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매일 행복할 수는 없었다. 분명 꿈꿔왔던 일을 시작했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존재했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 속에서 종종 나는 스스로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에 빠지곤 했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니 정작 나는 그 속에서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힘들었던 그 시기에 나를 붙들어준 것은 쓰는 습관이었다. 바로 블로그였다.
사실 블로그를 시작한 계기는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까워, 조금이라도 흔적을 남겨보고 싶었던 마음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이 작은 행동이 내가 힘들 때마다 가장 든든히 나를 지켜주는 존재가 될 줄은 몰랐다.
처음 남겼던 건 회사 근처에서 발견한 예쁜 카페나, 우연히 마주친 맑은 하늘, 주말에 잠깐 나들이하며 찍은 사진들이었다.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것도, 화려한 일상이 담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사진 몇 장과 짧은 글 한두 문장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하루의 작은 순간들을 모으다 보니 내 삶이 점점 선명해졌다. 글을 남기는 과정에서 하루를 다시 바라보게 됐다. 아무리 지치고 힘든 날이라도 이렇게 되짚어보면 생각보다 괜찮은 순간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사진과 문장 속 작은 즐거움이 나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오늘도, 넌 이렇게 살아냈잖아.”
기록은 내 하루를 ‘지킨다’는 느낌을 주었다. 매일 조금씩 남겨지는 이야기들이 쌓이자 나는 점점 더 견딜 힘을 얻었다. 바쁘고 늦게 퇴근해도 하루를 남기지 않으면 내 삶이 증발해 버리는 것만 같아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몇 줄의 글을 적곤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글 쓰기는 내가 지쳐도 포기할 수 없는 일상이 되었다.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튼튼한 기둥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으면 하루를 다시 정리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회사에서의 번잡함과 전혀 다른 세계. 이 순간만큼은 업무에 시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을 사랑하고 사진과 책, 커피를 좋아하는 내가 되었다.
주말이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이따금 다녔던 나들이에서 느꼈던 감정들, 책 읽으며 깨달은 것, 영화를 보며 느낀 것, 친구와 나눈 대화들을 하나둘 써 내려갔다. 그렇게 작은 이야기들이 모이자 내 삶도 조금씩 풍성해졌다. 글을 남기다 보면 어느새 “아,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실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내 글들이 차곡차곡 쌓인 끝에, 뜻밖의 선물도 찾아왔다. 누군가 내 블로그에 남긴 짧은 댓글이었다.
“미아님의 글을 읽고 나도 오늘을 돌아보게 됐어요. 고마워요.”
내 삶의 자잘한 조각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꽤 놀라운 경험이었다. 나는 단지 내 하루를 지키려 글을 썼을 뿐인데 그 작은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하루에도 조그마한 빛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니 마음 한편이 뭉클해졌다.
그 이후로 나는 더 열심히 기록을 이어갔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매일 조금씩 내 마음과 생각을 적어보는 동안 나는 놀랍게도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오늘도 정신없이 지나갔네’ 하고 끝날 뻔했던 하루가 글을 쓰면서 오롯이 내 것이 되었다. 그 과정을 거치며 나는 나와 다시 친해졌다.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잘하기 위해선 내 마음부터 돌봐야 한다는 사실도 터득했다. 일과 떨어진 나를 지키지 못한다면 결국 일이든 뭐든 버티지 못한다는 걸 배운 거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이런 습관을 놓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며 때로는 힘든 날들도 맞이하지만 적어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 나는 내가 쓴 글을 통해 좀 더 쉽게 회복할 수 있다는 거다. 하루가 너무 힘들면 글로 풀어내고 행복한 날이라면 그 행복을 더 오래 간직하기 위해 이야기를 남긴다.
사라지는 나를 기록이 구해주었다. 단단하게 붙잡아 주었다. 만약 기록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회사와 업무 사이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글을 남기는 건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동력이 됐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좋아하는 일이 나를 지치게 만들 때마다, 글을 쓰는 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렇게 한 줄 한 줄을 남기며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 순간만큼은 분명히 ‘나’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더 이상 사라지지 않는다.
스스로 적어둔 작은 이야기들이, 매일의 나를 붙잡아주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