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나는 건축이 하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의 삶을 담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어릴 적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을 무척 좋아했다. 낡은 집을 허물거나 고쳐서 다시 짓는 그 일련의 과정을 보며, 공간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위로와 변화 그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느꼈다. 지친 사람들이 들어오는 집, 그들이 비로소 숨 돌릴 수 있는 장소가 누군가의 설계로 바뀌는 장면은 어린 나에게 꽤 인상 깊었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건축학과에 진학했다. 특별히 이과 과목을 잘했던 것도, 손재주가 뛰어났던 것도 아니었지만,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일이란 생각에 이끌렸다. 힘들 거라고, 부모님께서 반대를 하셨지만 이미 나의 마음은 오로지 건축학과뿐이었다. 학교에서는 많은 것을 배웠다. 건축은 단순히 벽을 세우고 창을 내며 한 층 한 층 올리는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동선과 빛이 머무는 것을 고려하며, 집 안에서 어떤 행위가 벌어지는지 미리 그려야 했다. 더 나아가,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감정과 기억까지도 담아낼 수 있는 일이었다. 건축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고 철학적인 일이었다.
당연히 수업은 고됐고 밤을 새우는 일도 많았다. 설계실에 엎드리거나 누워 자고, 모형을 만들며 손을 다친 적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 과정이 힘들기보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나만의 방식으로 공간을 상상하고, 머릿속에만 있던 형태를 도면으로, 모형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좋았다. 동기, 선배들과 함께 밤새우며 도면을 붙잡고 고민하던 순간들조차도 지금 생각하면 참 소중했다. 그 시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집. 사람이 사는 공간, 누군가의 하루가 머무는 공간.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드는 그 장소를,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고 구현하고 싶었다. 상업시설이나 공공건축보다도, 훨씬 더 사람들 가까이서 삶을 만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진로는 주거설계로 뾰족해졌다. 재학시절 인턴십을 할 때도, 건축설계 사무소보다는 작지만 밀도 높은 작업을 하는 인테리어 전문 설계사무소를 택했다. 졸업 후 취업한 첫 직장도 주거 인테리어 중심의 설계 회사였다. 주변에서는 만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명확한 방향이었기에 망설임이 없었다. 크고 복잡한 구조물을 설계하고 싶은 게 아닌, 작지만 사람의 체온이 스며든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누군가의 일상이 촘촘히 쌓이는 집을 설계하고 싶었다.
처음엔 모든 게 낯설고 서툴렀지만, 그래도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하나둘씩 현실이 되어가는 그 과정의 경험은 짜릿했다. 무엇보다도 이 일이 누군가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줄 수도 있다는 게 참 좋았다. 단순히 디자인이 예쁜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날들이 쌓여갔다.
일을 하며 좋은 날도 있지만, 힘들고 고된 날들이 훨씬 더 많았다. 물론 여전히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은 있었지만, 동시에 현실의 벽도 함께 느껴졌다. 집을 설계하는 일이니까 따뜻하고 사람 냄새가 날 줄 알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 사이의 갈등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 삶을 잠식해 갔다. 처음엔 '바쁜 게 당연하다'라고 여겼다. 이 업계가 원래 그런 거라고, 다들 그렇게 일한다고 생각했다. 야근과 철야는 당연했고, 주말 출근도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내 하루가 온통 일로만 채워지는 느낌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점점 내 안에서 질문이 피어났다.
“나는 이걸 정말 좋아하던 사람이었는데, 왜 이렇게 힘들지?”
좋아하는 일이고, 하고 싶었던 일이었으니 행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좋아하는 감정만으로는 일을 감당하고 계속하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시간 감각이 무뎌지고 몸은 자꾸만 아파왔다. 무언가를 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시간도 체력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워라벨? 퇴근 후 취미생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건 나에겐 사치였다. 퇴근시간이 보장되지도 않고 적은 월급으로는 무너지는 나를 세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그만둘 수 없고 계속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고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었고,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나에게 있었다. 무엇보다 이 일을 그만두면 난 뭘 할 수 있을지 모르는, 그 불안감이 자주 엄습해 왔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내 안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부서지고 있었다. 감정이 무뎌지고, 생각이 흐려졌다. 인테리어 설계, 주거 설계... 일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출근길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익숙한 동선, 반복되는 업무, 반복되는 야근. 누군가의 삶을 채우는 일을 하며, 내 삶은 점점 비워져만 갔다.
나는 그 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가방엔 여권을 챙겨 들고 다녔다. 어디론가 자꾸만 떠나고 싶어서 말이다. 다른 직업이든, 다른 장소든, 어디로든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내가 할 줄 아는 일은 이것뿐이었고, 내가 배운 것도 이거였다. 새로운 걸 하자니 너무 늦은 것 같았고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계속하자니 그건 또 두려웠다.
갈 곳을 몰라서, 방향을 잃은 채로. 그렇게 오랜 시간 머물렀고, 결국 그 시간들이 나를 천천히 바꾸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오직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몰두하며 하고 싶은 것을 아주 작게나마 해보는 시도를 했다. 지금 여기에 계속 머물 수 없어서, 그러기엔 내가 초라해 보이고 지금이 즐겁지 않아서 말이다.
지금, 나는 그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지금도 설계를 한다. 다만, 도면 대신 단어로, 공간 대신 감정으로.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방식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사람의 하루를 더 나은 방향으로 설계하고 싶은 마음은 같다.
이 길을 가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것을 조금 더 오래 붙들다 보니 여기에 도착했다.