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라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한 학기 일찍 인턴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진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는 사실에 설렜다. 드디어 꿈꿨던 일을 하게 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단지 월급 받는 사회인이 된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꿈꿔왔던 일, 공간을 설계하고 사람의 일상 깊게 들어갈 수 있는 일에 내 손길을 더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힘든 날이 분명 오겠지만, 버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나는 첫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기대와 현실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다. 모든 게 정신없이 흘러갔다. 컴퓨터 앞에서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끝도 없이 밀려드는 업무량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마감이 다가올수록 숨조차 쉴 수 없었다. 하지만 더 힘들었던 건 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사무실은 항상 긴장감이 팽팽히 감돌았다. 예민한 표정, 날카로운 말 한마디 한마디, 어디선가 들려오는 고성까지, 그 모든 게 나를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일이 많으면 하나씩 쳐내면 됐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 긴장감 속에서 숨죽이며 버티다 보니 마음의 피로는 점점 쌓여만 갔다.
내가 꿈꿨던 설계는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가는 즐거운 과정이었지만, 현실은 끝없는 수정과 클라이언트의 변덕스러운 요구, 그리고 관계의 긴장감 속에서 매일 조금씩 무너지는 과정이었다.
오늘 퇴근할 수 있을까? 언제 할 수 있을까?
매일 아침 나는 이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밤늦게 야근을 끝내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내일의 걱정을 했다. 주말이 오면 그나마 조금 숨을 돌릴 줄 알았는데, 그런 나의 기대는 주말 출근이라는 현실 앞에 쉽게 깨졌다. 처음에는 ‘이게 사회생활이겠지’, ‘어느 직장이나 다 이런 거겠지’ 하면서 버텼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버티는 게 아니라 무너지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힘들까?
분명히 내가 원했던 일이고, 꿈꿨던 일인데 왜 이렇게 지쳐가는 걸까?
나는 설계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일을 하면서는 도무지 즐겁지 않았다. 회사에 출근하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고, 아침에 눈을 뜨면 이 하루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할 줄 알았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는 나 자신이 점점 불행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몇 날 며칠 야근하고 밤새운 다음, 오전에 미팅을 마친 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머리는 어지럽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지만, 마음은 더 큰 무게에 눌려 있었다.
"내가 바라던 일이 정말 이거였나?"
설계하는 과정이 즐거웠던 적도 물론 있었다. 공간을 고민하고, 여러 업체와 협업을 하고 미팅을 하며 하며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는 즐거웠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은 현실의 압박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나는 점점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업무와 야근 속에서, 내가 꿈꾸던 삶은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 개인의 시간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매일 늦게 퇴근해 집에 도착하면 나를 위한 시간은 거의 없었다. 주말에도 출근하면 온전히 쉬는 날은 한 달에 손에 꼽을 정도였다. 친구들을 만나거나 영화를 보거나, 카페에 앉아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그런 작은 순간들이 사라졌다.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은 내 영역이 아니었고, 사치일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을 보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내 삶이, 내 시간이,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없어지는 느낌. 회사에서 누군가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있지만, 정작 내 공간, 내 삶은 없었다. ‘좋아하니까 참아야지’라는 말이 어느 순간 가장 견디기 힘든 말이 되었다. 누군가가 “그래도 너는 좋아하는 일 하니까 괜찮겠지?”라고 물으면, 겉으론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에서는 ‘그게 가장 힘들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느 주말, 고향집에서 아버지랑 밥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푸념이 밑도 끝도 없이 나왔는데, 아버지는 "너 좋아하는 일이고, 하고 싶었던 일이었으니 책임져야지. 니 인생인데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책임져야지."라고 하시는데, 밥상 앞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좋아하는 일은 행복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 힘들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즐겁게 견딜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 힘들어도 감수할 수 있는 나의 그릇이 작아서 그런걸까? 이렇게 하루하루 견디며 사는게 맞나? 그게 정말 맞는 걸까? 나는 이런 질문에 사로잡혀 계속 고민했다.
결국 나는 완전히 지쳐버리고 말았다. 퇴근하는 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은 더 이상 나를 지켜주는 일이 아니라, 나를 무너뜨리는 일이 되어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내 방식이 나를 무너뜨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좋아하는 일은 결코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없다면, 결국 그 일도 오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일을 대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변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새벽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다이어리를 쓰며 커피를 내려 마시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고, 블로그에 내 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일찍 마치는 날에는, 서점으로 달려가서 책에 빠져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다른 직업으로 전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어서, 전화영어를 시작하기도 했다. 영어를 놓칠 수 없었다. 여전히 일이 바쁘고 야근도 많았지만, 최소한 10분이라도, 나를 위한 짧은 시간만큼은 꼭 챙기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작은 변화들을 만들어가면서 조금씩 다시 나를 되찾아갔다.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서 모든 게 완벽할 수는 없었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지칠 수 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가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나 자신을 지킬 수 없다면, 그 일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지켜야 좋아하는 일을 더 오래 할 수 있다는 걸, 꽤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나를 잃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더 오래 하기 위해, 이제는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조금 더 오래 할 수 있는 힘을 찾았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좋아하는 일이 나를 살릴 수도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