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서 살든 내 집에서 나는 자란다
독립하기로 했습니다
책 읽으며 내가 살았던 집을 하나하나 꺼내보는 건 처음이었다.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나는 스무살부터 지금까지 살았던 집이 10군데가 넘는다. 세어보니 15집이었다. 대학 입학과 함께 나는 새로운 집에 살게 되었다. 어른이 되고 결혼하기 전까지, 나는 무수히 많은 집에서 살았다. 가족의 품에서 익숙한 곳에서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친구와 함께 지내다가 완전히 나 혼자가 되기도 했다. 내가 살았던 곳을 하나씩 떠올리는 건 나의 독립의 과정을 짚어보는 것이었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는 소설가 하재영의 집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어린 때부터 지금 살고 있는 집까지, 자신이 살았던 집에서 일어난 일이나 했던 생각이 잘 담겨있다. 집을 설계하고 공간을 만드는 일을 했던 나에게는 집에 대한 책이라고 하면 보통 인테리어나 건축서적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 공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상상해보는 일을 많이 했었지, 내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고민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것도 내 가족이 함께 사는 집이 생긴 후에야 공간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재영 작가는 ‘집에 대해 쓰는 것은 그 집에 다시 살아보는 일이었습니다. 행복했던 집도, 그렇지 않았던 집도 다시 살아내고 나니 비로소 지금의 집을, 현재의 나를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라고 독자들에게 말한다. 내가 지냈던 이 많은 집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나의 어떤 모습이 만들어진 걸까, 책을 읽으며 내내 질문하고 답하고 있었다.
독립의 첫날은 신입생인 나의 기숙사 2층 침대에서 시작되었다. 그날 밤, 베개가 다 젖을 정도로 소리죽여 울었다. 새로운 곳에서 산다는 것만으로도 설레었는데, 막상 부모님과 떨어져보니 겁나고 두려웠다. 5년 후, 나는 다시 설레고도 두려운 마음으로 배갯잇을 눈물로 적신 첫 밤을 맞이했다. 혼자 잘 할 수 있을까. 한국을 떠나 언어도 다른 곳에서 또 다시 독립의 길 위에 선 나는, 한가득 걱정 때문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날이었다. 익숙한 곳에서 나와 새로운 곳에 정착하는 첫 날에는 눈물이 가장 먼저 앞섰다.
아빠는 말했다. “집도 생명체와 같아서 아끼고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 그에게 집은 무엇이었을까? 집을 가지고 그 집을 잃고 이후로도 오랫동안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 그 세월은 무엇이었을까? 북성로 집이나 명문 빌라처럼 가족들이 완전하게 우리 집이라 여겼던 집들뿐 아니라, 이후에 살았던 초라하고 볼품없는 집들조차 아빠는 소중히 대했다. 생명체처럼 우리와 함께하는 존재로서. 어디든 우리 집이 되었을 때 아빠는 바로 거기에서 다시 시작했다. 지금 내가 여기에서 내 삶의 새로운 시절을 시작하는 것처럼.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더 멀리 가기를 꿈꾸는 것처럼. (p.197)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하재영 지음
부모님과 함께 지내다가 성인이 됨과 동시에 시작되었던 독립, 즐거웠던 날도 많았지만 부모님이 옆에 없다는 사실과 함께 몰려드는 두려움, 타국에서 홀로 맞이하던 수많은 밤에 ‘내일’을 생각하며 걱정하던 날, 혼자가 되어 내 짐만 남아 있는 걸 보며 울적했던 날, 나는 내가 지내는 공간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다시 우뚝 일어서야 했다. 살려면 어떻게든 일어서야 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나갔다.
한참 회사생활 하던 때 작은 집에서 난 혼자 지내기 시작했다. 양재천집, 사람들과의 관계와 일이 지독시리 힘들 때, 앞으로 어떻게 살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았던 곳이었다. 눈뜨면 출근하고 집에 오면 잠들기 바빴던 날이었지만 점점 양재천을 산책하며 동네가 좋아지기 시작했고 내 생활도 같이 아주 천천히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내가 부끄러워질 것 같았고, 돈을 아껴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절박함으로 살았었다. 내가 살았던 집중에 가장 작았었다.
“영미가 토끼집에 산다”
어쩌다가 내 양재천 집에 할머니께서 오셨는데, 그때 한숨을 내쉬며 하셨던 말씀이었다.
그 후 잠실로 이사하면서 나는 혼자인 삶을 만족하며 즐기기 시작했다. 슬슬 회사 생활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 밖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더 넓은 세상을 알아가게 되었다. 집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면 마음이 안온해짐을 느꼈다. 내 것들이 집합되어 있는 내 집, 집에서 내 것을 하고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한층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퇴근하고 밤마다 책 읽거나 다이어리, 일기를 쓰며 지내는 시간이 행복했다. 자기 전에는 거의 매일 방바닥을 닦았다. 물건들의 자리도 명확해지고 책장의 책도 많이 늘어났다. 그 전에는 계속 이사 다녀야 할지도 모른단 생각에 ‘임시의 삶’을 살고 있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살림살이 중에서 작은 것도 여러 번 고민하며 샀던 날이 대부분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 밖에서의 시간이 길고 피로해지면 금방 내 집이 그립고 보고 싶었다. 주말이나 명절 때 고향집에 가 있을 때에도 잠실 내 집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걸 보면 난 혼자인 시간, 독립된 내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고 좋아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러다 결혼 하면서 나는 잠실집과 안녕, 작별을 고하고 떠나왔다. 마지막으로 문을 닫을 때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게 해 줬던 복된 내 집 그리고 오직 내 것으로 채우고 ‘나 혼자’ 존재했던 곳이기에 앞으로 더 그리워질지도 모른단 생각을 하면서 문을 닫았다.
내가 자기만의 방을 소망할 때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나의 고유함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p.135)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하재영 지음
결혼하고 나니 내 공간 하나 갖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신혼 첫 집에서 두 번째 집으로 이사해야 할 때 집을 둘러보며 다짐 했던 것이 있었다.
‘공간 하나하나는 작을지라도 내 서재는 꼭 사수하자. 내 책장과 책상을 넣을 수 있는 곳이 있어야한다.’
이 다짐은 아기를 낳고 두 돌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지켜지고 있다. 결혼 전에 혼자 보냈던 시간이 길었으니까, 혼자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소중히 대하고 스스로 잘 지켜내고 있었으니까, 내 서재에서 책 읽고 노트에 끼적이기라도 하며 마음을 돌보고 있었으니까, 내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집에서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하며 스스로를 지키고 단단하게 만들어 자립해 나가고 있었다. 나에게 독립은 나를 위한 공간이자 내 것을 하기 위한 시간 여유였다. 매번 익숙한 공간에서 낯선 곳으로 정착하며 스스로 설 수 있는 법을 알아갔다. 아이가 잠든 밤이나 새벽마다 내 책상이 있는 서재에서 책 읽고 글을 쓰며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고 있다. 내가 사는 집안의 가장 독립된 공간인 서재에서 에너지를 얻으며 나를 지켜낸 다음, 가정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