된 진한 친구였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지역의 대학을 가게 되면서 사는 곳이 멀어지고 전화와 문자로만 연락을 하고 지내게 되었다. 한창 대학생활을 하고 있던 날, 친구는 연애의 실패로 인해 자존감이 점차 낮아져 우울증을 앓게 되었다. 우울증 탓인지 도돌이표처럼 끝나지 않는 대화를 하며 통화 할 때마다 뜨거워진 전화를 붙잡고 이야기를 꼭꼭 다 들어주었다. 몇 명되지 않는 내 소중한 친구이기에 난 꼭 안아주고 ‘넌 잘 살고 있어’라고 응원을 해주고 싶었다. 그 친구는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남자친구보다 더 소중한 존재라고 했고 친언니보다 더 가족같이 느껴진다고 했었다. 옆에 없어도 전화상으로라도 손을 꼭 잡아주고 싶었지만 사회 초년생에 들어서면서 삶이 녹록치 않음을 처절하게 깨닫고 있었던 때라, 내 힘듦에 사무쳐 잡고 있던 친구의 손을 점점 놓아가고 있었다. 현장에서 바쁘게 검토하고 있을 때 전화 오면 ‘나 바빠서 나중에 전화할게’ 라고 끊어버리고는 집에 와서 친구 생각을 하지 못하고 골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전화를 받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통화를 하게 되면 친구의 힘듦을 나는 다 받아주기 어려워, ‘나도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라고 응수하며 모두 다 쉽게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친구의 이야기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가 왜 그리도 어려웠는지 엄마는 생각한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p.115)



난 가끔 떠올린다. 학교 마치고 친구와 팔짱을 끼고 다니며 떡볶이 먹으러 다녔던 그 시간을, 쉬는 시간만 되면 만나서 목소리 크게 웃고 떠들던 날을. 서로의 애칭을 큰 소리로 부르던 날들을. 친구에게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떠올려 보려 하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어떤 말로 내가 친구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내 이기심에 친구를 밀어낸 건 아닐까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아직도 친구의 연락처를 알고 있지만 전화나 문자 한 통 보내려 하면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는다. 엄마가 이모를 떠올리며 연락을 해봐야겠다고 했지만 실행한 적이 없던 것처럼, 나도 그랬다.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우리, 서로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길 가다가 우연히 라도 마주치면 좋겠다. 그땐 친구를 꼭 안아주고 싶다.



순애언니를 읽으며 나는 내가 품지 못한 친구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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