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새벽.
처음으로 수요일 아침 7시의 책모임에 나갔던 날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전날 밤, 회사에서 늦게까지 야근하고 택시타고 집에 갔었다. 겨우 몇 시간 눈을 붙였을까. 알람이 울리자마자 뛰듯이 일어났다. 솔직히 몸은 한없이 무거웠지만, 묘한 기대감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매일 같은 사람, 같은 이야기, 같은 고민으로 채워진 내 일상에 숨 막혔던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갈망했었다. 서울이 고향도 아니고, 타지에서 온 내가 어떻게 여기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가며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검색을 했다. 평소에 책을 좋아하니, 책모임으로 검색하기도 하고 지금과는 완전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여러 키워드로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이른 아침의 책모임에 마음을 빼앗겨 있었다. 하루하루 무력감과 지침에 빠져 있던 나에게, 아침 7시에 책을 읽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했고, 마음을 사로잡았다.
처음 책모임 장소인 삼성동의 맥도날드에 들어섰을 때, 난 무척 낯설었다. 책을 좋아했지만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 나누는 것은 어색한 일이었다. 하지만 모임을 위해 조금씩 모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인사를 나누자 이내 긴장감이 풀렸다.
첫 모임에서 나눈 대화는 예상과 달리 편안했다. 모두 직업도, 나이도, 살아온 궤적도 전부 달랐지만 책을 이야기할 때만큼은 마치 오래된 친구들 같았다. 누군가는 책 속의 한 문장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여행 에세이를 읽으며 자기를 돌아보게 되었다고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아, 이런 대화를 나누고 싶었구나.”
나는 회사를 다니며 늘 같은 사람들을 만났고, 업무에 치이면서 똑같은 대화와 고민을 반복했다. 언제부턴가 내 삶의 울타리 안에서 더는 다른 세상을 꿈꾸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책모임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내게 보여줬다.
일주일에 단 하루, 그것도 아침에 1시간 남짓 만나는 그 시간은 내 일상을 조금씩 바꿔놓기 시작했다. 잦은 야근과 철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요일 아침 책모임에 가는 일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철야하며 한 숨도 안자고 책모임까지 참석하고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잘 때도 있었지만, 이 시간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 아침이 없었다면, 나는 더 빨리 지쳐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아침 7시부터 8시까지 했던 우리들의 책 이야기. 모임이 끝나면 늘 다시 회사로 뛰어가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모임을 마치고 나면 하루가 가벼웠다. 피곤한 몸과는 별개로 내 마음속에는 늘 작은 활력이 샘솟았다. 책 한 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일과 상관없는 내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그런 시간들 덕분에 나는 점점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주변에서 내게 물었다.
“그렇게 바쁘고 힘든데 어떻게 매주 책모임에 갈 수 있어?”
사실 체력이나 시간이 부족한 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다시 지치고 싶지 않았고, 회사 일과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나 자신을 되찾고 싶었다. 모임을 통해 다른 삶을 만나는 것이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정말 다양했다. 금융권에서 일하는 분, 병원에서 일하는 분,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는 분, 유아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 등.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과의 만남은 내 시야를 넓혀줬고,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알려주었다. 그들이 책에서 발견한 인생의 메시지를 공유하는 순간마다 나는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연습을 했다.
이전까지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 다 괜찮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회사의 업무와 일상에 짓눌린 채로 조금씩 내가 사라지고 있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데 책모임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만나고 책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변화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 모임을 찾았지만, 어느 순간 책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삶의 새로운 축으로 자리 잡았다. 회사와 업무 속에서 흐릿해진 내 존재가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다시 분명해졌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조금씩 더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책이,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구했다. 책을 통해 만난 이들은 내게 말했다.
“삶엔 이런 결도 있고, 저런 결도 있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어.”
그 덕분에 나는 똑같은 고민과 생각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 아침의 한 시간이 내 일상을 버틸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하루 이틀을 견디게 만드는 게 아니라, 더 멀리까지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책모임은 내 삶에 없어선 안 될 소중한 루틴이 되었고, 그 짧은 시간이 내 인생을 즐겁게 바꾸어 주었다.
수요일 아침 7시. 책으로 여는 새벽.
작은 선택이 내 삶을 꽤 크게 크게 변화시켰다.
책이 나를 구했다. 그리고 함께 했던 사람들이 나를 살리고, 그때 받은 에너지로 한 주를 즐겁게 살아낼 수 있었다. 바쁘고 힘든 일상을 살아가도, 새로운 가능성과 감각을 잃지 않도록 붙잡아준 것, 그게 바로 수요일 아침 7시 책모임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