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 때
회사에서의 하루는 끝이 없었다. 한 가지 업무를 마치면 두 가지 업무가 더 쌓였고, 잠깐 숨을 돌릴 틈조차 없이 또 다음 업무가 나를 기다렸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일이 많다는 사실보다 늘 팽팽하게 긴장된 사무실의 분위기였다. 예민하고 바쁜 사람들 사이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더 힘겨웠다. 작은 말 한마디, 미묘한 표정 하나에까지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 예민함과 긴장감이 나를 하루 종일 목 졸라왔다. 그렇게 나는 매일 조금씩 지쳐갔다.
그런 하루를 끝내고 나면 도무지 곧장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대로 퇴근하면 하루를 회사에 다 빼앗기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도망치듯 서점으로 뛰어갔다. 야근을 하더라도 아주 늦은 밤이 아니면 서점으로 달려갔다. 서점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나를 기다려주는 것 같았다. 서점으로 가는 길에는 언제나 편의점에 들러 삼각김밥 하나를 집었다. 손에 쥔 삼각김밥을 걸어가며 먹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먹는 김밥은 언제나 맛있었다. 지금도 삼각김밥을 좋아하는데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가장 편하고 간단한 내 식사가 되었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제야 하루가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회사에선 내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지만 서점에선 온전히 내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책들이 가득했다.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 전혀 상관없는 문학 책이나 여행 에세이 같은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내 하루에 조금이나마 ‘나’의 흔적이 남는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나는, 그 순간만큼은 다시 책을 좋아하는 나로 돌아갔다.
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은 내 월급을 쓰는 가장 행복한 소비였다. 나는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손에 쥐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책을 살 때마다 ‘아, 이제 나도 책을 살 수 있는 어른이구나’ 하는 뿌듯함이 나를 가득 채웠다. 월급이 많지 않아도 책 한 권 사는 이 작은 사치가 멋진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주말이 오면 온전히 책을 읽기 위해 집 밖을 나가지 않는 날도 많았다. 금요일 저녁이면 서점에서 사 온 책 한 무더기를 앞에 쌓아놓고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때로는 토요일 밤늦은 시간까지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리도록 조용히 책을 읽었다. 그런 밤이 쌓여가는 만큼 나도 조금씩 다시 나를 되찾았다. 때로는 책들을 가방에 가득 넣고 동네 카페로 가서 한참을 머무르며 읽고, 밑줄을 긋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런 시간들이 내게 가장 소중한 순간이었다.
회사에선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었지만 서점과 책 앞에서만큼은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지워졌던 내가, 책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분명히 존재했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회사의 일상에서 벗어나 진짜 원하는 것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이 나를 지켜주었고 다시 회사로 돌아갈 힘을 줬다. 그렇게 책 한 권을 덮고 나면 다시 일주일을 견딜 힘이 생겼다.
하지만 그런 날도 완전히 회복될 만큼 길지는 않았다. 다시 출근하면 하루의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반복되었다. 매일의 출근길에 지쳐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점점 지쳐가는 내 모습을 보며 다시 의문이 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힘든 걸까?”
그 질문은 늘 따라다녔고 자꾸만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서점으로 도망쳐와도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불안감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책은 그런 내가 계속 나로 살아있을 수 있게 만들어주는 가장 가까운 존재였다. 그 순간들만큼은 회사의 일이 아닌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순간이었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매일 행복한 건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선 반드시 내가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그 시절 나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퇴근 후 서점으로 달려가는 그 작은 습관 덕분에 나는 조금씩 다시 숨을 쉬었다. 책을 펼치고 읽는 순간마다 다시 내가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이었고, 내가 바라던 일이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조차도 나를 갉아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을 뿐이었다. 나를 지키지 않으면 좋아하는 일도 지킬 수 없었다는 걸 알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도 나는 서점에 가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더 이상 도망치듯 가지는 않는다. 이제는 나 자신을 지킬 줄 알기 때문이다. 나를 잃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스스로를 지키고 돌보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절, 서점으로 도망쳤던 그 시간 덕분에 나는 조금씩 내 삶을 되찾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사라지지 않고 살아있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시간이었음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